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6. 02.(주일낮) 네 기둥(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5-31 11:20
조회
816
제목: 네 기둥(1)
성경: 사도행전 13: 1- 3
1
스데반집사님의 순교와 함께 예루살렘교회에는 큰 환난의 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환난을 피하여 흩어진 성도들 중에 몇 분이 시리아의 주도인 안디옥에 이르렀습니다. 안디옥에 이른 성도들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인에게도 복음이신 “주 예수”를 전파합니다.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안디옥교회가 부흥하여 성도들이 많아졌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교회는 목회자를 파송하게 되는데, 그 분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성품이 착합니다. 성령이 충만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안디옥에 이른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였고, “굳건한 믿음으로 주님 안에 머물러 있으십시오.” 권면하니, 큰 무리가 주님께 더하여졌습니다.
2
성도들이 많아짐으로 바나바 혼자 사역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바나바는 직접 다소로 내려가서 낙향해 있던 바울을 만났고, 둘이 함께 안디옥으로 올라옵니다. 둘이 함께 안디옥교회를 섬기면서 일 년 동안 성도들을 가르치니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사람들”이란 아름다운 별명, 좋은 평판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속 안디옥의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은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계속되는 흉년으로 어렵게 되자 팔을 걷어붙입니다. 연보를 모아서 예루살렘교회를 돕기로 작정을 하였고, 작정할 뿐만 아니라 실행하였습니다. 안디옥성도들의 따뜻한 마음과 펼친 손길로 모아진 연보를 예루살렘교회 장로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3
41살이 된 우리교회는 사도행전 속 안디옥교회처럼 주님의 임재하심으로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소망하면서 첫 번째 기둥을 세웠고, 주 예수를 전파할 때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면서 두 번째 기둥으로 세웠습니다. 복음을 가르치고 배움으로 그리스도인이란 아름다운 별명을 소망하면서 세 번째 기둥을 세웠고, 교회 안에 담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웃을 향하여 흘려보내기를 기도하면서 네 번째 기둥을 세웠습니다.
4
장면을 바꾸어 보겠습니다. 지난 주간 “시편에 그려진 하나님의 집”이란 주제로 특별새벽기도회를 모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집이 복되고 아름답게 그려진 여섯 편의 시편을 뽑아서 소개하였고, 여러분과 함께 주님의 뜰을 밟아도 보았고, 뜰에 심겨진 나무를 만져도 보았습니다. 주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도 보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보았습니다. 주님이 입혀주시는 옷도 입어보았고, 머리에 부어지는 신선한 기름으로 기뻐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신앙인품도 살펴보았고, 마땅히 펼쳐야 할 삶의 모습도 점검해 보았습니다.
저는 두 주간에 걸쳐 안디옥교회를 세워가는 네 기둥과 하나님의 집을 노래한 여섯 편의 시편을 잇대어 놓기로 하였습니다. 이번 주일에는 생동감 넘치는 예배란 첫 번째 기둥과 주 예수를 전파하는 전도라는 두 번째 기둥에다 하나님의 집이 그려진 시편의 말씀을 수놓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에는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교육이란 세 번째 기둥과 이웃을 섬기는 봉사라는 네 번째 기둥에다 하나님의 집이 그려진 시편 말씀을 새겨 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주님의 임재하심으로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드립니다.
1
1절 말씀을 보면, 안디옥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분들의 면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마음은 따뜻하고 두 눈에는 하늘 안경을 쓴 바나바가 있었고, 피부색은 비록 검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 있었고, 아프리카 촌뜨기였지만 마음에는 주님의 얼굴이 그려진 구레네 사람 루기오도 있었습니다.
