2024. 06. 09.(주일낮) 네 기둥(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6-07 11:18
조회
806
제목: 네 기둥(2)
성경: 마태복음 13: 31- 33
1
스데반집사님의 순교와 함께 예루살렘교회에는 큰 환난의 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환난을 피하여 흩어진 성도들 중에 몇 분이 시리아의 주도인 안디옥에 이르렀습니다. 안디옥에 이른 성도들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인에게도 복음이신 “주 예수”를 전파합니다.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안디옥교회가 부흥하여 성도들이 많아졌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교회는 목회자를 파송하게 되는데, 그 분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성품이 착합니다. 성령이 충만합니다. 견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안디옥에 이른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였고, “굳건한 믿음으로 주님 안에 머물러 있으십시오.” 권면하니, 큰 무리가 주님께 더하여졌습니다.
2
성도들이 많아짐으로 바나바 혼자 사역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바나바는 직접 다소로 내려가서 낙향해 있던 바울을 만났고, 둘이 함께 안디옥으로 올라옵니다. 둘이 함께 안디옥교회를 섬기면서 일 년 동안 성도들을 가르치니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사람들”이란 아름다운 별명, 좋은 평판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속 안디옥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은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계속되는 흉년으로 어렵게 되자 소매를 걷어붙입니다. 연보를 모아서 예루살렘교회를 돕기로 작정을 하였고, 작정할 뿐만 아니라 실행하였습니다. 따뜻한 마음과 펼친 손길로 모아진 연보를 예루살렘교회 장로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3
41살이 된 우리교회는 사도행전 속 안디옥교회처럼 주님의 임재하심으로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소망하면서 첫 번째 기둥을 세웠고, 주 예수를 전파할 때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면서 두 번째 기둥으로 세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배움으로 그리스도인이란 좋은 평판을 소망하면서 세 번째 기둥을 세웠고, 교회 안에 담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웃을 향하여 흘려보내기를 기도하면서 네 번째 기둥을 세웠습니다.
4
장면을 바꾸어 보겠습니다. 창립기념주일을 준비하면서 모였던 특별새벽기도회, “시편에 그려진 하나님의 집”이란 주제로 모였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아름답게 그려진 여섯 편의 시편을 읽으면서 주님의 뜰을 밟아도 보았고, 뜰에 심겨진 나무를 만져도 보았습니다. 주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도 보았고,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먹어도 보았습니다. 주님이 입혀주시는 옷으로 인하여 감사하였고, 머리에 부어지는 신선한 기름으로 인하여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신앙인품도 살펴보았고, 마땅히 펼쳐야 할 삶의 모습도 점검해 보았습니다.
두 주간에 걸쳐 안디옥교회를 세워가는 네 기둥과 하나님의 집을 노래한 여섯 편의 시편을 잇대어 놓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생동감 넘치는 예배란 첫 번째 기둥과 주 예수를 전파하는 전도라는 두 번째 기둥에다 하나님의 집이 그려진 시편의 말씀을 수놓았었습니다. 이번 주일에는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교육이란 세 번째 기둥과 이웃을 섬기는 봉사라는 네 번째 기둥에다 하나님의 집이 그려진 시편 말씀을 새겨 넣도록 하겠습니다.
5
세 번째 기둥과 네 번째 기둥에다 시편 말씀을 새겨 넣으려는 우리들에게 주님이 들려주시는 비유가 있습니다.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천국은 마치 겨자씨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겨자씨 한 알을 뿌렸습니다. 겨자씨는 모든 씨앗보다 작은 것이지만 싹이 나고 자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커서 큰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찾아와서 그 가지에 깃들입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겨자씨의 비유에는 안디옥교회가 세워가는 세 번째 기둥,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교육이 그려져 있습니다. 네 번째 기둥, 이웃을 섬기는 봉사도 담겨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교육입니다.
