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1. 22.(주일낮) 포도나무와 감람나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1-20 12:12
조회
1161
제목: 포도나무와 감람나무
성경: 시편 128 : 1 - 6
1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사군자라고 합니다. 눈이 채 녹기도 전 제일 먼저 일어나서 봄을 흔들어 깨우는 매화, 깊은 골짜기 은은한 향으로 가득히 채우는 난초, 늦가을 이슬은 서리가 되고 바람은 북풍으로 바뀌지만 한 치의 흩어짐도 없이 활짝 피어나는 국화, 나무마다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겨울을 맞이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어떤 역경을 마주하면서 신념을 굳히지 않는 대나무, 우리네 선조들은 사군자를 화폭에 담아내면서 인품의 향기를 노래하였습니다.
2
우리네 선조들만 “사람됨”을 꽃과 나무에 비유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 속에서도 사람됨을 나무에 비유하는데, 구약성서 사사기에 담겨 있는 요담의 비유를 소개합니다.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 구원한 기드온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내가 여러분은 다스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나의 아들도 여러분을 다스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이런 유언을 남겼음에도 “아비멜렉”이란 아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불법 정치 자금을 모으고, 조직 폭력배를 동원하여 자기 형제 70명을 한 바위에서 쳐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자 그리심 산에서 요담의 비유가 펼쳐집니다.
“하루는 나무들이 모여서 왕을 뽑게 되는데 제일 먼저 추천된 감람나무가 손사래를 치며 사양을 합니다. ‘내게 있는 기름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영화롭게 하는데, 어찌 이 귀한 것을 버리고 나무들 위에 우쭐댄단 말이요’ 두 번째는 무화과나무가 추천되었지만 ‘내가 어찌 아름다운 열매를 버리고 나무들 위에 우쭐댄단 말이요’ 세 번째는 포도나무가 추천되었지만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버리고 나무들 위에 우쭐댄단 말이요’ 그러자 가시나무가 나섭니다. ‘내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라. 그리고 너희는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나가서 너희를 사르리라.’”
3
요담은 사람됨을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그리고 가시나무”에 비유를 하였는데, 오늘 읽은 시편 말씀에도 두 그루의 나무가 심겨 있습니다. 한 그루는 포도나무인데 “결실한 포도나무”이고, 다른 한 그루는 감람나무인데 “어린 감람나무”입니다. 포도나무와 감람나무가 나란히 심겨져 있는 시편 128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하나님의 백성, 그들이 세워가는 가정에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복을 노래하는 시인데, “걷는 걸음마다 복되고 손으로 하는 일마다 형통합니다. 아내는 기쁨의 샘이고, 자녀들은 소망으로 넘칩니다. 가족이 함께 성전에 올라가 앉으면 하나님은 하늘의 복으로 채워주십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 중에서 저는 3절 말씀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아내를 무엇에 비유합니까? 포도나무인데 “결실한 포도나무”에 비유합니다. 자식들을 무엇에 비유합니까? 감람나무인데, “어린 감람나무”에 비유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시128:3)
포도나무에 초점을 맞춥니다.
1
아내를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라고, 안방에 있는 아내가 무엇과 같이 복된가? “결실한 포도나무같이” 이 시편은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남성인 아버지가 아들들의 손을 잡고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순례 길에 오르면서 부르는 노래이기에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동등한 오늘, 예배당으로 올라오는 아내들이 이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네 집 사랑방에 있는 네 남편은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라고 불러야 합니다. 남편에게 있어서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여야 하고, 아내에게 있어서 남편은 결실한 포도나무여야 합니다.
2
포도나무가 성경 속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때는 노아 홍수 후입니다. 홍수가 걷히고 방주에 나온 노아의 가족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농사를 짓게 되는데, 제일 먼저 심은 나무가 포도나무입니다. 가꾼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거두었고, 포도주를 담갔고, 포도주를 마심이 얼마나 기쁘고 좋았던지 노아가 술에 취하여 실수까지 합니다. 당대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는 평가를 받던 노아가 말입니다.
