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1. 01.(주일낮) 인도하시는도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12-30 14:00
조회
1050
제목: 인도하시는도다.
성경: 시편 23 : 1 - 6
1
지난 12월, 성도님들에게 “150편의 시편들 중에서 ‘새해에 부르고 싶은 찬송’으로 두 편을 뽑아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더니, 시편 23편이 표를 제일 많이 얻어서 새해 첫 주일 설교본문으로 택하였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저는 지금까지 설교한 내용을 본문과 제목을 따라 분류를 해 놓았는데 시편 23편을 본문으로 해서 설교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입니다. 물론 새벽기도회에서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차례를 읽으니까 순서에 따라 시편23편을 읽고 설교를 하였고, 수요기도회에서 시편을 강해할 때에도 23편을 강해하였지만, 주일 낮 설교로 23편을 본문으로 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2
궁겔이란 성서학자는 시편을 내용을 따라 이렇게 분류하였습니다. 첫째로 찬양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시인데, 시편 8편처럼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라고 시편입니다.
둘째로 탄원시가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삶의 형편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으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는 시인데 시편 22편처럼,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많은 황소들에게 에워싸인 채 마음은 쏟아진 물이 되었고, 몸은 부서진 질그릇 조각이 되었나이다. 속히 나를 도와주소서.”
셋째로 감사시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헤아려 기뻐하며 감사하는, 예물을 드리면 감사하는 시인데, 시편 116편처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내게 주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을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넷째로 신뢰시가 있습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어떤 처지에서든지 하나님을 따르리라는 고백을 담아내고 시인데, 시편 23편이 대표적인 신뢰시입니다. 그러기에 시편 23편으로 새해를 열어가는 것은 참 복된 일입니다.
3
시편 23편은 6절로 구성되어 있는 짧은 시편입니다. 짧은 시편이지만 무대는 세 번씩이나 바뀝니다. 첫 번째 무대는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가 펼쳐지고, 좋은 목자를 따르는 행복한 양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두 번째 무대는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가 펼쳐지지만 선한 목자가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여 주십니다. 세 번째 무대는 원수에게 쫒기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어느 집 대문을 넘어섰는데, 뒤쫓아 오던 원수가 감히 대문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렇게 원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집주인이 푸짐한 상을 차려주시면서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4
이렇게 서로 다른 무대가 펼쳐지기에 시편 23편은 어느 형편에서든지 펼쳐 읽든지 은혜가 됩니다. 형통을 날을 만난 가정에서 시편 23편을 읽으면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는 말씀이 찬송이 되고, 곤고한 날을 만난 가정에서 시편 23편을 읽으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주께서 함께 하심이라.”는 말씀은 노래가 됩니다. 좋은 일을 만난 잔칫집에서 시편 23편을 읽으면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나이다.” 기쁨에 감사를 더하게 되고, 슬픈 일을 만난 장례집에서 시편 23편을 읽으면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하늘에 잇대어지면서 위로를 받게 됩니다.
5
형통한 날에 읽어도, 곤고한 날에 읽어도 은혜가 되고, 잔칫집에서 읽어도 기쁨이 되고, 장례집에서 읽어도 위로가 되니 새해를 열어가는 정월 초하루에 읽어도 모든 성도들에게 은혜가 됨이 분명합니다. 6절로 구성되어 있는 23편, 구절마다 은혜를 담고 있는 말씀 중에 오늘은 3절 말씀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3)
첫째, 소생시키십니다.
1
우리나라의 기후는 사계절이 뚜렷합니다. 지난 주간은 말 그대로 엄동설한이었습니다. 지금은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남풍이 불어오면서 잎은 돋아나고 꽃은 피어나는 따뜻한 봄이 옵니다. 날씨가 춘삼월만 계속되면 안 됩니다. 맺힌 열매가 자라고 영글기 위해서 삼복더위가 필요합니다. 긴 장마도, 무더운 삼복더위가 차가운 북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가을에게 자리를 물려주면서 곳간마다 알곡으로 채워집니다.
