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누기

2023. 09. 03.(주일낮) 야곱의 우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9-01 11:30
조회
1185
제목: 야곱의 우물
성경: 요한복음 4 : 3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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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읽은 말씀의 무대는 수가 성문 밖 야곱의 우물입니다. 야곱의 우물이란 무대에 등장하는 분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물을 긷기 위해서 야곱의 우물을 찾았다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선물 받은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한 편에 드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여기에서 문제를 드리겠습니다. “야곱의 우물은 약 4,000년의 역사를 지니면서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아니면 성서 속에는 등장하지만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정답을 마음에 정하셨나요?

지금부터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여인을 만나주시던 때 야곱의 우물은 실재하였습니다. 오늘 읽는 말씀에 보면 그 우물의 위치를 콕 집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넓게는 사마리아 지역이고, 좁히면 “수가”라 이름 하는 마을 성문 밖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수가 성 사람들에게 생명의 샘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위치를 설명하면서 야곱의 우물에 얽혀 있는 이야기까지 소개합니다. “야곱의 우물이 있는 그 땅은 야곱이 그의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에게 준 땅입니다.”

2
우리는 2,000년 전이 아니라 4,000년 전으로 역사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야곱은 실망한 아버지 이삭의 얼굴을 뒤로하고, 살기등등한 형님의 얼굴을 피하여 외삼촌이 살고 있는 밧단 아람으로 도망 길에 오릅니다. 어느 날 루스라 이름 하는 마을에 이르렀을 때, 하룻밤 머물 곳을 찾지 못한 야곱은 들판에서 돌을 베개하고 잠을 자게 됩니다.

그 밤 하나님은 야곱의 머리맡에 하늘 사닥다리를 놓으십니다. 사닥다리를 천사들이 오르내립니다. 사닥다리 닿았던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베개 하였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습니다. 그곳을 하나님의 집, 하늘의 문이란 뜻을 지닌 “벧엘”이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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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단 아람에 이른 야곱은 외삼촌의 집에서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칠 년 머슴을 사는데, 그때의 머슴살이를 성경은 이렇게 묘사를 합니다. “야곱이 칠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는데, 라헬을 사랑한 까닭에 칠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창29:20) 그런가 하면 외삼촌의 집에서 고생스러웠던 20년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지었습니다.”(창31:40) 어쨌든 외삼촌의 집에서 지내는 20년, 하나님은 야곱의 발이 이르는 곳마다 복을 내려주시고, 야곱이 손으로 하는 일마다 열매를 맺게 하시니, 야곱은 라헬을 비롯하여 네 명의 아내를 두게 되고, 외동딸과 열 한 명의 아들도 선물 받았고, 양떼와 소떼가 심히 많은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대가족을 이루고, 큰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풀어야 할 큰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얍복 강 건너편에서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야곱을 치기 위하여 기다리는 것입니다. 야곱은 심히 답답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의 무릎을 꿇었고,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을 하면서 허벅지 관절이 어긋납니다. 그러나 그 밤 야곱의 이름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을 지닌 이스라엘로 바뀌었고, 형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지니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뵌 것처럼 기쁩니다.” 새날을 맞이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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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타향살이를 뒤로 하고 고향 땅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장막을 친 곳이 오늘 말씀의 무대가 되고 있는 세겜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거듭난 후 약속의 땅으로 들어와 처음으로 삶의 터전을 마련한 곳이 오늘 말씀에 무대가 되고 있는 세겜입니다. 야곱의 돌베개를 베던 밤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짐을 푼 곳이 오늘 말씀에 무대가 되고 있는 세겜입니다.

그 때 일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밧단 아람에서 돌아온 야곱은 숙곳에 집을 지었습니다. 가족들이 살 집은 물론이지만 기르는 가축들을 위하여 우릿간도 지었습니다. 그리고 세겜 지역을 다스리니 하몰에게서 땅을 사게 되는데, 은 백 크시타를 주고 땅을 삽니다. 은 백 크시타가 오늘날 화폐로 정확하게 환산을 할 수는 없지만 큰돈을 건네고 그 땅을 샀고, 그곳에서 지경을 넓혀가기 위해서 우물을 팠는데, 그 우물이 “야곱의 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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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예수님께서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주시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선물 주시는데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절묘한 예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야곱의 우물”은 20년간의 이방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약속의 땅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전환점입니다. 발꿈치를 붙잡는다는 뜻을 지닌 “야곱”으로서 옛사람의 옷을 벗고,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을 지닌 “이스라엘”로서 새사람의 옷을 입는 곳이 “야곱의 우물”입니다.

그렇듯 사마리아 여인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곳이 야곱의 우물이고, 옛사람의 옷을 벗고, 새사람의 옷을 입는 곳이 야곱의 우물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으로 살다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곳이 야곱의 우물이고, 다시 목마르게 하는 세상 샘물을 구하며 살다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만난 곳이 야곱의 우물입니다. 땅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다가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변화를 받은 곳이 야곱의 우물이고, 세상 남편을 다섯씩 갈아치우다 영원한 신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곳이 야곱의 우물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야곱의 우물”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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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우물 위치가 넓게는 사마리아 지역이고, 좁히면 “수가”라 이름 하는 마을 성문 밖에 자리하고 있다고 하면서, 야곱의 우물을 품고 있는 그 땅에 설명합니다. 그 땅은 야곱이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에게 준 땅이랍니다. 그런 권한이 야곱에게는 있지요, 은 백 크시타를 건네고 그 땅을 산 사람이 야곱이고, 우물을 파서 삶의 근거지가 되게 한 사람도 야곱입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준 땅이라는 설명에는 이런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고, 흉년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은 그곳에서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어느 날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손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는 아름다운 그림이 성경 속에 그려져 있는데, 그날 야곱은 이런 축복을 합니다. “나는 비록 애굽 땅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너희의 자손들을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될 터인데, 그날 네 형제들이 땅을 분배받게 될 때, 네 아들들은 세겜을 더하여 주리라. 세겜을 덤으로 주리라.”(창48:21-22)