이렇게 포도나무가 기쁨과 풍요를 상징하기에 야곱에 열두 아들을 축복하던 날, 넷째 아들 유다, 왕족이 될 유다지파를 이렇게 축복합니다. “유다는 나귀를 매는데 포도나무에 매리라. 암나귀 새끼를 매는데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매리라. 유다는 옷을 빠는데 포도주에 빨리라.” 암나귀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매는 것, 최고의 기쁨이고, 최상의 풍요로움이었습니다.(창49:11) 그러기에 아내가 안방에서 결실한 포도나무가 되는 것, 남편이 사랑채에서 암나귀를 맨 아름다운 포도나무가 되는 것, 새해에 우리 가정이 가꾸어가야 할 복되고도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3
오늘 읽은 말씀에서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라고 할 때 포도나무는 노아 심었던 그 포도나무의 이미지보다, 야곱의 축복 속에 나오는 암나귀를 맨 아름다운 포도나무의 이미지보다 호세아서에 그려져 있는 포도나무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호세아서 9:10말씀에 보면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과 같이 하였으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나그네가 광야를 횡단합니다. 물이 없고 메마른 땅을 가로지르면서 타는 목마름인데, 저 멀리 나무 그늘이 보입니다. 달려가 그늘 아래에 이르니 샘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목을 축인 후 그늘을 살피니 포도나무 넝쿨인데, 잘 익은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입니다. 쉴 수 있는 그늘이 있고, 마실 수 있는 샘이 있고, 먹을 수 있는 포도송이가 있는 풍경이 결실한 포도나무입니다. 그런 아내가 “내 집 안방에 있는 내 아내”이고, 그런 남편이 “내 집 사랑채에 있는 내 남편”이랍니다.
4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아내가 된다는 것,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남편이 된다는 것, 쉬운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무엇만큼이나 어려운가? 포도농사만큼이나 어렵습니다. 포도나무가 좋아하는 밭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름진 땅이어야 하고, 가뭄이 있는 땅도 안 되지만 적당한 경사가 있어서 배수가 잘되는 땅이어야 합니다. 따뜻한 햇볕은 많이 들면 들수록 좋고, 시원한 바람도 맞이해야 합니다. 포도나무가 여러 가지 좋은 조건의 땅을 요구하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고, 아내도 남편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부부는 서로 사랑하면서 가정을 세워갑니다. 쉴 수 있는 그늘이 있고, 마실 수 있는 샘이 있고, 먹을 수 있는 포도송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 년 포도농사가 얼마나 힘이든지 모릅니다. 이른 봄 포도나무의 두꺼운 껍질을 벗겨야 합니다. 벗기지 않으면 병충해 견디지 못합니다. 묵은 나무는 껍질은 그나마 잘 벗겨지는데 어린 포도나무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거름을 주는데 아주 적당하게 주어야 합니다. 적으면 열매가 시원치 않고 많으면 꽃이 떨어집니다. 포도 순을 따주는데 너무 많이 잘라도 안 되고 너무 적게 잘라도 안 됩니다. 봉지를 씌운데 그 높이가 앉아서 할 일도 아니고 서서 할 일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포도농사를 짓습니다. 포도나무가 풍성한 열매로 보답을 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대하는 것, 남편이 아내를 대하는 것, 포도농사를 짓는 것처럼 어려워도 최선을 다합니다. 쉴 수 있는 그늘이 있고, 마실 수 있는 샘이 있고, 먹을 수 있는 포도송이가 있는 때문입니다.
5
결실한 포도나무처럼 좋은 아내, 결실한 포도나무처럼 좋은 남편이 되는 비결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주님이란 포도나무에 연결이 되어 있으면 결실한 포도나무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입니다.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것은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에게 연결된 가지가 되면 기쁨으로 충만하기에 결실한 포도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아내들은 안방에서 결실한 포도나무가 되고, 남편들은 사랑채에서 결실한 포도나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감람나무에 초점을 맞춥니다.
1
자식을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이라고,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은 무엇과 복된가? “감람나무 같이” 감람나무인데 어떤 감람나무인가? “어린 감람나무”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네 식탁에 둘러앉는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많고 많은 나무들 중에 왜 복 받은 자녀의 모습을 감람나무에 비유를 하는 것일까? 포도나무가 노아 홍수 때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감람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주 안에 노아는 홍수가 끝나고 뭍이 들어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비둘기를 방주 밖으로 날려 보냈고, 비둘기는 감람나무 새순을 입에 물고, 올리브나무 잎사귀를 입에 물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올리브 잎사귀는 옛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음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듯 자식을 낳으므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에, 새로운 세대가 열리기에 자식을 “어린 감람나무”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2
지구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 지중해 연안에 자리 잡은 나라들에게 하나님이 내려준 주신 선물이 있는데 감람나무입니다. 감람나무 열매가 삶을 기름지고 풍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감람나무 열매가 먹을거리가 되는데 덜 익은 파란 열매도, 다 익은 검은 열매도 식탁에 오릅니다. 열매를 찧어서 기름을 내면 빵에 찍어 먹기도 하고, 채소에 얹어 먹기도 하고, 모든 식재료를 튀겨서 새로운 맛을 내기도 합니다. 올리브유는 식용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 난 부위에 바르면 새살이 돋아나니 치료제가 되고, 피부에 바르면 윤택하게 되니 화장품이 되고, 등잔에 넣으면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됩니다. 이렇게 올리브가 다양하게 쓰임을 받고, 유용하게 쓰임 받은 것처럼 식탁에 둘러 앉는 자식들이 복되게 쓰임받기에 감람나무에 비유한 것입니다.