1
성도들이 많아짐으로 바나바 혼자 사역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직접 다소로 내려가서 낙향해 있던 바울을 만났고, 둘이 함께 안디옥으로 올라옵니다. 둘이 함께 안디옥교회를 섬기면서 성도들을 가르치니,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란 아름다운 별명, 좋은 평판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별명, 좋은 평판인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소개하기 전에 “바나바”란 이름을 소개합니다. 바나바의 원래 이름은 “요셉”입니다. ①요셉이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는데, 성품이 선한 것을 좋아하니 요셉을 만나는 사람마다 하늘 위로를 받습니다. ②요셉이 성령 충만하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니 요셉의 섬김을 받은 사람마다 상처가 싸매집니다. ③요셉이 하늘 은혜를 볼 줄 아는 눈이 열려 있으니 요셉과 손은 맞잡는 사람마다 세상을 이길 새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당신은 위로의 사람, 권면의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름을 ‘요셉’이라 하지 말고, ‘바나바’라고 하십시오.” 복된 삶이 아름다운 별명이 되었고, 아름다운 별명은 원래 자신의 이름보다 더 좋은 이름이 되었습니다.
2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생각하는 것을 살펴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향취가 물씬 풍깁니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복음이신 예수님을 가득히 담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예수 그리스도를 빼어 닮았습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사람”, “그리스도인”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란 별명을 붙여 줄 때, 존경하면서 붙여준 별명이 아닙니다. 칭찬하고 축복하면서 붙여준 평판이 아닙니다. 도리어 비아냥거리면서, 평가절하를 하면서 붙여준 별명입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들을 세상 사람들이 “예수쟁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예수쟁이라고 낮추어 불러도 우리는 참된 예수쟁이, 복된 예수쟁이가 되어야 합니다. 인품이 예수님을 닮고, 삶이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예수님에 대해서는 달인이 되어야 합니다.
3
안디옥성도들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란 좋은 평판을 얻게 되었습니까? 바나바는 낙향해 있던 바울을 청빙합니다. 두 분이 일 년 동안 성도를 가르쳤고, 성도들은 배움으로 “그리스도인”이란 아름다운 별명을 얻은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가르쳤던 것,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배웠던 내용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도덕적인 기준과 윤리적인 생활을 가르쳤습니까? 인문학을 가르치면서 마음에 양식을 더하게 하였습니까? 세상에서 앞서 갈수 있는 학문을 가르쳤습니까? 돈을 버는 방법과 경제적인 상식을 가르쳐서 삶의 자리를 넓게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주 예수”를 가르쳤고, “주 예수”를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쳤고, 예수님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가르쳤고, 예수님의 삶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방법을 가르쳤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예수를 따라가는 길을 가르쳤고, 주 예수를 따라가는 길을 배웠습니다. 그리스도를 가르쳤고, 그리스도를 배우니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4
그리스도인이란 아름다운 이름, 좋은 평판이 특별새벽기도회 때 읽은 시편에는 감람나무로 그려져 있습니다. 감람나무입니다. 감람나무인데 푸른 감람나무입니다. 푸른 감람나무인데 하나님의 집에 심겨 있는 푸른 감람나무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감람나무는 오래도록 장수하는 나무입니다. 비둘기 입에 물려진 감람나무 잎사귀는 평화의 상징입니다. 감람나무 열매가 식탁에 오르지 아니하면 삼시세끼 상차림이 되지 않습니다. 감람열매로 짠 올리브유는 약방의 감초처럼 모든 요리에 들어가고, 등유가 되어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고, 상처에 부어지면 치료하는 능력이 됩니다.
장수하는 감람나무에는 영생을 얻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담겨 있고, 감람나무 잎사귀에는 화목하게 하는 직책이 그려져 있습니다. 식탁에 오른 감람열매에는 그리스도의 인품이 담겨 있고, 감람나무 기름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리스도의 생활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뜰에 심겨진 감람나무로 아름다우시기를 축복합니다.
5
그리스도인이란 좋은 평판이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는 큰 나무가 된 겨자씨로 그려져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겨자씨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겨자씨 한 알을 뿌렸습니다. 겨자씨는 모든 씨앗보다 작은 것이지만 싹이 나고 자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커서 큰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찾아와서 그 가지에 깃들입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것이라는데 강조점을 둡니다. 씨앗의 크기로 볼 때 모든 씨앗보다 작은 것이라고, 뿌린 씨앗이 한 움큼이 아니고 씨앗이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 한 알이라는데 강조점을 두면서 작은 겨자 씨앗이고, 단 한 알의 씨앗이지만 그 안에 생명력이 있기에 큰 나무로 자라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 모두는 예수 생명을 품고 있는 겨자씨 한 알입니다. 신체적인 조건이 빼어나지 못해서 작은 겨자씨 한 알 일 수 있습니다. 마음의 넓이가 밴댕이 속 같아서 작은 겨자씨 한 알 일 수 있습니다. 남들 다 있는 집 한 채가 없어서 작은 겨자씨 한 알 일 수 있습니다. 하는 일인 세상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일이어서 작은 겨자씨 한 알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생명을 품고 있고 큰 나무로 자라가는, 예수 생명을 품고 예수님이 마음을 닮아가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는 예수쟁이고, 그리스도인이고, 작은 예수입니다.
