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누기

2024. 04. 14.(주일낮) 첫 열매, 한 사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4-12 12:06
조회
781
제목: 첫 열매, 한 사람
성경: 고린도전서 15 : 12 - 24

1
고린도교회는 은혜의 흔적들을 간직한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떠난 후 아주 혼돈스러워집니다. 하나 되어야 할 교회 안에 파벌이 생기면서 분쟁이 끊이질 않고, 성결해야 할 교회임에도 음행으로 인해서 비난을 받습니다. 주님의 식탁에 둘러앉아서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은사가 분명 하나님의 선물인데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품위를 잃어갑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정하는데, 성도의 부활은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이토록 혼돈스러운 이유, 바울이 전한 ‘복음’ 위에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에, 고린도교회가 이토록 추락하는 이유,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 한 분 한 분의 믿음이 ‘복음’ 위에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진단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믿음의 기본이 되는 ‘복음의 내용’을, 구원의 능력이 되는 ‘복음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소개하고 있습니다.

2
복음은 성경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복음은 성경대로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부활로 끝이 아닙니다. 완전한 복음은, 온전한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신령한 몸을 덧입고,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그리스도인의 부활로 복음은 완성이 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고, 십자가에 보혈이 내 심령으로 흘러드는 것에 대하여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도 믿으면서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는 “성도의 부활”, “그리스도인의 부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의심합니다.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3
설문조사를 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베들레헴 말구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을 찾아오신 것을 믿습니다. 비린내 나는 뱃고물, 고난의 삶을 사셨지만 그 분의 삶에는 향기가 있고, 그 분의 가르침에는 길이 있고, 그 분의 인품에는 하나님이 되신 영광스러움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골고다 언덕 나무 십자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고귀하고도 거룩한 죽음이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사한지 사흘 만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문을 여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설령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겠는데, 왜냐하면 그 분은 사람이시며 하나님이셨으니까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믿겠는데, 성도의 부활, 그리스도인의 부활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몸을 지닌 우리가 다시 산다. 더더욱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 몸이 다시 산다.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4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2,000년 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쓸 당시나 2,000년이 흘러서 그 편지를 읽은 지금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이런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아테네에 이르러 헬라 철학자들과 토론을 펼치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날 바울의 메시지는 이러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친히 지으신 분이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인류 역사의 연대를 정하시고, 각 민족과 나라를 따라서 경계를 정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의 몸도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삽니다. 우리 몸이 죽어서 땅에 묻힌다 하더라도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 되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5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전하자 사람들의 반응이 셋으로 나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롱하였습니다. 이성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구름을 잡으려는 듯 허황된 이야기라며 조롱한 것입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여서 좀 더 들어보고, 상식적인 이야기가 아니어서 좀 더 생각해 보겠다는 믿겠다고 결정을 유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바울의 설교를 듣고 친히 믿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을 가까이 하여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부활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부활까지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날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믿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웠으면 그 분들의 이름을 성서 속에 지워지지 않도록 기록하고 있는데, 아레오바고 관원인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자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듣는 안디옥식구들 중에 남자 성도님들은 “디오누시오”처럼, 여자 성도님들은 “다마리”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넘어 그리스도인의 부활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으로 복되시기를 축복합니다.

6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잇대어 놓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연결시켜 놓는 장면을 오늘 우리가 읽었는데요, 오늘 읽는 성경은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들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는데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도 망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소망하고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연결시키는데 “첫 열매”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스도인의 부활을 연결시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잇대어 놓은데 “한 사람”을 가지고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잇대어 놓습니다. 먼저 첫 열매에 초점을 맞춥니다.

첫째 첫 열매입니다.
1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까? “잠자는 자들”, 여기서 “잠자는 자들”이란 죽은 사람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까?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들에 임한 은혜임을 감사하면서 함께 읽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
우리 교회의 인사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시다.” “교회를 아름답게 합시다.” “이웃을 기쁘게 합시다.” 이런 인사말은 사사기에 담겨 있는 요담의 비유 속에서 가져왔습니다. 나무들의 왕이 되어달라고 하는 요구에 대하여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그리고 포도나무가 완곡하게 거절을 합니다. “감람나무는 영화롭게 하는 기름을 어찌 버리고, 무화과나무는 아름답게 하는 열매를 어찌 버리고, 포도나무는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어찌 버리고 나무들 위에 우쭐 대리요.”

