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7.(주일낮) 하나님의 어린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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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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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5 12:05
조회
870
제목: 하나님의 어린 양
성경: 요한 1 : 29 - 34
1
세례 요한의 삶은 청빈하였습니다. 삶의 터전은 요단 강변 갈대숲이었고, 입은 옷은 낙타 털옷이 전부였습니다. 마주하는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지만 메시지는 불을 뿜어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리라.”
사람들은 요한의 삶을 지켜보면서 요한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감동하였고, 회개의 표시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가르침을 따라 옷 두 벌 있는 사람은 옷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고, 세리들은 정한 세금 외에 무거운 짐을 백성들의 어깨에 올려놓지 않았고, 군인들도 강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받는 월급을 족하게 여겼습니다. 세례 요한이 장안에 화제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요단 강변으로 몰려들자 긴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산헤드린의회 의원들이었습니다.
2
산헤드린의회 의원들은 율법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제사장들을 요단강변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장안의 화제처럼, 민심의 흐름처럼 세례 요한이 메시야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보냄을 받은 제사장들이 묻습니다. “네가 누구냐?” 요한은 한 치의 숨김도 없이,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면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세례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나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입니다. 깊은 골짜기는 메우고, 가로막는 언덕을 낮추고, 굽은 곳은 곧게 펴고, 험한 곳은 평탄하게 하면서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3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튿날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로 나왔고 요한은 많은 백성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여러분, 주목하여 저를 보십시오. 이 분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이 분은 나보다 앞선 분,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이십니다. 이 분이 하나님의 어린 양인 증거, 이 분이 나보다 앞선 분인 증거가 있습니다. 제가 이 분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이 분이 세례를 받으신 후 물 위로 올라오셔서 기도를 드리실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강림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세례 요한의 증언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가 물로 세례를 베풀다가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그리스도인 줄 알라.’ 그러니 이 분이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시고, 나보다 먼저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십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요한1:29)
1
평범한 남정네가 죄를 범하였습니다. 죄가 마음을 짓누름으로 뼈는 쇠하였고, 삶은 여름가뭄에 말라비틀어진 풀과 같이 되었습니다. 남정네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흠 없는 어린 양을 하나님의 집인 성막으로 끌고 옵니다. 남정네는 제사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물로 가져온 어린 양의 머리에 손을 얹습니다. 남정네의 무거운 죄 짐을 어린 양이 대신 짊어지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칼을 들어 남정네의 죄를 대신 짊어진 어린 양을 찌릅니다. 어린 양이 죽어가면서 흘리는 피를 대야에 담습니다. 대야에 담긴 어린 양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제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는 제단 밑에 쏟으면서, 남정네에게는 죄를 씻어 기쁜 날, 속량함의 은혜를 입어 좋은 날이 임하였습니다. 이렇게 남정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피를 흘린 어린 양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속죄의 어린 양”이라고 부릅니다.(레5:1-6)
2
하나님은 노예 되어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 땅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는데, 열 번째 재앙은 사람의 맏아들과 짐승의 초태생이 죽어나가는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재앙이 임하지 않고 넘어가는 유일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정월 열나흘 밤 흠이 없는 어린 양을 잡고,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릅니다. 문설주에 발라진 어린 양의 피를 볼 때 죽음의 재앙이 임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해서 그 날을 “유월절”이라 이름하고, 그날 온 가족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은 양을, “유월절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출12:1-14)
3