둘째 이웃을 섬기는 봉사입니다.
1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계속되는 흉년으로 어렵게 되자 소매를 걷어붙입니다. 연보를 모아서 예루살렘교회를 돕기로 작정을 하였고, 작정할 뿐만 아니라 실행하였습니다. 안디옥성도들의 따뜻한 마음과 펼친 손길로 모아진 연보를 예루살렘교회 장로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사도행전 속에 안디옥교회는 주님이 담아주신 은혜를 세상을 향하여, 땅 끝을 향하여 흘려보내는 교회였기에 이곳에 세워진 우리교회도 교회 안에 담아주신 은혜를 세상을 향하여, 땅 끝을 향하여 흘려보내야 합니다.
2
이렇게 복된 안디옥교회의 모습이 예수님이 들려주신 겨자씨의 비유에도 그려져 있습니다. 작은 겨자씨가 땅에 뿌려지고 움으로 돋아는 것이 복이지요. 더 복된 것은 돋아난 싹이 자라나는데 어떤 푸성귀보다 큰 나무로 자란 것입니다. 그런데 더 복된 것이 있습니다. 큰 나무가 되어 가지를 공중의 새들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작은 씨앗이 큰 나무로 자라고, 큰 나무가 되어 가지를 공중의 새들에 내어주는 비유를 들려주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하늘보좌를 비우시고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비린내 나는 뱃고물을 베개하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골고다 언덕 위에 나무 십자가를 세우시고, 온 인류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교회도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비유 속에 나오는 겨자나무처럼, 사도행전 속에 그려진 안디옥교회처럼 교회 안에 담아주신 은혜를 이웃을 향하여 땅 끝을 향하여 흘려보낼 때 복되고 아름답습니다.
3
“시편에 그려진 하나님의 집”란 주제를 가지고 특별새벽기도회를 모이던 첫 날, 우리는 시편 84편을 읽었습니다. 시편 84편에서 교회는 샘이었습니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도 복을 채워 주나이다.” 세상을 무엇에 비유합니까? “눈물 골짜기”, 교회를 무엇에 비유합니까? “많은 샘”, 샘은 땅에서 솟아올라 복되고, 솟아난 샘이 눈물 골짜기로 흘러내리면서 이른 비의 은택을 덧입히기에 복됩니다.
솟아난 샘이 눈물 골짜기로 흘러내리면서 온 땅을 풍요롭게 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시편 104편은 이렇게 그려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누각에서 단비를 부어주십니다. 하늘에서 내린 단비는 골짜기에 샘으로 솟아나 산 사이로 흘러내립니다. 흐르는 시냇물로 들짐승들은 갈한 목을 축이고, 물가에 심긴 나무는 기뻐 춤을 추고, 나뭇가지에 둥지를 마련한 새들은 노래합니다. 시냇물이 흘러드는 곳마다 풀은 돋아나고 꽃은 피어나면 온 땅에 풍요로 넘칩니다. 이렇듯 교회는 하늘에서 내린 단비를 골짜기의 샘으로 솟아나 세상을 향하여 흘러가는 곳입니다.