3
“네 식탁에 둘러앉는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감람나무인데 왜 어린 감람나무라고 했을까? 커다란 감람나무라고 하지 않고, 잘생긴 감람나무라 하지 않고 왜 어린 감람나무라고 했을까요? 기름진 곳에 심겨진 감람나무라 하지 않고, 결실한 포도나무처럼 열매를 많이 맺고 있는 감람나무라 하지 않고, 왜 어린 감람나무라고 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한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에, 부모의 기도와 사랑을 덧입으면, 부모의 양육과 훈계를 덧입으면 크고 아름다운 나무로 자랄 소망이 있기 때문에 어린 감람나무입니다.
대학교 다닐 때 학기마다 성적표가 나오는데, A B C D, F 그리고 P 로 성적을 표시합니다. 학업 성취도를 등급으로 나눈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성적표가 정확한 점수로 나왔습니다. 95점, 90점, 85점, 80점 학기말고사 시험점수가 성적표의 점수였습니다. 친절하게 반에는 몇 명에 몇 등이고, 학년에서는 몇 명 중에 몇 등이라는 등수까지 표시되었습니다. 저의 초등학교 성적표를 찾다가 못 찾아서 우리 아들 성적표를 띠웠습니다. “수우미양가”로 표시가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제일 인간다운 성적표가 그래도 “수우미양가”인 듯싶습니다. 등급을 표시한 것이긴 하지만 모든 성적에 가능성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수(秀)우(優)미(美)양(良)가(可)” 뜻을 생각해 보십시오. “수(秀)” 빼어나다는 뜻입니다. “우(優)” 넉넉하답니다. “미(美)” 충분이 아름답다. “양(良)” 좋다는 뜻입니다. “가(可)” 옳을 뿐만 아니라 노력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어린 감람나무에는 “수(秀)우(優)미(美)양(良)가(可)”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기도와 사랑을 덧입으면, 부모양육과 훈계를 덧입으면 크고 아름다운 나무로 자랄 소망이 있기 때문에 어린 감람나무입니다.
4
“네 식탁에 둘러앉는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자식을 어린 감람나무에 비유하면서 왜 하필이면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입니까? 식탁은 어린 감람나무를 커다란 감람나무로, 아름다운 감람나무로 자라게 하는 교육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에 잠깐 말씀을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에 있어서 자녀 교육의 장은 학교가 아니고, 가정이랍니다. 교육을 책임지는 사람도 학교의 선생님이 아니고, 가정의 부모랍니다. 교과서도 교육부에서 발간되는 책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랍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교육이 이루어진 자리는 밥상머리, 베갯머리입니다. 엄마는 자녀가 태어나면 매사에 기도로 아이를 돌봅니다. 아이가 말귀를 알아들으면 율법을 가르칩니다. 알아듣건 못 알아듣건 암송교육이 훗날 아이의 창의성 발현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성인식을 치르지 않았으면 아빠는 일찍 귀가하여 어김없이 밥상머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대화를 나누고, 잠이 들기 전 베갯머리에서 15분 이상 책을 읽어줍니다. 이를 통해서 자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호기심을 보이는 곳에 하나님이 그 아이에게 부어주신 달란트가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밥상머리에서, 베갯머리에서 어린 감람나무는 커다란 감람나무로, 아름다운 감람나무로, 열매가 풍성한 감람나무로 자라는 것입니다.