유대력으로는 일곱째 달 열 번째 날인데 요즈음 우리네 달력으로는 가을 추수를 끝낸 10월 10일쯤 됩니다. 그날이 오면 모든 백성들은 일손을 멈추고, 성회를 모입니다. 그날이 오면 다른 때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예식이 진행됩니다. 두 마리의 염소를 성막 문 앞으로 끌고 옵니다. 대제사장은 두 마리의 염소를 앞에 놓고 제비를 뽑습니다. 제비를 뽑아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로,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로 결정을 합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그 해, 모든 백성이 지은, 모든 죄를 씻는 속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속죄제를 마친 후 아사셀을 위하여 뽑힌, 살아있는 염소의 머리 위에 대제사장이 두 손을 얹습니다. 백성들이 지은 모든 불의, 모든 죄를 큰 소리로 아뢰어 염소로 짊어지게 합니다. 그리고는 미리 맡은 사람이 염소를 끌고 광야로 나갑니다. 아사셀의 염소가 멀리 광야로 나가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면 백성들은 기뻐하며 환호합니다. 모든 죄가 광야에 사는 마귀로부터 왔는데, 마귀로부터 온 모든 죄를 염소가 대신 짊어지고 광야로 돌아갔음에 기뻐합니다. 이 염소를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아사셀의 염소” 또는 “아사셀의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레16:1-34)
4
지금까지 우리는 구약성서 속에 세 마리의 어린 양을 만나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속죄의 어린 양”이고요, 두 번째는 “유월절의 어린 양”이고요, 세 번째는 “아사셀의 어린 양”입니다. 그런데 구약성서 속에 그려진 세 마리의 어린 양들이 하나같이 바라보는 분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속죄의 어린 양은 그림자입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도 그림자입니다. 아사셀의 어린 양도 그림자입니다. 마침내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 되실,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십자가 위에서 완성시킬, 단 한 번의 드림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그러기에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증거 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5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실 것에 대하여 가장 풍성하게 예언하였던 선지자는 이사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나타나실 것을 기다리면서,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야를 기대하면서 “그분이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분이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입니다. 그분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사53:5-6)
6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기다리면서 찬송하였다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어린 양의 보배로운 피에 흠뻑 젖어 이렇게 간증합니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그렇듯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으니,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었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었습니다.”(롬5:19)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성서 속에서 그림자가 되었던 하나님의 어린 양과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신 예수님을 이렇게 비교하였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속죄의 어린 양이 죽어야 했고, 해마다 속죄일이 돌아오면 염소는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자기의 피로 이 세상 모든 죄를 씻었고,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단 한 번의 피 흘리심은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7
바울만 하나님의 어린 양의 보혈에 흠뻑 젖어들었던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사도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 은이나 금처럼 없어질 것,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흠 없는 어린 양의 보혈, 오직 점 없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입니다.”(벧전1:18-19)
사도요한은 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신 예수님을 이렇게 펼쳐냅니다. 하늘이 열리는데,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이 보입니다. 큰 무리는 하나같이 성결케 된 흰옷을 입었고, 하나같이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향하여 찬송을 부르는데,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이렇게 찬송을 부르는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데, 하늘 장막을 쳐서 보호하십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데, 친히 목자가 되시어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십니다.(계7:9-17) 예수님은 누구신가?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둘째 나보다 먼저 계신 하나님이십니다.(요한1:30)
1
2,000년 전 유대 땅, 지금과 같은 주민등록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민등록증이 있었다고 가정을 하고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주민등록증을 비교해 보면, 누구의 생년월일이 빠릅니까? 세례 요한의 생년월일이 빠릅니까? 성경은 세례 요한의 생년월일이 정확하게 얼마나 빠르다고 합니까? 여섯 달, 6개월이 빠르답니다. 그럼에도 오늘 읽은 말씀에 보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합니다.
“제가 전에 말씀드렸지요. 내 뒤에 오는 분이 도리어 나보다 앞선 분이라고요. 그 분이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생년월일도 따지면 예수님은 나보다 6개월 나중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누가복음이 열리면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분은 “사가랴”입니다. 2,000년 전 헤롯대왕 때 유대 땅에 살았던 사람인데, 아론의 후손으로 백성들의 눈물과 아픔을 하나님께로 가져가는,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백성들에게로 가져오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제사장인 것도 복되지만 더 복된 것은 아내 엘리사벳과 함께 부부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펼쳤습니다.