2
우리네는 그렇게 사계절이 지나가는데, 성서의 무대가 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일 년 계절은 어떨까? 우리네 땅은 남풍과 북풍이 계절의 변화를 주도한다면 성서의 땅은 지중해 불어오는 서풍과 사막에서 불어오는 동풍이 계절을 바꿉니다. 비구름을 가득 품은 서풍이 불어오면서 메마른 대지에 단비가 내리면 농부들은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립니다. 그러다가 아라비아 사막의 뜨거운 바람, 동풍이 불어오면서 풀을 시들고 잎은 마르게 됩니다.
비가 내리지 않고 뜨거운 바람만 불어오는 건기가 계속되면서 대지는 타는 목마름입니다. 대지에 뿌리를 내린 풀과 나무들은 숨을 죽입니다. 풀밭에 기대어 살아가는 들짐승들은 헐떡거립니다. 사람들도 갈라진 마음을 가지고 하늘을 쳐다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풍이 불어오면서 비를 뿌립니다. 메마른 대지가 비를 품으면서 씨앗은 움으로 돋아나고 나뭇가지마다 잎으로 피어납니다. 양떼와 소떼는 풀을 뜯으면서 젖을 냅니다. 사람들은 젖을 짜면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늘에 내리는 단비는 생명을 품고 있음에 분명합니다.
3
이렇게 메마른 땅에 생명을 품고 있는 단비가 내리는 것을 소생한다고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소생시키는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십시다.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고,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십시다. 힘써 여호와를 아십시다. 그분의 나타나심은 새벽 별이 나타나는 것처럼 어김이 없고,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호세아선지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있는데, 이제는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하십니다. 악을 밭 갈고 죄를 씨 뿌렸는데, 이제는 마음을 밭 갈고 의를 씨앗으로 뿌리십시오. 그러면 여호와께서 하늘 이슬이 되어 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슬처럼 임하시면 우리는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뿌리를 깊이 내리고, 감람나무 가지처럼 아름답게 펼치고, 백합화처럼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고, 포도나무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늘 이슬이 되어 임하시는 것이 “소생시키고”입니다.
4
갈멜산 꼭대기 엘리야의 제단에 하나님의 불이 내렸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닫혀 있는 하늘 문이 열리면서 소낙비가 내렸습니다. 그런 엘리야이지만 왕비인 이세벨이 생명을 해하려 하자 땅끝 브엘세바로 도망을 칩니다. 아니 네게브 사막으로 들어갑니다. 하룻길을 간 엘리야가 탈진하여, 보잘 것 없는 로뎀나무 그늘에 쓰러집니다. 탈진 엘리야를 위하여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시어 어루만져 주시고,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로 식탁을 차려주십니다. 그 힘에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 광야를 횡단하여 하나님의 산에 이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소생시키시고, 우리의 몸과 삶을 소생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5
시편 23편을 노래한 다윗을 만나보십시다. 화려한 궁궐을 뒤로한 채 곤핍한 땅, 유대 광야로 내몰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머리털이 무거워 잘생긴 아들,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어 빼어난 아들, 온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아 탁월한 아들 압살롬이 반란군을 형성하더니 아버지 다윗 임금을 왕궁에서 몰아냅니다. 다윗의 괴로움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시므이라는 사람이 피난길에 지쳐 있는 다윗을 뒤좇아 오면서 저주를 퍼붓습니다. 티끌을 날리고, 돌팔매질을 하면서 “빌어먹을 놈아! 가거라. 가거라. 네가 그토록 피를 많이 흘리더니 그 피 값을 받는구나!” 이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곤핍한 땅, 물이 없어 메마른 땅입니다.