4
남자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새해에는 사랑채에서 맑은 샘으로 솟아나는, 날개 그늘의 쉼이 있고, 풍성한 열매가 있는 결실한 포도나무가 됩시다. 여자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새해에는 안방에서 맑은 샘이 솟아나는, 날개 그늘의 쉼이 있고, 풍성한 열매가 있는 결실한 포도나무가 됩시다. 모든 부모님들을 축복합니다. 새해에는 어린 감람나무들이 밥상머리에서 베갯머리에서 복되게 자라는 복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 시편 128 : 1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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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사군자라고 합니다. 눈이 채 녹기도 전 제일 먼저 일어나서 봄을 흔들어 깨우는 매화, 깊은 골짜기 은은한 향으로 가득히 채우는 난초, 늦가을 이슬은 서리가 되고 바람은 북풍으로 바뀌지만 한 치의 흩어짐도 없이 활짝 피어나는 국화, 나무마다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겨울을 맞이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어떤 역경을 마주하면서 신념을 굳히지 않는 대나무, 우리네 선조들은 사군자를 화폭에 담아내면서 인품의 향기를 노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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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선조들만 “사람됨”을 꽃과 나무에 비유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 속에서도 사람됨을 나무에 비유하는데, 구약성서 사사기에 담겨 있는 요담의 비유를 소개합니다.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 구원한 기드온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내가 여러분은 다스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나의 아들도 여러분을 다스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이런 유언을 남겼음에도 “아비멜렉”이란 아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불법 정치 자금을 모으고, 조직 폭력배를 동원하여 자기 형제 70명을 한 바위에서 쳐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자 그리심 산에서 요담의 비유가 펼쳐집니다.
“하루는 나무들이 모여서 왕을 뽑게 되는데 제일 먼저 추천된 감람나무가 손사래를 치며 사양을 합니다. ‘내게 있는 기름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영화롭게 하는데, 어찌 이 귀한 것을 버리고 나무들 위에 우쭐댄단 말이요’ 두 번째는 무화과나무가 추천되었지만 ‘내가 어찌 아름다운 열매를 버리고 나무들 위에 우쭐댄단 말이요’ 세 번째는 포도나무가 추천되었지만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버리고 나무들 위에 우쭐댄단 말이요’ 그러자 가시나무가 나섭니다. ‘내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라. 그리고 너희는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나가서 너희를 사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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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담은 사람됨을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그리고 가시나무”에 비유를 하였는데, 오늘 읽은 시편 말씀에도 두 그루의 나무가 심겨 있습니다. 한 그루는 포도나무인데 “결실한 포도나무”이고, 다른 한 그루는 감람나무인데 “어린 감람나무”입니다. 포도나무와 감람나무가 나란히 심겨져 있는 시편 128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하나님의 백성, 그들이 세워가는 가정에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복을 노래하는 시인데, “걷는 걸음마다 복되고 손으로 하는 일마다 형통합니다. 아내는 기쁨의 샘이고, 자녀들은 소망으로 넘칩니다. 가족이 함께 성전에 올라가 앉으면 하나님은 하늘의 복으로 채워주십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 중에서 저는 3절 말씀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아내를 무엇에 비유합니까? 포도나무인데 “결실한 포도나무”에 비유합니다. 자식들을 무엇에 비유합니까? 감람나무인데, “어린 감람나무”에 비유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시128:3)
포도나무에 초점을 맞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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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라고, 안방에 있는 아내가 무엇과 같이 복된가? “결실한 포도나무같이” 이 시편은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남성인 아버지가 아들들의 손을 잡고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순례 길에 오르면서 부르는 노래이기에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동등한 오늘, 예배당으로 올라오는 아내들이 이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네 집 사랑방에 있는 네 남편은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라고 불러야 합니다. 남편에게 있어서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여야 하고, 아내에게 있어서 남편은 결실한 포도나무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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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가 성경 속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때는 노아 홍수 후입니다. 홍수가 걷히고 방주에 나온 노아의 가족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농사를 짓게 되는데, 제일 먼저 심은 나무가 포도나무입니다. 가꾼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거두었고, 포도주를 담갔고, 포도주를 마심이 얼마나 기쁘고 좋았던지 노아가 술에 취하여 실수까지 합니다. 당대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는 평가를 받던 노아가 말입니다.