제사장 사가랴가 속해 있는 아비야 반열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 제의를 한 주간 담당하게 되었고, 어느 날 영광스럽게도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을 할 수 있도록 제비에 뽑혔습니다. 평생을 제사장으로 살아가면서 한두 번 찾아오는 영화롭고 복된 기회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 날의 복된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그려냅니다.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누가1:9)
더 복된 것은 분향 할 때 주의 천사가 향단 우편에 나타납니다.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누가1:13) “요한의 태어남으로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많은 사람들도 그의 태어남으로 기뻐하리라.”(누가1:14)
3
그런 일이 있고, 정확하게 여섯 달이 지났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가브리엘 천사는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를 찾아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누가1:28) 마리아가 놀라워하자 천사는 좋은 소식을 전합니다.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누가1:30-31)
이렇게 성경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태어난 예수님보다 엘리사벳의 몸을 통해서 태어난 세례 요한이 예수님 앞서 왔다고, 먼저 태어났다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럼에도 요한은 나보다 예수님이 앞섰다고, 나보다 먼저 계셨다고 밝힙니다. 무슨 뜻입니까? 나 요한은 어머니 태에서 태어나던 날부터 존재하는 사람이지만,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태어나시던 날부터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시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오늘, 지금”이라는 시간에만 존재합니다. 그리고 “여기, 이곳”이라는 공간에만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간을 초월하여 전에도 계시고 이제도 계시고 영원무궁토록 계신 분이시고, 공간을 초월하여 하늘과 땅 어디에나 계신 분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보다 먼저 계신 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보다 먼저 계신 분이십니다. 아니 모든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이십니다. 그도 그런 것이 그 분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입니다. 아니 모든 만물이 하나님이신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골1:17)
4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분명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지만 나보다 앞선 것은 그 분은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1:14)라고 하였고,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 분은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우시고 종의 형체, 사람의 모양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빌2:6-7)
5
말씀을 정리합니다. 주님의 길을 예비하였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이렇게 두 가지로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예수님은 만물보다 먼저 계신 하나님이신데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신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로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비우시고 사람으로 오신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낮아지심으로 나를 높이시되 하늘 백성이 되게 하시고, 하늘 위에서 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복된 성탄절을 준비하고, 만물보다 먼저 계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기쁜 성탄절을 준비하는 안디옥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 요한 1 : 29 - 34
1
세례 요한의 삶은 청빈하였습니다. 삶의 터전은 요단 강변 갈대숲이었고, 입은 옷은 낙타 털옷이 전부였습니다. 마주하는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지만 메시지는 불을 뿜어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리라.”
사람들은 요한의 삶을 지켜보면서 요한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감동하였고, 회개의 표시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가르침을 따라 옷 두 벌 있는 사람은 옷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고, 세리들은 정한 세금 외에 무거운 짐을 백성들의 어깨에 올려놓지 않았고, 군인들도 강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받는 월급을 족하게 여겼습니다. 세례 요한이 장안에 화제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요단 강변으로 몰려들자 긴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산헤드린의회 의원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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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드린의회 의원들은 율법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제사장들을 요단강변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장안의 화제처럼, 민심의 흐름처럼 세례 요한이 메시야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보냄을 받은 제사장들이 묻습니다. “네가 누구냐?” 요한은 한 치의 숨김도 없이,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면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세례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나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입니다. 깊은 골짜기는 메우고, 가로막는 언덕을 낮추고, 굽은 곳은 곧게 펴고, 험한 곳은 평탄하게 하면서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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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튿날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로 나왔고 요한은 많은 백성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여러분, 주목하여 저를 보십시오. 이 분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이 분은 나보다 앞선 분,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이십니다. 이 분이 하나님의 어린 양인 증거, 이 분이 나보다 앞선 분인 증거가 있습니다. 제가 이 분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이 분이 세례를 받으신 후 물 위로 올라오셔서 기도를 드리실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강림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세례 요한의 증언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가 물로 세례를 베풀다가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그리스도인 줄 알라.’ 그러니 이 분이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시고, 나보다 먼저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십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요한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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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남정네가 죄를 범하였습니다. 죄가 마음을 짓누름으로 뼈는 쇠하였고, 삶은 여름가뭄에 말라비틀어진 풀과 같이 되었습니다. 남정네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흠 없는 어린 양을 하나님의 집인 성막으로 끌고 옵니다. 남정네는 제사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물로 가져온 어린 양의 머리에 손을 얹습니다. 남정네의 무거운 죄 짐을 어린 양이 대신 짊어지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칼을 들어 남정네의 죄를 대신 짊어진 어린 양을 찌릅니다. 어린 양이 죽어가면서 흘리는 피를 대야에 담습니다. 