4
교회를 많은 샘으로 비유하고, 골짜기에서 솟아난 샘으로 비유하기에 주님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눈물 골짜기를 지나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주시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선물주십니다. 주님은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오시어 38년 된 병자, 눈물 골짜기에서 힘겨워하는 38년 된 병자를 보시고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선포하십니다.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한 채 구걸을 하면서 눈물 골짜기를 지나야 하는 시각장애인의 두 눈에 진흙을 발라주시면서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 하늘에 누각에서 부어주신 단비를 눈물골짜기인 세상을 향하여 흘려보냄으로, 눈물골짜기를 생명으로 넘치게 하는 안디옥교회로 세워가고 펼쳐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 마태복음 13: 31- 33
1
스데반집사님의 순교와 함께 예루살렘교회에는 큰 환난의 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환난을 피하여 흩어진 성도들 중에 몇 분이 시리아의 주도인 안디옥에 이르렀습니다. 안디옥에 이른 성도들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인에게도 복음이신 “주 예수”를 전파합니다.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안디옥교회가 부흥하여 성도들이 많아졌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교회는 목회자를 파송하게 되는데, 그 분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성품이 착합니다. 성령이 충만합니다. 견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안디옥에 이른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였고, “굳건한 믿음으로 주님 안에 머물러 있으십시오.” 권면하니, 큰 무리가 주님께 더하여졌습니다.
2
성도들이 많아짐으로 바나바 혼자 사역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바나바는 직접 다소로 내려가서 낙향해 있던 바울을 만났고, 둘이 함께 안디옥으로 올라옵니다. 둘이 함께 안디옥교회를 섬기면서 일 년 동안 성도들을 가르치니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사람들”이란 아름다운 별명, 좋은 평판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속 안디옥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은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계속되는 흉년으로 어렵게 되자 소매를 걷어붙입니다. 연보를 모아서 예루살렘교회를 돕기로 작정을 하였고, 작정할 뿐만 아니라 실행하였습니다. 따뜻한 마음과 펼친 손길로 모아진 연보를 예루살렘교회 장로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3
41살이 된 우리교회는 사도행전 속 안디옥교회처럼 주님의 임재하심으로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소망하면서 첫 번째 기둥을 세웠고, 주 예수를 전파할 때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면서 두 번째 기둥으로 세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배움으로 그리스도인이란 좋은 평판을 소망하면서 세 번째 기둥을 세웠고, 교회 안에 담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웃을 향하여 흘려보내기를 기도하면서 네 번째 기둥을 세웠습니다.
4
장면을 바꾸어 보겠습니다. 창립기념주일을 준비하면서 모였던 특별새벽기도회, “시편에 그려진 하나님의 집”이란 주제로 모였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아름답게 그려진 여섯 편의 시편을 읽으면서 주님의 뜰을 밟아도 보았고, 뜰에 심겨진 나무를 만져도 보았습니다. 주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도 보았고,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먹어도 보았습니다. 주님이 입혀주시는 옷으로 인하여 감사하였고, 머리에 부어지는 신선한 기름으로 인하여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신앙인품도 살펴보았고, 마땅히 펼쳐야 할 삶의 모습도 점검해 보았습니다.
두 주간에 걸쳐 안디옥교회를 세워가는 네 기둥과 하나님의 집을 노래한 여섯 편의 시편을 잇대어 놓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생동감 넘치는 예배란 첫 번째 기둥과 주 예수를 전파하는 전도라는 두 번째 기둥에다 하나님의 집이 그려진 시편의 말씀을 수놓았었습니다. 이번 주일에는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교육이란 세 번째 기둥과 이웃을 섬기는 봉사라는 네 번째 기둥에다 하나님의 집이 그려진 시편 말씀을 새겨 넣도록 하겠습니다.
5
세 번째 기둥과 네 번째 기둥에다 시편 말씀을 새겨 넣으려는 우리들에게 주님이 들려주시는 비유가 있습니다.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천국은 마치 겨자씨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겨자씨 한 알을 뿌렸습니다. 겨자씨는 모든 씨앗보다 작은 것이지만 싹이 나고 자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커서 큰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찾아와서 그 가지에 깃들입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겨자씨의 비유에는 안디옥교회가 세워가는 세 번째 기둥,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교육이 그려져 있습니다. 네 번째 기둥, 이웃을 섬기는 봉사도 담겨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교육입니다.