하늘에 속한 백성이 되고 보니 왕족도 배설물 같은 것이어서 안디옥으로 달려온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도 있었고, 교회를 핍박하고 잔멸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그릇이 된 바울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신분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릅니다.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 다르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인생 여정이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안디옥에서 주님의 몸인 교회를 이루었고, 주님의 몸을 이루었기에 복된 예배자로 섭니다. 주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금식하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금식하며 예배를 드릴 때 성령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라.” 이것이 주님이 임재하심으로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드렸던 사도행전 속 안디옥교회의 모습입니다.⇭
2
시편 92편 1-3절 말씀을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노래하는 일,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또 있사오리까? 아침에는 주님의 사랑을 알리고 밤이면 주님의 미쁘심을 전하는 일, 그보다 더 좋은 일이 다시는 없사옵니다. 열 줄 비파를 뜯으며 수금 가락에 맞추어 노래합니다. 여호와여, 주님의 업적을 생각하며 이 몸은 행복합니다. 손수 이루신 일들을 눈앞에 그리며 환성을 올립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을 가장 좋아합니까? 무엇을 할 때 가장 기쁩니까?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합니까? 시인은 다른 날도 아니고 복된 주일에, 다른 곳도 아니고 가장 거룩한 아버지의 집에서, 다른 일도 아니고 주님을 높여 찬송하는 일, 이 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고 고백합니다.
아침마다 주님의 사랑을 알렸습니다. 밤마다 주님의 미쁘심을 전하였습니다. 그렇게 엿새를 보내고 거룩한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집에 모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 서서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보니, “에벤에셀” 주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습니다. 예배자로 서서 내 주위를 둘러보니, “임마누엘” 주님께서 은혜로운 손길로 함께 하십니다. 예배자로서 서서 앞을 바라보니, “여호와이레”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좋은 것으로 준비하고 계시니, 그저 행복하여 주님을 높여 찬송을 부릅니다. 이것이 주님의 임재로 인하여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드리는 안디옥교회의 모습입니다.
3
다윗의 인생결산서에서 하나님은 이런 글을 적어주셨습니다. “내 마음에 합한 사람,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란 복된 글을 적어주십니다. 그 날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저는 보잘 것 없는 이새의 말째 아들이었고, 베들레헴 들녘에서 양 궁둥이를 쫓던 목동이었는데, 그런 저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해 주신 것,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잘 다스릴 수 있었던 것, 참 고맙고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더 고맙고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찬송 잘하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기쁨으로 노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로 찬송했던 것입니다. 저는 예배자로 설 때마다 아침 해 돋는 볕이었고, 단비 버금도 돋아나는 새싹이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임재로 인하여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드리는 안디옥교회인데, 그런 예배자로 승리하는 안디옥식구들의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주 예수를 전파하는 전도입니다.
1
스데반 집사의 순교와 함께 예루살렘에는 큰 환난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환난으로 인하여 흩어진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몇 백리 북쪽에 있는 안디옥까지 이르렀습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서 고향을 등지고 낯선 타향에 왔지만 가슴에 담긴 복음의 불꽃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안디옥에서도 “주 예수”를 증거 합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제는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 안디옥교회에 누가 함께 하십니까? “주의 손”이, 주님의 손이 주 예수를 전하는 안디옥식구들과 함께 하시니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날마다 구원받는 성도들이 더하여 지는 것, 우리가 세워가야 두 번째 기둥입니다.
2
다윗의 말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군대장관 요압을 급히 부릅니다. “우리나라 북쪽 끝에 있는 단이라는 마을부터 남쪽 끝에 있는 브엘세바까지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하도록 하라. 어린아이들은 헤아릴 필요가 없고, 노인들도 헤아릴 필요가 없고, 아낙네들도 필요가 없네. 젊은 장정들, 군대에 나갈 수 있는 장정들의 숫자를 조사해 오도록 하라.”
요압 장군이 간청을 합니다. “임금님, 우리가 언제 군대의 숫자를 믿고 전쟁을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군대의 숫자를 의지한다면 하나님 앞에 그릇된 것입니다. 하오니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럼에도 다윗이 재촉을 합니다. 불호령을 내립니다. 요압은 인구조사를 나갔고, 갓 선지자가 등장을 합니다.