기가 막힐 상황입니다. 답답하여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상황입니다. 낙담하여 모든 것을 체념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다윗은 물이 없어 메마른 땅에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곤핍한 땅에서 낙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을 열어 주님을 앙망합니다. 얼굴을 들어 주님께로 향합니다.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은 바르실래라는 사람을 준비하셨고, 바르실래는 다윗 일행을 위해서 침상과 대야, 밀과 보리, 콩과 팥, 꿀과 버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군대라는 뜻을 지닌 마하나임에서 다윗은 군대를 재편하면서 회복의 디딤돌을 놓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소생시키시고, 우리의 몸과 삶을 소생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6
유대광야로 내몰린 다윗일행, 바르실래를 보내어 소생시킨 하나님, 탈진하여 로뎀나무 아래 쓰러진 엘리야, 천사를 보내어 소생시키신 하나님, 회개하고 돌아온 이스라엘, 하늘 이슬을 내리시어 소생시키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코로나골짜기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들의 영혼과 몸을 소생시키시고, 우리의 신앙과 삶을 소생시키는,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나가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안디옥식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의의 길로 인도합니다.
1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에 걸었던 광야, 길이 없어 광야이고, 물이 없어서 사막입니다. 그러나 40년 광야를 걸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온 길을 돌아보면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면서, 먼저 가시면서 갈 길을 지시하셨고, 장막 칠 곳도 일러주셨습니다. 갈 길을 물론이지만 할 일까지 일러주셨습니다.(신1:33) 새해에도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광야입니다. 그러나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일러주십니다. 갈 길을 일러주실 뿐만 아니라 장막 칠 곳으로 찾아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 길에서, 그 장막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도 일러주십니다.
2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시온으로 올라오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을 떠나서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을 했으니 꼬박 넉 달을 걸어야 하는 먼 길이었습니다. 들리는 마을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환영하는 복된 길이 아니라 사막을 횡단하고, 광야를 가로질러야 하는 험한 길이었습니다. 훈련된 젊은이들이 말을 타고 대열을 맞추어 행진 하는 길이 아니라 젖먹이를 둘러 없고, 노인들 부축하면서 모두 함께 가야 하는 힘든 길이었습니다. 멀고 험하고 힘든 길이지만 그 길에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 길에 주님의 손길을 느꼈던 분들이 이런 찬송을 불렀습니다. 포로에서 해방되어 시온으로 올라오는 길, 우리의 마음은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혀에는 찬양이 넘쳤습니다. 뭇 나라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칭송을 하니 우리는 기쁘고도 기뻤습니다. 그토록 눈물을 흘리면 씨앗을 뿌렸는데, 기쁨으로 거두게 하시어 이 길을 걷게 하시오니 기쁘고 즐거울 뿐입니다.
3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하여 걸었던 광야 길, 포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이 시온으로 올라오는 길,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인하여 복되었던 것처럼, 2023년 새해 주님을 바라보면서 걷는 이 길을 의의 길에 되게 하시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면서 걷는 이 길을 좋은 길 되게 하십니다. 다윗의 찬송처럼 “자기이름을 위하여 복된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데,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자기 이름”이란,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인데 무슨 뜻입니까?
4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47세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 야곱이 손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드립니다. “내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내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태어남으로부터 147살이 되도록 환난에서 건지시며 나를 기르신 하나님, 이 아이들에 복을 내려주소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게 하옵소서.” 무슨 뜻입니까? 아브라함이란 이름이 복된 이름인데, 이삭이란 이름이 아름다운 이름인데,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영광스러운 이름인데, 그 이름에 담겨 있는 명성이 내가 손을 얹은 손자들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2023년을 열어가면서 “여호와가 나의 목자십니다. 선하고도 좋은 목자가 되십니다.” 그렇게 걷는 길인데, 우리의 길을 어그러지면 주님의 이름이 욕되어집니다. 그렇게 걷는 길인데, 우리의 길이 어둠에 묻히면 주의 영광이 가리어집니다. 그렇게 걷는 길인데, 우리의 길이 추하고 더러우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주님의 이름을 걸고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붙잡고 의의 길로 나가는 안디옥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 시편 23 : 1 - 6
1
지난 12월, 성도님들에게 “150편의 시편들 중에서 ‘새해에 부르고 싶은 찬송’으로 두 편을 뽑아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더니, 시편 23편이 표를 제일 많이 얻어서 새해 첫 주일 설교본문으로 택하였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저는 지금까지 설교한 내용을 본문과 제목을 따라 분류를 해 놓았는데 시편 23편을 본문으로 해서 설교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입니다. 물론 새벽기도회에서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차례를 읽으니까 순서에 따라 시편23편을 읽고 설교를 하였고, 수요기도회에서 시편을 강해할 때에도 23편을 강해하였지만, 주일 낮 설교로 23편을 본문으로 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2
궁겔이란 성서학자는 시편을 내용을 따라 이렇게 분류하였습니다. 첫째로 찬양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시인데, 시편 8편처럼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라고 시편입니다.