1
성도들이 많아짐으로 바나바 혼자 사역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직접 다소로 내려가서 낙향해 있던 바울을 만났고, 둘이 함께 안디옥으로 올라옵니다. 둘이 함께 안디옥교회를 섬기면서 성도들을 가르치니,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란 아름다운 별명, 좋은 평판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별명, 좋은 평판인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소개하기 전에 “바나바”란 이름을 소개합니다. 바나바의 원래 이름은 “요셉”입니다. ①요셉이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는데, 성품이 선한 것을 좋아하니 요셉을 만나는 사람마다 하늘 위로를 받습니다. ②요셉이 성령 충만하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니 요셉의 섬김을 받은 사람마다 상처가 싸매집니다. ③요셉이 하늘 은혜를 볼 줄 아는 눈이 열려 있으니 요셉과 손은 맞잡는 사람마다 세상을 이길 새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당신은 위로의 사람, 권면의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름을 ‘요셉’이라 하지 말고, ‘바나바’라고 하십시오.” 복된 삶이 아름다운 별명이 되었고, 아름다운 별명은 원래 자신의 이름보다 더 좋은 이름이 되었습니다.
2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생각하는 것을 살펴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향취가 물씬 풍깁니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복음이신 예수님을 가득히 담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예수 그리스도를 빼어 닮았습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사람”, “그리스도인”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란 별명을 붙여 줄 때, 존경하면서 붙여준 별명이 아닙니다. 칭찬하고 축복하면서 붙여준 평판이 아닙니다. 도리어 비아냥거리면서, 평가절하를 하면서 붙여준 별명입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들을 세상 사람들이 “예수쟁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예수쟁이라고 낮추어 불러도 우리는 참된 예수쟁이, 복된 예수쟁이가 되어야 합니다. 인품이 예수님을 닮고, 삶이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예수님에 대해서는 달인이 되어야 합니다.
3
안디옥성도들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란 좋은 평판을 얻게 되었습니까? 바나바는 낙향해 있던 바울을 청빙합니다. 두 분이 일 년 동안 성도를 가르쳤고, 성도들은 배움으로 “그리스도인”이란 아름다운 별명을 얻은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가르쳤던 것,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배웠던 내용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도덕적인 기준과 윤리적인 생활을 가르쳤습니까? 인문학을 가르치면서 마음에 양식을 더하게 하였습니까? 세상에서 앞서 갈수 있는 학문을 가르쳤습니까? 돈을 버는 방법과 경제적인 상식을 가르쳐서 삶의 자리를 넓게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주 예수”를 가르쳤고, “주 예수”를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쳤고, 예수님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가르쳤고, 예수님의 삶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방법을 가르쳤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예수를 따라가는 길을 가르쳤고, 주 예수를 따라가는 길을 배웠습니다. 그리스도를 가르쳤고, 그리스도를 배우니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4
그리스도인이란 아름다운 이름, 좋은 평판이 특별새벽기도회 때 읽은 시편에는 감람나무로 그려져 있습니다. 감람나무입니다. 감람나무인데 푸른 감람나무입니다. 푸른 감람나무인데 하나님의 집에 심겨 있는 푸른 감람나무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감람나무는 오래도록 장수하는 나무입니다. 비둘기 입에 물려진 감람나무 잎사귀는 평화의 상징입니다. 감람나무 열매가 식탁에 오르지 아니하면 삼시세끼 상차림이 되지 않습니다. 감람열매로 짠 올리브유는 약방의 감초처럼 모든 요리에 들어가고, 등유가 되어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고, 상처에 부어지면 치료하는 능력이 됩니다.
장수하는 감람나무에는 영생을 얻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담겨 있고, 감람나무 잎사귀에는 화목하게 하는 직책이 그려져 있습니다. 식탁에 오른 감람열매에는 그리스도의 인품이 담겨 있고, 감람나무 기름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리스도의 생활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뜰에 심겨진 감람나무로 아름다우시기를 축복합니다.
5
그리스도인이란 좋은 평판이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는 큰 나무가 된 겨자씨로 그려져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겨자씨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겨자씨 한 알을 뿌렸습니다. 겨자씨는 모든 씨앗보다 작은 것이지만 싹이 나고 자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커서 큰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찾아와서 그 가지에 깃들입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것이라는데 강조점을 둡니다. 씨앗의 크기로 볼 때 모든 씨앗보다 작은 것이라고, 뿌린 씨앗이 한 움큼이 아니고 씨앗이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 한 알이라는데 강조점을 두면서 작은 겨자 씨앗이고, 단 한 알의 씨앗이지만 그 안에 생명력이 있기에 큰 나무로 자라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 모두는 예수 생명을 품고 있는 겨자씨 한 알입니다. 신체적인 조건이 빼어나지 못해서 작은 겨자씨 한 알 일 수 있습니다. 마음의 넓이가 밴댕이 속 같아서 작은 겨자씨 한 알 일 수 있습니다. 남들 다 있는 집 한 채가 없어서 작은 겨자씨 한 알 일 수 있습니다. 하는 일인 세상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일이어서 작은 겨자씨 한 알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생명을 품고 있고 큰 나무로 자라가는, 예수 생명을 품고 예수님이 마음을 닮아가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는 예수쟁이고, 그리스도인이고, 작은 예수입니다.