이렇게 포도나무가 기쁨과 풍요를 상징하기에 야곱에 열두 아들을 축복하던 날, 넷째 아들 유다, 왕족이 될 유다지파를 이렇게 축복합니다. “유다는 나귀를 매는데 포도나무에 매리라. 암나귀 새끼를 매는데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매리라. 유다는 옷을 빠는데 포도주에 빨리라.” 암나귀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매는 것, 최고의 기쁨이고, 최상의 풍요로움이었습니다.(창49:11) 그러기에 아내가 안방에서 결실한 포도나무가 되는 것, 남편이 사랑채에서 암나귀를 맨 아름다운 포도나무가 되는 것, 새해에 우리 가정이 가꾸어가야 할 복되고도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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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말씀에서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라고 할 때 포도나무는 노아 심었던 그 포도나무의 이미지보다, 야곱의 축복 속에 나오는 암나귀를 맨 아름다운 포도나무의 이미지보다 호세아서에 그려져 있는 포도나무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호세아서 9:10말씀에 보면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과 같이 하였으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나그네가 광야를 횡단합니다. 물이 없고 메마른 땅을 가로지르면서 타는 목마름인데, 저 멀리 나무 그늘이 보입니다. 달려가 그늘 아래에 이르니 샘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목을 축인 후 그늘을 살피니 포도나무 넝쿨인데, 잘 익은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입니다. 쉴 수 있는 그늘이 있고, 마실 수 있는 샘이 있고, 먹을 수 있는 포도송이가 있는 풍경이 결실한 포도나무입니다. 그런 아내가 “내 집 안방에 있는 내 아내”이고, 그런 남편이 “내 집 사랑채에 있는 내 남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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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아내가 된다는 것,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남편이 된다는 것, 쉬운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무엇만큼이나 어려운가? 포도농사만큼이나 어렵습니다. 포도나무가 좋아하는 밭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름진 땅이어야 하고, 가뭄이 있는 땅도 안 되지만 적당한 경사가 있어서 배수가 잘되는 땅이어야 합니다. 따뜻한 햇볕은 많이 들면 들수록 좋고, 시원한 바람도 맞이해야 합니다. 포도나무가 여러 가지 좋은 조건의 땅을 요구하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고, 아내도 남편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부부는 서로 사랑하면서 가정을 세워갑니다. 쉴 수 있는 그늘이 있고, 마실 수 있는 샘이 있고, 먹을 수 있는 포도송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 년 포도농사가 얼마나 힘이든지 모릅니다. 이른 봄 포도나무의 두꺼운 껍질을 벗겨야 합니다. 벗기지 않으면 병충해 견디지 못합니다. 묵은 나무는 껍질은 그나마 잘 벗겨지는데 어린 포도나무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거름을 주는데 아주 적당하게 주어야 합니다. 적으면 열매가 시원치 않고 많으면 꽃이 떨어집니다. 포도 순을 따주는데 너무 많이 잘라도 안 되고 너무 적게 잘라도 안 됩니다. 봉지를 씌운데 그 높이가 앉아서 할 일도 아니고 서서 할 일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포도농사를 짓습니다. 포도나무가 풍성한 열매로 보답을 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대하는 것, 남편이 아내를 대하는 것, 포도농사를 짓는 것처럼 어려워도 최선을 다합니다. 쉴 수 있는 그늘이 있고, 마실 수 있는 샘이 있고, 먹을 수 있는 포도송이가 있는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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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실한 포도나무처럼 좋은 아내, 결실한 포도나무처럼 좋은 남편이 되는 비결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주님이란 포도나무에 연결이 되어 있으면 결실한 포도나무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입니다.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것은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에게 연결된 가지가 되면 기쁨으로 충만하기에 결실한 포도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아내들은 안방에서 결실한 포도나무가 되고, 남편들은 사랑채에서 결실한 포도나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감람나무에 초점을 맞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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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이라고,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은 무엇과 복된가? “감람나무 같이” 감람나무인데 어떤 감람나무인가? “어린 감람나무”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네 식탁에 둘러앉는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많고 많은 나무들 중에 왜 복 받은 자녀의 모습을 감람나무에 비유를 하는 것일까? 포도나무가 노아 홍수 때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감람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주 안에 노아는 홍수가 끝나고 뭍이 들어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비둘기를 방주 밖으로 날려 보냈고, 비둘기는 감람나무 새순을 입에 물고, 올리브나무 잎사귀를 입에 물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올리브 잎사귀는 옛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음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듯 자식을 낳으므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에, 새로운 세대가 열리기에 자식을 “어린 감람나무”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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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 지중해 연안에 자리 잡은 나라들에게 하나님이 내려준 주신 선물이 있는데 감람나무입니다. 감람나무 열매가 삶을 기름지고 풍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감람나무 열매가 먹을거리가 되는데 덜 익은 파란 열매도, 다 익은 검은 열매도 식탁에 오릅니다. 열매를 찧어서 기름을 내면 빵에 찍어 먹기도 하고, 채소에 얹어 먹기도 하고, 모든 식재료를 튀겨서 새로운 맛을 내기도 합니다. 올리브유는 식용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 난 부위에 바르면 새살이 돋아나니 치료제가 되고, 피부에 바르면 윤택하게 되니 화장품이 되고, 등잔에 넣으면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됩니다. 이렇게 올리브가 다양하게 쓰임을 받고, 유용하게 쓰임 받은 것처럼 식탁에 둘러 앉는 자식들이 복되게 쓰임받기에 감람나무에 비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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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식탁에 둘러앉는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감람나무인데 왜 어린 감람나무라고 했을까? 커다란 감람나무라고 하지 않고, 잘생긴 감람나무라 하지 않고 왜 어린 감람나무라고 했을까요? 기름진 곳에 심겨진 감람나무라 하지 않고, 결실한 포도나무처럼 열매를 많이 맺고 있는 감람나무라 하지 않고, 왜 어린 감람나무라고 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한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에, 부모의 기도와 사랑을 덧입으면, 부모의 양육과 훈계를 덧입으면 크고 아름다운 나무로 자랄 소망이 있기 때문에 어린 감람나무입니다.