요담의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성서의 땅에 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세 종류의 나무가 있는데, 영화로운 기름을 내는 감람나무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와 기쁨의 포도주를 내는 포도나무입니다. 오늘 우리는 “첫 열매”를 만나기 위해서 무화과나무에 초점을 맞춥니다. 무화과나무는 가지가 자라면 잎이 돋아나고, 잎이 돋아나면 잎사귀가 가지 사이에 열매가 맺히는데, 잎이 돋아나면서 열매가 맺히니까 열매가 맺히는 시기가 서로 다르고요, 익어서 거두는 것도 다릅니다. 그래서 한 여름에 무화과 열매를 거두기 시작하면 서리 내릴 때까지 거둡니다. 그러니 첫 열매 있고, 두 번째 열매가 있고, 세 번째 열매가 있고, 마지막 열매가 있습니다. 그런 한 나무에 첫 열매가 첫 열매와 두 번째 열매는 모양이 같습니다. 색깔도 같습니다. 맛도 같습니다.

3
그렇듯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두 번째 열매가 되니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사신 것처럼 우리도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삽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사신 것처럼 우리도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삽니다. 예수님께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신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도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니,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 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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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 모두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면서 복음서의 막을 내리는데, 첫 번째 부활절 아침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안식일이 다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마태28:1) 마가복음은 “안식일이 지나매”(마가16:1) 누가복음은 “안식 후 첫날 새벽에”(누가24:1) 그리고 요한복음은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요한20:1) 예수님이 부활하신 시간을 정확히 적고 있는데, “안식일이 지나고 첫 번째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 날은 “부활의 첫 열매”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이 일 년을 지나면서 지키는 명절 중에 “초실절, 첫 열매를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명절”이 있습니다. 그 해 밀과 보리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먼저 익은 보리를 낫으로 벱니다. 단으로 묶습니다. 제사장에게로 가지고 갑니다. 제사장은 그렇게 가져온 보릿단을 하나님 앞에서 들고, 좌우로 흔들어 하나님 앞에 성별한 후에 보리를 빻아서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보리를 볶아서 일용할 양식으로 삼기도 합니다. 초실절에 드려진 첫 열매로 인하여 그 해에 거두어들이는 모든 밀과 보리가 하나님 앞에서 복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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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초실절 명절은 언제 지키는가? “유월절”은 날짜로 못 박아 정해져 있습니다. 정월 열나흘 날 밤이 유월절입니다. 그리고 정월 보름부터 한 주간, 정월 이십이 일까지가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을 먹는 “무교절”입니다. 한 주간 계속되는 정월 15일부터 22일까지 무교절기 동안에는 안식일이 들어있겠습니까? 들어 있지 않겠습니까? 안식일이 당연히 들어있겠지요? 무교절에 들어있는 안식일 다음날, 안식일 이튿날이 초실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신 날은 유월절 깊은 밤이었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날은 그해 무교절 첫째 날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날, 무교절 한 가운데 들어 있는 안식일 그 이튿날이니, 그해 초실절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성도들도 부활하기 때문에 주님은 초실절에 부활하시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둘째 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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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연결시키는데 “첫 열매”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스도인의 부활을 잇대어 놓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연결시키는데, “한 사람”을 가지고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잇대어 놓습니다. 지금까지는 “첫 열매”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에는 “한 사람”에 초점을 맞춥니다.

2
21절과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는데, 그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담”입니다. 그렇듯 “한 사람”으로 죽은 자의 부활이 들어왔는데, 그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그러기에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담의 후예로 태어난 사람이 반드시 죽는 것처럼 확실한 것이 있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부활에 참여하면서 영원한 삶을 얻는 것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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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말씀합니다. 로마서 5장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기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담입니다. 아담이 범죄 하던 날,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은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이것이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의 실존입니다. 몸은 흙으로 만들어진 것, 얼굴에 땀을 흘리면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 모든 인간의 실존입니다. 남자든지 여자든지, 피부색이 하얀 사람이든지 검은 사람이든지, 옛날 사람이든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든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입니다.

4
죽음이 확실한 것처럼 확실한 것이 또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입니다. 아담의 후예로 태어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처럼 확실한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①“한 사람”, 아담의 범죄 함으로 모든 많은 사람이 죽은 것처럼,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고, 영화롭게 됩니다. ②“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니 죽은 자의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이 확실한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이 확실한 것입니다. 이것에 흔들림이 없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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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맺습니다. 복음은 성경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복음은 성경대로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신앙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으로 시작하여 그리스도인의 부활로 완성이 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연결시키는데 “첫 열매”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스도인의 부활을 연결시키고,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잇대어 놓은데 “한 사람”을 가지고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을 잇대어 놓습니다. 첫 열매이신 예수님에게 연결된 것으로 인하여, 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는 부활의 계절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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