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8. 27.(주일낮)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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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3-08-25 12:16
조회
878
제목: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성경: 요한 3: 13- 21
1
니고데모는 바람에 실려 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란 사람이 가나의 혼인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데, 헛소문이겠지, 아니 물로 된 포도주를 맛 본 사람이 한둘 아니라는데”,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엄청난 사건을 목격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고,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두 귀로 직접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그런 예수님의 모습이 눈앞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음성이 귓가에서 사라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한 밤중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2
니고데모는 침이 마르도록 예수님을 칭송하는 것으로 대화의 문을 엽니다. “선생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고요,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일을 보았는데요,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님이 아니시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분이 아니시고는 이런 표적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그런 니고데모를 향하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되묻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니요, 사람이 늙으면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난단 말입니까?” 주님께서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하나님 나라를 보려면 거듭나야 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거듭나게 하는 물과 성령에 초점을 맞추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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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세례의 다른 표현입니다.” 라고 명제를 정한 후 성서 속에서 증거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출애굽기로 가보면 애굽에 열 번째 재앙이 내립니다. 사람의 맏아들과 짐승의 초태생에 죽어나가는 재앙입니다.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피를 볼 때 죽음의 재앙이 임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유월절이 지난 후 이스라엘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이 되었지만, 사흘이 지난 후 광야에 갇히고 맙니다. 앞에는 홍해바다이고, 뒤에는 쫒아온 애굽 군대입니다. 그날 모세는 바다 위로 손을 내밀었고, 하나님께서는 밤새도록 큰 동풍을 보내시어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마른 땅이 되었고, 바닷물은 좌우에 벽이 되었습니다.
바닷물이 좌우에서 벽이 되어 있는 바다 한 가운데를 마른 땅과 같이 통과하는 이스라엘이 모습은 신약성경은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모두 모세에게 속하였기에 바다 가운데로 지났습니다. 바다 가운데로 지난 것은 우리가 받게 될 세례의 그림자입니다. 우리 모두는 바다에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기에 하늘에서 내리는 신령한 음식을 먹고, 그리스도라는 반석에서 나는 신령한 샘을 마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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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세례의 다른 표현입니다.” 라고 명제를 정한 후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흐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났기에 홍해를 건너면서 다 함께 세례를 받는 그림을 보았다면 이번에는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던 시온의 대로로 가보십시다.
에스겔선지자는 그 날의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지면서 여러 나라로 뿔뿔이 흩어졌었는데, 흩어진 이스라엘을 사방에서 불러 모아서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시온으로 올라가는 백성들을 정결케 하는데,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케 합니다. 물을 뿌려서 정결케 된 사람들에게 새 마음을 주시는데,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부드럽게 된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 넣으십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났고, 그렇게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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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세례의 다른 표현입니다.” 라고 명제를 가지고 물이 좌우에서 벽이 된 바다를 건너면서 세례를 받았던 이스라엘을 만났었고, 시온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케 되는 장면을 만났는데, 이번에는 저와 함께 요단강으로 내려가 보십시다. 예수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변, 세례 요한에게로 내려 오셨습니다. 세례를 받으려 하시자 요한이 손사래를 치며 거절합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지, 어떻게 제가 선생님에게 세례를 베푼단 말입니까?” “내가 당신께 세례 받는 것을 허락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어 하나님 아버지 앞에 합당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물 위로 올라오시자 하늘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요단강은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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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있으셨을까? 우리 모두는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까 마땅히 죄를 씻어내는 세례를 받아야겠지만, 우리는 모두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하니까 마땅히 세례를 받아야겠지만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있으셨을까? 사람이 아니시고 하나님이신데,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태어나셨는데,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있으셨을까요?