둘째로 탄원시가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삶의 형편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으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는 시인데 시편 22편처럼,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많은 황소들에게 에워싸인 채 마음은 쏟아진 물이 되었고, 몸은 부서진 질그릇 조각이 되었나이다. 속히 나를 도와주소서.”
셋째로 감사시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헤아려 기뻐하며 감사하는, 예물을 드리면 감사하는 시인데, 시편 116편처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내게 주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을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넷째로 신뢰시가 있습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어떤 처지에서든지 하나님을 따르리라는 고백을 담아내고 시인데, 시편 23편이 대표적인 신뢰시입니다. 그러기에 시편 23편으로 새해를 열어가는 것은 참 복된 일입니다.
3
시편 23편은 6절로 구성되어 있는 짧은 시편입니다. 짧은 시편이지만 무대는 세 번씩이나 바뀝니다. 첫 번째 무대는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가 펼쳐지고, 좋은 목자를 따르는 행복한 양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두 번째 무대는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가 펼쳐지지만 선한 목자가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여 주십니다. 세 번째 무대는 원수에게 쫒기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어느 집 대문을 넘어섰는데, 뒤쫓아 오던 원수가 감히 대문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렇게 원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집주인이 푸짐한 상을 차려주시면서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4
이렇게 서로 다른 무대가 펼쳐지기에 시편 23편은 어느 형편에서든지 펼쳐 읽든지 은혜가 됩니다. 형통을 날을 만난 가정에서 시편 23편을 읽으면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는 말씀이 찬송이 되고, 곤고한 날을 만난 가정에서 시편 23편을 읽으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주께서 함께 하심이라.”는 말씀은 노래가 됩니다. 좋은 일을 만난 잔칫집에서 시편 23편을 읽으면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나이다.” 기쁨에 감사를 더하게 되고, 슬픈 일을 만난 장례집에서 시편 23편을 읽으면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하늘에 잇대어지면서 위로를 받게 됩니다.
5
형통한 날에 읽어도, 곤고한 날에 읽어도 은혜가 되고, 잔칫집에서 읽어도 기쁨이 되고, 장례집에서 읽어도 위로가 되니 새해를 열어가는 정월 초하루에 읽어도 모든 성도들에게 은혜가 됨이 분명합니다. 6절로 구성되어 있는 23편, 구절마다 은혜를 담고 있는 말씀 중에 오늘은 3절 말씀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3)
첫째, 소생시키십니다.
1
우리나라의 기후는 사계절이 뚜렷합니다. 지난 주간은 말 그대로 엄동설한이었습니다. 지금은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남풍이 불어오면서 잎은 돋아나고 꽃은 피어나는 따뜻한 봄이 옵니다. 날씨가 춘삼월만 계속되면 안 됩니다. 맺힌 열매가 자라고 영글기 위해서 삼복더위가 필요합니다. 긴 장마도, 무더운 삼복더위가 차가운 북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가을에게 자리를 물려주면서 곳간마다 알곡으로 채워집니다.
2
우리네는 그렇게 사계절이 지나가는데, 성서의 무대가 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일 년 계절은 어떨까? 우리네 땅은 남풍과 북풍이 계절의 변화를 주도한다면 성서의 땅은 지중해 불어오는 서풍과 사막에서 불어오는 동풍이 계절을 바꿉니다. 비구름을 가득 품은 서풍이 불어오면서 메마른 대지에 단비가 내리면 농부들은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립니다. 그러다가 아라비아 사막의 뜨거운 바람, 동풍이 불어오면서 풀을 시들고 잎은 마르게 됩니다.