그렇게 야곱은 애굽에서 죽었고, 요셉은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장례행렬을 가나안 땅에 잇대어 놓았고, 요셉도 임종을 하면서 유언을 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때가 되면 반드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될 터인데 그때 내 유골을 여기서 메고 올라가도록 하라.” 아버지 야곱의 죽음을 애굽 땅에 잇대어 놓지 않고 약속의 땅에 잇대어 놓았고, 자신의 죽음도 애굽 땅에 잇대어 놓지 않고 약속의 땅 야곱의 우물에 잇대어 놓으면서, 성경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여러분의 삶도, 야곱의 우물, 하늘나라에 잇대어 놓으십시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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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창세기는 어떤 이야기로 막을 내립니까? 요셉도 임종을 하면서 유언을 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때가 되면 반드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될 터인데 그때 내 유골을 여기서 메고 올라가도록 하라.” 요셉이 애굽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요셉이 바라보았던 곳은 야곱의 우물이 있는 약속의 땅, 야곱의 우물에 담겨 있는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창세기 다음이 출애굽기인데 출애굽기는 어떤 이야기로 문을 열까요?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나오던 날, 요셉의 유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의 유골을 메고 나옵니다. 그렇게 시작된 출애굽의 역사는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됩니까? 아니면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열두 지파가 땅을 분배받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됩니까? 약속의 땅을 분배 받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는데, 요셉의 유골을 야곱의 우물이 있는 세겜에 장사하는 것으로 출애굽의 역사는 마무리가 됩니다.

모세를 뒤이어 이스라엘을 이끈 여호수아가 요단을 건넙니다. 약속의 땅에 살고 있던 일곱 부족과 치열한 전투를 펼쳐 그 땅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차지한 그 땅을 열두 지파가 분배받는 이야기가 여호수아서입니다. 이런 여호수아서의 결론, 마지막 이야기는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산 세겜 땅, 야곱이 요셉에게 약속한 세겜 땅, 그곳에 요셉의 유골을 장사하는 이야기로 막을 내립니다. 그러고 보면 야곱의 우물에는 완성된 하늘나라가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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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우물”에는 두 가지 이미지가 깃들이는데, 하나는 야곱이 이스라엘로 거듭나서 첫 발을 들여놓는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영원한 안식을 얻는 이미지입니다. 그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주시는 것, 그 야곱의 우물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시는 것, 우연이 아닙니다. 계획하심이 있으십니다.

이 이야기를 읽은 우리들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야곱처럼 거듭나서 새 출발을 한 야곱의 우물이 있습니까?” “야곱의 우물 곁에 묻히는 요셉처럼 하늘나라에 잇대어져 있습니까? 야곱의 우물이 있습니까?”라고 묻고 있는데,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멘, 저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안디옥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주님의 식탁이 야곱의 우물을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의 식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구원의 은총이 감사하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이루어지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오늘 받는 성찬이 야곱의 우물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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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야곱의 우물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에는 사마리아여인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요한복음 3장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니고데모”라고 이름을 밝히지만 요한복음 4장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인은 이름을 밝히고 있지 않아서 “아무개씨”라고 부르겠습니다.

아무개씨는 사마리아인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처럼 생각을 해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식탁에 함께 앉아서 밥을 먹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지도 않고, 함께 회당을 세우지도 않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아무개씨는 정통 유대인들부터 멸시를 받는 사마리아인입니다. 아무개씨는 여성입니다. 그 당시 남성과 여성은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숫자를 셀 때 여성은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아무개씨가 유대인이 아니고 사마리아인이라도 이름이 있었겠지요, 남성이 아니고 여성이라도 이름이 있었겠지요. 그런데 이름을 소개하지 않습니다. 이름은 소개하지 않으면서 아무개씨가 예수님을 만난 시간은 소개합니다. 몇 시랍니까? 여섯 시랍니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을 바꾸면 하루 중이 가장 뜨거운 때인 낮 12시, 정오랍니다. 이렇게 시간을 적어 놓은 이유가 있습니다. 수가 성 사람들은 아침과 저녁, 서늘할 때에 무리를 이루어 웃음꽃을 피우면서 물을 기르곤 하였는데, 아무개씨는 어울릴 수 없었습니다. 방탕한 여인으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무개씨를 우리 주님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만나주셨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선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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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3장에서 만난 니고데모와 4장에서 만나고 있는 아무개씨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니고데모는 정통 유대인이고, 아무개씨는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사마리아인입니다. 니고데모는 남성이고, 아무개씨는 사람의 숫자에 들지 못하던 여성입니다. 니고데모는 승리한 백성이란 뜻을 지닌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소개하는데, 아무개씨는 이름을 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경건한 삶을 펼치던 바리새인이면서 산헤드린 의회 의원이면서 존경받는 랍비였는데, 아무개씨는 낮 열두시에 우물을 찾아야 하는 멸시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사회적인 신분이 대조적인데 우리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길을 활짝 열어주셨고, 아무개씨에게도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복음이 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면 그가 누구든지, 그가 니고데모든지 아무개씨든지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니고데모와 아무개씨 사이에 자리매김 하고 있던 나를 야곱의 우물에서 만나주시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나에게도 야곱의 우물을 있음을 기뻐하면서 성찬의 자리로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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