그래서 요한이 손사래를 치면서 말합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지, 어떻게 제가 선생님에게 세례를 베푼단 말입니까?” 예수님은 어떤 말로 세례 요한을 설득합니까? “내가 당신께 세례 받는 것을 허락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어는 것입니다.”(마태3:15) 여기에 아주 중요한 구원의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위해 세례를 받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례를 받으신 것은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하기에 세례를 자청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세례를 받으심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정결하게 되는 길을 활짝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거듭나게 되는 길을 예수님께서 활짝 열어 놓으셨기에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세례를 받으면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표를 몸에 지니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벧전3:21) 물로 세례를 받아 죄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표를 지니고, 하늘 백성으로 살아감을 감사하는 은혜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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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세례의 다른 표현입니다.” 라고 명제를 가지고 바닷물이 좌우에서 벽이 된 바다를 건너면서 세례를 받았던 이스라엘을 만났었고, 시온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케 되는 장면을 만났었고, 물로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영화롭게 된 요단강도 내려가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이런 질문을 해보십시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이 어떻게 거듭나는 능력이 될 수 있을까?” 세례를 받는 것에 어떤 능력이 있기에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하고, 그리스도 밖에 있던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삶의 주소가 바뀌고, 어둠을 좋아하던 사람이 빛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속성이 바뀔 수 있는 것일까?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이 어떻게 거듭남에 능력이 되는지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런 설명을 해주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비우시고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람산 꼭대기에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다시 하늘로 올라가시기까지 주님께서 하셨던 일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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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장대에 뱀을 달던 광야로 가보십시다. 만나는 모양이 진주와 같았습니다. 맛은 꿀 섞은 과자맛과 같았습니다. 아침마다 내리는 선물이었기에 누구나 들판으로 나가면 거둘 수 있는 하늘 양식이요, 매일 양식이었습니다. 신 광야에서 만나를 처음 거두던 날, 은혜롭고 신비로워서 “이것이 무엇이냐?”(=만나) 감동하며 물었던 것이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브롯 핫다아와에 이르렀을 때에는 매일 내리는 만나가 식상해서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도다.”라고 불평하더니, 에돔 땅을 둘러 행하던 날은 만나를 보잘 것 없는 식물이라고 악평을 하면서 “이 박한 식물을 우리가 싫어하노라.” 은혜를 원망으로 바꾼, 불평이 습관이 되어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불뱀을 보냈습니다. 불뱀에 물린 사람마다 고통을 받으며 죽어갔습니다. 그때야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은 백성들이 모세를 찾아와서 회개합니다.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나이다.” 모세는 백성들의 잘못과 간절한 소원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불뱀에 물린 사람이라도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았습니다. 놋뱀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놋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불뱀에 물렸을지라도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놋뱀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없었기에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불뱀에 물린 채 광야에서 죽어갔습니다. 이것을 두고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십자가에 들려야 하리라. 이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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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대로 주님은 골고다 언덕 위에 나무 십자가를 세우십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나무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아내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물과 피는 십자가 아래로 나오는 모든 사람의 심령 속으로 흘러들어 죄를 씻습니다. 거듭나게 하는 능력, 하늘로부터 새로 나게 능력이 됩니다. 그러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뿐만 아니라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문을 열고 다시 살아나십니다. 부활의 몸으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십니다. 이렇게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부활의 몸을 덧입게 됩니다. 그러기에 세례에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함께 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믿음과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심과 같이 나도 부활의 날을 기다린다는 믿음이 담기는 것입니다. 물로 받은 세례에는 예수님과 함께 죄에서 대해서는 죽고, 예수님과 함께 의에 대해서는 다시 살아난다는 믿음과 고백이 담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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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물로 거듭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 왜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내가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99%가 아니고 100%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 태어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어지는 것, 성령님께서 일러주셨기 때문입니다.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이 내 심령 속으로 흘러들면서 내 죄를 씻었고 내 허물을 덮었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 성령님의 감동함이 있었기에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같이 예수님을 영접한 나도 부활의 몸을 덧입는 날이 있다고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 성령님의 감동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으니라.”(고전12:3) 누구든지, 남자든지 여자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 예수를 주님이시라 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많이 배운 사람이든지 배우지 못한 사람이든지 성령님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젊은이든지 노인네든지 성령님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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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선택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나 은혜의 울타리 밖에 머문다고 생각했던 이방인의 대표인 헬라인이나 성령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노예나 자유인이나 성령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믿게 하셨고, 성령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지요.