대야에 담긴 어린 양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제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는 제단 밑에 쏟으면서, 남정네에게는 죄를 씻어 기쁜 날, 속량함의 은혜를 입어 좋은 날이 임하였습니다. 이렇게 남정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피를 흘린 어린 양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속죄의 어린 양”이라고 부릅니다.(레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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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노예 되어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 땅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는데, 열 번째 재앙은 사람의 맏아들과 짐승의 초태생이 죽어나가는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재앙이 임하지 않고 넘어가는 유일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정월 열나흘 밤 흠이 없는 어린 양을 잡고,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릅니다. 문설주에 발라진 어린 양의 피를 볼 때 죽음의 재앙이 임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해서 그 날을 “유월절”이라 이름하고, 그날 온 가족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은 양을, “유월절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출1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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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력으로는 일곱째 달 열 번째 날인데 요즈음 우리네 달력으로는 가을 추수를 끝낸 10월 10일쯤 됩니다. 그날이 오면 모든 백성들은 일손을 멈추고, 성회를 모입니다. 그날이 오면 다른 때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예식이 진행됩니다. 두 마리의 염소를 성막 문 앞으로 끌고 옵니다. 대제사장은 두 마리의 염소를 앞에 놓고 제비를 뽑습니다. 제비를 뽑아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로,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로 결정을 합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그 해, 모든 백성이 지은, 모든 죄를 씻는 속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속죄제를 마친 후 아사셀을 위하여 뽑힌, 살아있는 염소의 머리 위에 대제사장이 두 손을 얹습니다. 백성들이 지은 모든 불의, 모든 죄를 큰 소리로 아뢰어 염소로 짊어지게 합니다. 그리고는 미리 맡은 사람이 염소를 끌고 광야로 나갑니다. 아사셀의 염소가 멀리 광야로 나가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되면 백성들은 기뻐하며 환호합니다. 모든 죄가 광야에 사는 마귀로부터 왔는데, 마귀로부터 온 모든 죄를 염소가 대신 짊어지고 광야로 돌아갔음에 기뻐합니다. 이 염소를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아사셀의 염소” 또는 “아사셀의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레16: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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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구약성서 속에 세 마리의 어린 양을 만나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속죄의 어린 양”이고요, 두 번째는 “유월절의 어린 양”이고요, 세 번째는 “아사셀의 어린 양”입니다. 그런데 구약성서 속에 그려진 세 마리의 어린 양들이 하나같이 바라보는 분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속죄의 어린 양은 그림자입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도 그림자입니다. 아사셀의 어린 양도 그림자입니다. 마침내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 되실,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십자가 위에서 완성시킬, 단 한 번의 드림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그러기에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증거 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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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실 것에 대하여 가장 풍성하게 예언하였던 선지자는 이사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나타나실 것을 기다리면서,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야를 기대하면서 “그분이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분이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입니다. 그분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사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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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기다리면서 찬송하였다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어린 양의 보배로운 피에 흠뻑 젖어 이렇게 간증합니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그렇듯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으니,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었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었습니다.”(롬5:19)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성서 속에서 그림자가 되었던 하나님의 어린 양과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신 예수님을 이렇게 비교하였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속죄의 어린 양이 죽어야 했고, 해마다 속죄일이 돌아오면 염소는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자기의 피로 이 세상 모든 죄를 씻었고,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단 한 번의 피 흘리심은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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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만 하나님의 어린 양의 보혈에 흠뻑 젖어들었던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사도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 은이나 금처럼 없어질 것,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흠 없는 어린 양의 보혈, 오직 점 없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입니다.”(벧전1:18-19)
사도요한은 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신 예수님을 이렇게 펼쳐냅니다. 하늘이 열리는데,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이 보입니다. 큰 무리는 하나같이 성결케 된 흰옷을 입었고, 하나같이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향하여 찬송을 부르는데,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이렇게 찬송을 부르는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데, 하늘 장막을 쳐서 보호하십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데, 친히 목자가 되시어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십니다.(계7:9-17) 예수님은 누구신가?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둘째 나보다 먼저 계신 하나님이십니다.(요한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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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유대 땅, 지금과 같은 주민등록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민등록증이 있었다고 가정을 하고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주민등록증을 비교해 보면, 누구의 생년월일이 빠릅니까? 세례 요한의 생년월일이 빠릅니까? 성경은 세례 요한의 생년월일이 정확하게 얼마나 빠르다고 합니까? 여섯 달, 6개월이 빠르답니다. 그럼에도 오늘 읽은 말씀에 보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합니다.