대학교 다닐 때 학기마다 성적표가 나오는데, A B C D, F 그리고 P 로 성적을 표시합니다. 학업 성취도를 등급으로 나눈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성적표가 정확한 점수로 나왔습니다. 95점, 90점, 85점, 80점 학기말고사 시험점수가 성적표의 점수였습니다. 친절하게 반에는 몇 명에 몇 등이고, 학년에서는 몇 명 중에 몇 등이라는 등수까지 표시되었습니다. 저의 초등학교 성적표를 찾다가 못 찾아서 우리 아들 성적표를 띠웠습니다. “수우미양가”로 표시가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제일 인간다운 성적표가 그래도 “수우미양가”인 듯싶습니다. 등급을 표시한 것이긴 하지만 모든 성적에 가능성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수(秀)우(優)미(美)양(良)가(可)” 뜻을 생각해 보십시오. “수(秀)” 빼어나다는 뜻입니다. “우(優)” 넉넉하답니다. “미(美)” 충분이 아름답다. “양(良)” 좋다는 뜻입니다. “가(可)” 옳을 뿐만 아니라 노력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어린 감람나무에는 “수(秀)우(優)미(美)양(良)가(可)”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기도와 사랑을 덧입으면, 부모양육과 훈계를 덧입으면 크고 아름다운 나무로 자랄 소망이 있기 때문에 어린 감람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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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식탁에 둘러앉는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자식을 어린 감람나무에 비유하면서 왜 하필이면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입니까? 식탁은 어린 감람나무를 커다란 감람나무로, 아름다운 감람나무로 자라게 하는 교육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에 잠깐 말씀을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에 있어서 자녀 교육의 장은 학교가 아니고, 가정이랍니다. 교육을 책임지는 사람도 학교의 선생님이 아니고, 가정의 부모랍니다. 교과서도 교육부에서 발간되는 책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랍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교육이 이루어진 자리는 밥상머리, 베갯머리입니다. 엄마는 자녀가 태어나면 매사에 기도로 아이를 돌봅니다. 아이가 말귀를 알아들으면 율법을 가르칩니다. 알아듣건 못 알아듣건 암송교육이 훗날 아이의 창의성 발현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성인식을 치르지 않았으면 아빠는 일찍 귀가하여 어김없이 밥상머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대화를 나누고, 잠이 들기 전 베갯머리에서 15분 이상 책을 읽어줍니다. 이를 통해서 자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호기심을 보이는 곳에 하나님이 그 아이에게 부어주신 달란트가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밥상머리에서, 베갯머리에서 어린 감람나무는 커다란 감람나무로, 아름다운 감람나무로, 열매가 풍성한 감람나무로 자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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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새해에는 사랑채에서 맑은 샘으로 솟아나는, 날개 그늘의 쉼이 있고, 풍성한 열매가 있는 결실한 포도나무가 됩시다. 여자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새해에는 안방에서 맑은 샘이 솟아나는, 날개 그늘의 쉼이 있고, 풍성한 열매가 있는 결실한 포도나무가 됩시다. 모든 부모님들을 축복합니다. 새해에는 어린 감람나무들이 밥상머리에서 베갯머리에서 복되게 자라는 복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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