가이사랴 빌립보로 가보십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고,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 날 예수님은 기뻐하시면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니라.” 무슨 뜻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있는데, 이 복된 일이 베드로의 남다른 총명함과 이해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복된 일이 베드로의 넓은 학식과 깊은 배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알게 하셨고, 성령님께서 영접하게 하셨고, 성령님께서 고백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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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던 밤, 유월절 식사를 주님의 식탁으로 제정하시어 교회 안에 보물로 담아놓으시던 그 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유익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야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성령님은 내가 여러분에게 가르친 것 알게 하고,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요한14:26) 오늘도 성령님은 우리 곁에 계시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합니다.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시고, 예수님을 따라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지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을 가장 소중한 은혜로 간직하고, 거듭난 사람다운 인품을 가꾸어가고, 거듭난 사람다운 삶을 펼쳐가시는 안디옥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 요한 3: 1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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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는 바람에 실려 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란 사람이 가나의 혼인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데, 헛소문이겠지, 아니 물로 된 포도주를 맛 본 사람이 한둘 아니라는데”,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엄청난 사건을 목격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고,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두 귀로 직접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그런 예수님의 모습이 눈앞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음성이 귓가에서 사라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한 밤중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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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는 침이 마르도록 예수님을 칭송하는 것으로 대화의 문을 엽니다. “선생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고요,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일을 보았는데요,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님이 아니시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분이 아니시고는 이런 표적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그런 니고데모를 향하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되묻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니요, 사람이 늙으면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난단 말입니까?” 주님께서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하나님 나라를 보려면 거듭나야 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거듭나게 하는 물과 성령에 초점을 맞추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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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세례의 다른 표현입니다.” 라고 명제를 정한 후 성서 속에서 증거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출애굽기로 가보면 애굽에 열 번째 재앙이 내립니다. 사람의 맏아들과 짐승의 초태생에 죽어나가는 재앙입니다.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피를 볼 때 죽음의 재앙이 임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유월절이 지난 후 이스라엘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이 되었지만, 사흘이 지난 후 광야에 갇히고 맙니다. 앞에는 홍해바다이고, 뒤에는 쫒아온 애굽 군대입니다. 그날 모세는 바다 위로 손을 내밀었고, 하나님께서는 밤새도록 큰 동풍을 보내시어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마른 땅이 되었고, 바닷물은 좌우에 벽이 되었습니다.
바닷물이 좌우에서 벽이 되어 있는 바다 한 가운데를 마른 땅과 같이 통과하는 이스라엘이 모습은 신약성경은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모두 모세에게 속하였기에 바다 가운데로 지났습니다. 바다 가운데로 지난 것은 우리가 받게 될 세례의 그림자입니다. 우리 모두는 바다에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기에 하늘에서 내리는 신령한 음식을 먹고, 그리스도라는 반석에서 나는 신령한 샘을 마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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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세례의 다른 표현입니다.” 라고 명제를 정한 후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흐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났기에 홍해를 건너면서 다 함께 세례를 받는 그림을 보았다면 이번에는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던 시온의 대로로 가보십시다.
에스겔선지자는 그 날의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지면서 여러 나라로 뿔뿔이 흩어졌었는데, 흩어진 이스라엘을 사방에서 불러 모아서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시온으로 올라가는 백성들을 정결케 하는데,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케 합니다. 물을 뿌려서 정결케 된 사람들에게 새 마음을 주시는데,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부드럽게 된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 넣으십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났고, 그렇게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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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세례의 다른 표현입니다.” 라고 명제를 가지고 물이 좌우에서 벽이 된 바다를 건너면서 세례를 받았던 이스라엘을 만났었고, 시온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케 되는 장면을 만났는데, 이번에는 저와 함께 요단강으로 내려가 보십시다. 예수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변, 세례 요한에게로 내려 오셨습니다. 세례를 받으려 하시자 요한이 손사래를 치며 거절합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지, 어떻게 제가 선생님에게 세례를 베푼단 말입니까?” “내가 당신께 세례 받는 것을 허락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어 하나님 아버지 앞에 합당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물 위로 올라오시자 하늘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요단강은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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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있으셨을까? 우리 모두는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까 마땅히 죄를 씻어내는 세례를 받아야겠지만, 우리는 모두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하니까 마땅히 세례를 받아야겠지만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있으셨을까? 사람이 아니시고 하나님이신데,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태어나셨는데,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있으셨을까요?