“임금님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으셨습니다. 벌을 내리시는데 다음 세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임금님의 땅에 7년 동안 기근이 드는 것이고, 둘째는 임금님이 원수들에게 석 달을 쫒기는 것이고, 셋째는 임금님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도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흘 동안 전염병이 도는 것을 택하였고, 하나님께서 전염병의 재앙을 내리십니다. 첫째 날 아침부터 낮 열두시까지 재앙이 내리는데, 죽어나간 사람이 무려 칠만 명입니다. 사흘 동안 전염병이 돌게 했다가는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급히 마음을 돌이키시고 재앙을 멈추게 합니다.
다윗은 그날 재앙이 멈추어 섰던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삽니다. 소와 멍에도 삽니다. 제단을 쌓고, 멍에를 땔감으로 올려놓고, 소를 제물로 삼아서 감사의 제사인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기뻐하면서 화목제를 드립니다. 이렇게 죽음이 멈추어 선 곳, 재앙이 멈추어 선 곳이 하나님의 성전, 주님의 집에 세워지는 터가 됩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는 곳이고, 그러기에 교회는 베옷을 벗고 기쁨으로 띠를 띠는 곳입니다.
3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 완성된 곳은 골고다 언덕 위에 십자가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이 열리는 부활입니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과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위에 세워진 것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담고 있는, 주님의 몸인 교회입니다. 교회가 담고 있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신분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합니다. 교회가 담고 있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속성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죽음의 어둠이 생명의 빛으로 속성이 변화합니다. 교회가 담고 있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삶의 자리를 변화시킵니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이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사람으로 삶의 자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던 밤, 성찬을 제정하시어 교회 안에 보물도 담아놓으십니다. 떡을 찢기신 주님을 몸으로 받으면서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게 하시고, 전에 참여하면서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 연합의 신비를 이루게 하시고, 떡과 잔에 참여하면서 십자가와 부활로 복음이 되시는 예수님을 땅 끝까지 전하게 하십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전하게 합니다. 그러기에 안디옥교회는 땅 끝까지 주 예수를 전파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께로 돌아오는 사람을 더하게 해야 합니다. 전도와 선교에 깨어 있는 저도 되고 여러분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 사도행전 13: 1- 3
1
스데반집사님의 순교와 함께 예루살렘교회에는 큰 환난의 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환난을 피하여 흩어진 성도들 중에 몇 분이 시리아의 주도인 안디옥에 이르렀습니다. 안디옥에 이른 성도들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인에게도 복음이신 “주 예수”를 전파합니다.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안디옥교회가 부흥하여 성도들이 많아졌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교회는 목회자를 파송하게 되는데, 그 분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성품이 착합니다. 성령이 충만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안디옥에 이른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였고, “굳건한 믿음으로 주님 안에 머물러 있으십시오.” 권면하니, 큰 무리가 주님께 더하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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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많아짐으로 바나바 혼자 사역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바나바는 직접 다소로 내려가서 낙향해 있던 바울을 만났고, 둘이 함께 안디옥으로 올라옵니다. 둘이 함께 안디옥교회를 섬기면서 일 년 동안 성도들을 가르치니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사람들”이란 아름다운 별명, 좋은 평판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속 안디옥의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은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모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계속되는 흉년으로 어렵게 되자 팔을 걷어붙입니다. 연보를 모아서 예루살렘교회를 돕기로 작정을 하였고, 작정할 뿐만 아니라 실행하였습니다. 안디옥성도들의 따뜻한 마음과 펼친 손길로 모아진 연보를 예루살렘교회 장로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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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살이 된 우리교회는 사도행전 속 안디옥교회처럼 주님의 임재하심으로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소망하면서 첫 번째 기둥을 세웠고, 주 예수를 전파할 때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면서 두 번째 기둥으로 세웠습니다. 복음을 가르치고 배움으로 그리스도인이란 아름다운 별명을 소망하면서 세 번째 기둥을 세웠고, 교회 안에 담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웃을 향하여 흘려보내기를 기도하면서 네 번째 기둥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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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을 바꾸어 보겠습니다. 지난 주간 “시편에 그려진 하나님의 집”이란 주제로 특별새벽기도회를 모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집이 복되고 아름답게 그려진 여섯 편의 시편을 뽑아서 소개하였고, 여러분과 함께 주님의 뜰을 밟아도 보았고, 뜰에 심겨진 나무를 만져도 보았습니다. 주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도 보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보았습니다. 주님이 입혀주시는 옷도 입어보았고, 머리에 부어지는 신선한 기름으로 기뻐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신앙인품도 살펴보았고, 마땅히 펼쳐야 할 삶의 모습도 점검해 보았습니다.