“제가 전에 말씀드렸지요. 내 뒤에 오는 분이 도리어 나보다 앞선 분이라고요. 그 분이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생년월일도 따지면 예수님은 나보다 6개월 나중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누가복음이 열리면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분은 “사가랴”입니다. 2,000년 전 헤롯대왕 때 유대 땅에 살았던 사람인데, 아론의 후손으로 백성들의 눈물과 아픔을 하나님께로 가져가는,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백성들에게로 가져오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제사장인 것도 복되지만 더 복된 것은 아내 엘리사벳과 함께 부부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펼쳤습니다.
제사장 사가랴가 속해 있는 아비야 반열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 제의를 한 주간 담당하게 되었고, 어느 날 영광스럽게도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을 할 수 있도록 제비에 뽑혔습니다. 평생을 제사장으로 살아가면서 한두 번 찾아오는 영화롭고 복된 기회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 날의 복된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그려냅니다.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누가1:9)
더 복된 것은 분향 할 때 주의 천사가 향단 우편에 나타납니다.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누가1:13) “요한의 태어남으로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많은 사람들도 그의 태어남으로 기뻐하리라.”(누가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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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고, 정확하게 여섯 달이 지났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가브리엘 천사는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를 찾아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누가1:28) 마리아가 놀라워하자 천사는 좋은 소식을 전합니다.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누가1:30-31)
이렇게 성경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태어난 예수님보다 엘리사벳의 몸을 통해서 태어난 세례 요한이 예수님 앞서 왔다고, 먼저 태어났다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럼에도 요한은 나보다 예수님이 앞섰다고, 나보다 먼저 계셨다고 밝힙니다. 무슨 뜻입니까? 나 요한은 어머니 태에서 태어나던 날부터 존재하는 사람이지만,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태어나시던 날부터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시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오늘, 지금”이라는 시간에만 존재합니다. 그리고 “여기, 이곳”이라는 공간에만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간을 초월하여 전에도 계시고 이제도 계시고 영원무궁토록 계신 분이시고, 공간을 초월하여 하늘과 땅 어디에나 계신 분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보다 먼저 계신 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보다 먼저 계신 분이십니다. 아니 모든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이십니다. 그도 그런 것이 그 분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입니다. 아니 모든 만물이 하나님이신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골1:17)
4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분명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지만 나보다 앞선 것은 그 분은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1:14)라고 하였고,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 분은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우시고 종의 형체, 사람의 모양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빌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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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정리합니다. 주님의 길을 예비하였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이렇게 두 가지로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예수님은 만물보다 먼저 계신 하나님이신데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신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로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비우시고 사람으로 오신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낮아지심으로 나를 높이시되 하늘 백성이 되게 하시고, 하늘 위에서 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복된 성탄절을 준비하고, 만물보다 먼저 계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기쁜 성탄절을 준비하는 안디옥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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