둘째 이웃을 섬기는 봉사입니다.
1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계속되는 흉년으로 어렵게 되자 소매를 걷어붙입니다. 연보를 모아서 예루살렘교회를 돕기로 작정을 하였고, 작정할 뿐만 아니라 실행하였습니다. 안디옥성도들의 따뜻한 마음과 펼친 손길로 모아진 연보를 예루살렘교회 장로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사도행전 속에 안디옥교회는 주님이 담아주신 은혜를 세상을 향하여, 땅 끝을 향하여 흘려보내는 교회였기에 이곳에 세워진 우리교회도 교회 안에 담아주신 은혜를 세상을 향하여, 땅 끝을 향하여 흘려보내야 합니다.
2
이렇게 복된 안디옥교회의 모습이 예수님이 들려주신 겨자씨의 비유에도 그려져 있습니다. 작은 겨자씨가 땅에 뿌려지고 움으로 돋아는 것이 복이지요. 더 복된 것은 돋아난 싹이 자라나는데 어떤 푸성귀보다 큰 나무로 자란 것입니다. 그런데 더 복된 것이 있습니다. 큰 나무가 되어 가지를 공중의 새들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작은 씨앗이 큰 나무로 자라고, 큰 나무가 되어 가지를 공중의 새들에 내어주는 비유를 들려주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하늘보좌를 비우시고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비린내 나는 뱃고물을 베개하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골고다 언덕 위에 나무 십자가를 세우시고, 온 인류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교회도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비유 속에 나오는 겨자나무처럼, 사도행전 속에 그려진 안디옥교회처럼 교회 안에 담아주신 은혜를 이웃을 향하여 땅 끝을 향하여 흘려보낼 때 복되고 아름답습니다.
3
“시편에 그려진 하나님의 집”란 주제를 가지고 특별새벽기도회를 모이던 첫 날, 우리는 시편 84편을 읽었습니다. 시편 84편에서 교회는 샘이었습니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도 복을 채워 주나이다.” 세상을 무엇에 비유합니까? “눈물 골짜기”, 교회를 무엇에 비유합니까? “많은 샘”, 샘은 땅에서 솟아올라 복되고, 솟아난 샘이 눈물 골짜기로 흘러내리면서 이른 비의 은택을 덧입히기에 복됩니다.
솟아난 샘이 눈물 골짜기로 흘러내리면서 온 땅을 풍요롭게 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시편 104편은 이렇게 그려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누각에서 단비를 부어주십니다. 하늘에서 내린 단비는 골짜기에 샘으로 솟아나 산 사이로 흘러내립니다. 흐르는 시냇물로 들짐승들은 갈한 목을 축이고, 물가에 심긴 나무는 기뻐 춤을 추고, 나뭇가지에 둥지를 마련한 새들은 노래합니다. 시냇물이 흘러드는 곳마다 풀은 돋아나고 꽃은 피어나면 온 땅에 풍요로 넘칩니다. 이렇듯 교회는 하늘에서 내린 단비를 골짜기의 샘으로 솟아나 세상을 향하여 흘러가는 곳입니다.
4
교회를 많은 샘으로 비유하고, 골짜기에서 솟아난 샘으로 비유하기에 주님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눈물 골짜기를 지나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주시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선물주십니다. 주님은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오시어 38년 된 병자, 눈물 골짜기에서 힘겨워하는 38년 된 병자를 보시고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선포하십니다.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한 채 구걸을 하면서 눈물 골짜기를 지나야 하는 시각장애인의 두 눈에 진흙을 발라주시면서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 하늘에 누각에서 부어주신 단비를 눈물골짜기인 세상을 향하여 흘려보냄으로, 눈물골짜기를 생명으로 넘치게 하는 안디옥교회로 세워가고 펼쳐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