저는 두 주간에 걸쳐 안디옥교회를 세워가는 네 기둥과 하나님의 집을 노래한 여섯 편의 시편을 잇대어 놓기로 하였습니다. 이번 주일에는 생동감 넘치는 예배란 첫 번째 기둥과 주 예수를 전파하는 전도라는 두 번째 기둥에다 하나님의 집이 그려진 시편의 말씀을 수놓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에는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교육이란 세 번째 기둥과 이웃을 섬기는 봉사라는 네 번째 기둥에다 하나님의 집이 그려진 시편 말씀을 새겨 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주님의 임재하심으로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드립니다.
1
1절 말씀을 보면, 안디옥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분들의 면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마음은 따뜻하고 두 눈에는 하늘 안경을 쓴 바나바가 있었고, 피부색은 비록 검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 있었고, 아프리카 촌뜨기였지만 마음에는 주님의 얼굴이 그려진 구레네 사람 루기오도 있었습니다.
하늘에 속한 백성이 되고 보니 왕족도 배설물 같은 것이어서 안디옥으로 달려온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도 있었고, 교회를 핍박하고 잔멸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그릇이 된 바울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신분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릅니다.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 다르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인생 여정이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안디옥에서 주님의 몸인 교회를 이루었고, 주님의 몸을 이루었기에 복된 예배자로 섭니다. 주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금식하면서 예배를 드립니다. 금식하며 예배를 드릴 때 성령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라.” 이것이 주님이 임재하심으로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드렸던 사도행전 속 안디옥교회의 모습입니다.⇭
2
시편 92편 1-3절 말씀을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노래하는 일,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또 있사오리까? 아침에는 주님의 사랑을 알리고 밤이면 주님의 미쁘심을 전하는 일, 그보다 더 좋은 일이 다시는 없사옵니다. 열 줄 비파를 뜯으며 수금 가락에 맞추어 노래합니다. 여호와여, 주님의 업적을 생각하며 이 몸은 행복합니다. 손수 이루신 일들을 눈앞에 그리며 환성을 올립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을 가장 좋아합니까? 무엇을 할 때 가장 기쁩니까?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합니까? 시인은 다른 날도 아니고 복된 주일에, 다른 곳도 아니고 가장 거룩한 아버지의 집에서, 다른 일도 아니고 주님을 높여 찬송하는 일, 이 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고 고백합니다.