그래서 요한이 손사래를 치면서 말합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지, 어떻게 제가 선생님에게 세례를 베푼단 말입니까?” 예수님은 어떤 말로 세례 요한을 설득합니까? “내가 당신께 세례 받는 것을 허락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어는 것입니다.”(마태3:15) 여기에 아주 중요한 구원의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위해 세례를 받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례를 받으신 것은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하기에 세례를 자청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세례를 받으심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정결하게 되는 길을 활짝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거듭나게 되는 길을 예수님께서 활짝 열어 놓으셨기에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세례를 받으면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표를 몸에 지니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벧전3:21) 물로 세례를 받아 죄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표를 지니고, 하늘 백성으로 살아감을 감사하는 은혜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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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세례의 다른 표현입니다.” 라고 명제를 가지고 바닷물이 좌우에서 벽이 된 바다를 건너면서 세례를 받았던 이스라엘을 만났었고, 시온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케 되는 장면을 만났었고, 물로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영화롭게 된 요단강도 내려가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이런 질문을 해보십시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이 어떻게 거듭나는 능력이 될 수 있을까?” 세례를 받는 것에 어떤 능력이 있기에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하고, 그리스도 밖에 있던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삶의 주소가 바뀌고, 어둠을 좋아하던 사람이 빛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속성이 바뀔 수 있는 것일까?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이 어떻게 거듭남에 능력이 되는지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런 설명을 해주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비우시고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람산 꼭대기에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다시 하늘로 올라가시기까지 주님께서 하셨던 일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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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장대에 뱀을 달던 광야로 가보십시다. 만나는 모양이 진주와 같았습니다. 맛은 꿀 섞은 과자맛과 같았습니다. 아침마다 내리는 선물이었기에 누구나 들판으로 나가면 거둘 수 있는 하늘 양식이요, 매일 양식이었습니다. 신 광야에서 만나를 처음 거두던 날, 은혜롭고 신비로워서 “이것이 무엇이냐?”(=만나) 감동하며 물었던 것이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브롯 핫다아와에 이르렀을 때에는 매일 내리는 만나가 식상해서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도다.”라고 불평하더니, 에돔 땅을 둘러 행하던 날은 만나를 보잘 것 없는 식물이라고 악평을 하면서 “이 박한 식물을 우리가 싫어하노라.” 은혜를 원망으로 바꾼, 불평이 습관이 되어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불뱀을 보냈습니다. 불뱀에 물린 사람마다 고통을 받으며 죽어갔습니다. 그때야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은 백성들이 모세를 찾아와서 회개합니다.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나이다.” 모세는 백성들의 잘못과 간절한 소원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불뱀에 물린 사람이라도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았습니다. 놋뱀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놋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불뱀에 물렸을지라도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놋뱀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없었기에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불뱀에 물린 채 광야에서 죽어갔습니다. 이것을 두고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십자가에 들려야 하리라. 이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9
말씀하신 대로 주님은 골고다 언덕 위에 나무 십자가를 세우십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나무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아내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물과 피는 십자가 아래로 나오는 모든 사람의 심령 속으로 흘러들어 죄를 씻습니다. 거듭나게 하는 능력, 하늘로부터 새로 나게 능력이 됩니다. 그러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뿐만 아니라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문을 열고 다시 살아나십니다. 부활의 몸으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십니다. 이렇게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부활의 몸을 덧입게 됩니다. 그러기에 세례에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함께 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믿음과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심과 같이 나도 부활의 날을 기다린다는 믿음이 담기는 것입니다. 물로 받은 세례에는 예수님과 함께 죄에서 대해서는 죽고, 예수님과 함께 의에 대해서는 다시 살아난다는 믿음과 고백이 담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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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물로 거듭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 왜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내가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99%가 아니고 100%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 태어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어지는 것, 성령님께서 일러주셨기 때문입니다.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이 내 심령 속으로 흘러들면서 내 죄를 씻었고 내 허물을 덮었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 성령님의 감동함이 있었기에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같이 예수님을 영접한 나도 부활의 몸을 덧입는 날이 있다고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 성령님의 감동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으니라.”(고전12:3) 누구든지, 남자든지 여자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 예수를 주님이시라 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많이 배운 사람이든지 배우지 못한 사람이든지 성령님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젊은이든지 노인네든지 성령님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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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선택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나 은혜의 울타리 밖에 머문다고 생각했던 이방인의 대표인 헬라인이나 성령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노예나 자유인이나 성령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믿게 하셨고, 성령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지요.
가이사랴 빌립보로 가보십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고,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 날 예수님은 기뻐하시면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니라.” 무슨 뜻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있는데, 이 복된 일이 베드로의 남다른 총명함과 이해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복된 일이 베드로의 넓은 학식과 깊은 배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알게 하셨고, 성령님께서 영접하게 하셨고, 성령님께서 고백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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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던 밤, 유월절 식사를 주님의 식탁으로 제정하시어 교회 안에 보물로 담아놓으시던 그 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유익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야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성령님은 내가 여러분에게 가르친 것 알게 하고,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요한14:26) 오늘도 성령님은 우리 곁에 계시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합니다.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시고, 예수님을 따라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지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을 가장 소중한 은혜로 간직하고, 거듭난 사람다운 인품을 가꾸어가고, 거듭난 사람다운 삶을 펼쳐가시는 안디옥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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