아침마다 주님의 사랑을 알렸습니다. 밤마다 주님의 미쁘심을 전하였습니다. 그렇게 엿새를 보내고 거룩한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집에 모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 서서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보니, “에벤에셀” 주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습니다. 예배자로 서서 내 주위를 둘러보니, “임마누엘” 주님께서 은혜로운 손길로 함께 하십니다. 예배자로서 서서 앞을 바라보니, “여호와이레”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좋은 것으로 준비하고 계시니, 그저 행복하여 주님을 높여 찬송을 부릅니다. 이것이 주님의 임재로 인하여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드리는 안디옥교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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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인생결산서에서 하나님은 이런 글을 적어주셨습니다. “내 마음에 합한 사람,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란 복된 글을 적어주십니다. 그 날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저는 보잘 것 없는 이새의 말째 아들이었고, 베들레헴 들녘에서 양 궁둥이를 쫓던 목동이었는데, 그런 저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해 주신 것,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잘 다스릴 수 있었던 것, 참 고맙고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더 고맙고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찬송 잘하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기쁨으로 노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로 찬송했던 것입니다. 저는 예배자로 설 때마다 아침 해 돋는 볕이었고, 단비 버금도 돋아나는 새싹이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임재로 인하여 생동감 넘치는 예배를 드리는 안디옥교회인데, 그런 예배자로 승리하는 안디옥식구들의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주 예수를 전파하는 전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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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 집사의 순교와 함께 예루살렘에는 큰 환난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환난으로 인하여 흩어진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몇 백리 북쪽에 있는 안디옥까지 이르렀습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서 고향을 등지고 낯선 타향에 왔지만 가슴에 담긴 복음의 불꽃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안디옥에서도 “주 예수”를 증거 합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제는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 안디옥교회에 누가 함께 하십니까? “주의 손”이, 주님의 손이 주 예수를 전하는 안디옥식구들과 함께 하시니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날마다 구원받는 성도들이 더하여 지는 것, 우리가 세워가야 두 번째 기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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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말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군대장관 요압을 급히 부릅니다. “우리나라 북쪽 끝에 있는 단이라는 마을부터 남쪽 끝에 있는 브엘세바까지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하도록 하라. 어린아이들은 헤아릴 필요가 없고, 노인들도 헤아릴 필요가 없고, 아낙네들도 필요가 없네. 젊은 장정들, 군대에 나갈 수 있는 장정들의 숫자를 조사해 오도록 하라.”
요압 장군이 간청을 합니다. “임금님, 우리가 언제 군대의 숫자를 믿고 전쟁을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군대의 숫자를 의지한다면 하나님 앞에 그릇된 것입니다. 하오니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럼에도 다윗이 재촉을 합니다. 불호령을 내립니다. 요압은 인구조사를 나갔고, 갓 선지자가 등장을 합니다.
“임금님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으셨습니다. 벌을 내리시는데 다음 세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임금님의 땅에 7년 동안 기근이 드는 것이고, 둘째는 임금님이 원수들에게 석 달을 쫒기는 것이고, 셋째는 임금님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도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흘 동안 전염병이 도는 것을 택하였고, 하나님께서 전염병의 재앙을 내리십니다. 첫째 날 아침부터 낮 열두시까지 재앙이 내리는데, 죽어나간 사람이 무려 칠만 명입니다. 사흘 동안 전염병이 돌게 했다가는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급히 마음을 돌이키시고 재앙을 멈추게 합니다.
다윗은 그날 재앙이 멈추어 섰던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삽니다. 소와 멍에도 삽니다. 제단을 쌓고, 멍에를 땔감으로 올려놓고, 소를 제물로 삼아서 감사의 제사인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기뻐하면서 화목제를 드립니다. 이렇게 죽음이 멈추어 선 곳, 재앙이 멈추어 선 곳이 하나님의 성전, 주님의 집에 세워지는 터가 됩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는 곳이고, 그러기에 교회는 베옷을 벗고 기쁨으로 띠를 띠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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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 완성된 곳은 골고다 언덕 위에 십자가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이 열리는 부활입니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과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위에 세워진 것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담고 있는, 주님의 몸인 교회입니다. 교회가 담고 있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신분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합니다. 교회가 담고 있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속성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죽음의 어둠이 생명의 빛으로 속성이 변화합니다. 교회가 담고 있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삶의 자리를 변화시킵니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이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사람으로 삶의 자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던 밤, 성찬을 제정하시어 교회 안에 보물도 담아놓으십니다. 떡을 찢기신 주님을 몸으로 받으면서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게 하시고, 전에 참여하면서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 연합의 신비를 이루게 하시고, 떡과 잔에 참여하면서 십자가와 부활로 복음이 되시는 예수님을 땅 끝까지 전하게 하십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전하게 합니다. 그러기에 안디옥교회는 땅 끝까지 주 예수를 전파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께로 돌아오는 사람을 더하게 해야 합니다. 전도와 선교에 깨어 있는 저도 되고 여러분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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