비가 내리지 않고 뜨거운 바람만 불어오는 건기가 계속되면서 대지는 타는 목마름입니다. 대지에 뿌리를 내린 풀과 나무들은 숨을 죽입니다. 풀밭에 기대어 살아가는 들짐승들은 헐떡거립니다. 사람들도 갈라진 마음을 가지고 하늘을 쳐다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풍이 불어오면서 비를 뿌립니다. 메마른 대지가 비를 품으면서 씨앗은 움으로 돋아나고 나뭇가지마다 잎으로 피어납니다. 양떼와 소떼는 풀을 뜯으면서 젖을 냅니다. 사람들은 젖을 짜면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늘에 내리는 단비는 생명을 품고 있음에 분명합니다.
3
이렇게 메마른 땅에 생명을 품고 있는 단비가 내리는 것을 소생한다고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소생시키는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십시다.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고,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십시다. 힘써 여호와를 아십시다. 그분의 나타나심은 새벽 별이 나타나는 것처럼 어김이 없고,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호세아선지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있는데, 이제는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하십니다. 악을 밭 갈고 죄를 씨 뿌렸는데, 이제는 마음을 밭 갈고 의를 씨앗으로 뿌리십시오. 그러면 여호와께서 하늘 이슬이 되어 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슬처럼 임하시면 우리는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뿌리를 깊이 내리고, 감람나무 가지처럼 아름답게 펼치고, 백합화처럼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고, 포도나무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늘 이슬이 되어 임하시는 것이 “소생시키고”입니다.
4
갈멜산 꼭대기 엘리야의 제단에 하나님의 불이 내렸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닫혀 있는 하늘 문이 열리면서 소낙비가 내렸습니다. 그런 엘리야이지만 왕비인 이세벨이 생명을 해하려 하자 땅끝 브엘세바로 도망을 칩니다. 아니 네게브 사막으로 들어갑니다. 하룻길을 간 엘리야가 탈진하여, 보잘 것 없는 로뎀나무 그늘에 쓰러집니다. 탈진 엘리야를 위하여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시어 어루만져 주시고,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로 식탁을 차려주십니다. 그 힘에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 광야를 횡단하여 하나님의 산에 이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소생시키시고, 우리의 몸과 삶을 소생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5
시편 23편을 노래한 다윗을 만나보십시다. 화려한 궁궐을 뒤로한 채 곤핍한 땅, 유대 광야로 내몰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머리털이 무거워 잘생긴 아들,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어 빼어난 아들, 온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아 탁월한 아들 압살롬이 반란군을 형성하더니 아버지 다윗 임금을 왕궁에서 몰아냅니다. 다윗의 괴로움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시므이라는 사람이 피난길에 지쳐 있는 다윗을 뒤좇아 오면서 저주를 퍼붓습니다. 티끌을 날리고, 돌팔매질을 하면서 “빌어먹을 놈아! 가거라. 가거라. 네가 그토록 피를 많이 흘리더니 그 피 값을 받는구나!” 이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곤핍한 땅, 물이 없어 메마른 땅입니다.
기가 막힐 상황입니다. 답답하여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상황입니다. 낙담하여 모든 것을 체념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다윗은 물이 없어 메마른 땅에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곤핍한 땅에서 낙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을 열어 주님을 앙망합니다. 얼굴을 들어 주님께로 향합니다.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은 바르실래라는 사람을 준비하셨고, 바르실래는 다윗 일행을 위해서 침상과 대야, 밀과 보리, 콩과 팥, 꿀과 버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군대라는 뜻을 지닌 마하나임에서 다윗은 군대를 재편하면서 회복의 디딤돌을 놓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소생시키시고, 우리의 몸과 삶을 소생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6
유대광야로 내몰린 다윗일행, 바르실래를 보내어 소생시킨 하나님, 탈진하여 로뎀나무 아래 쓰러진 엘리야, 천사를 보내어 소생시키신 하나님, 회개하고 돌아온 이스라엘, 하늘 이슬을 내리시어 소생시키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코로나골짜기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들의 영혼과 몸을 소생시키시고, 우리의 신앙과 삶을 소생시키는,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나가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안디옥식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의의 길로 인도합니다.
1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에 걸었던 광야, 길이 없어 광야이고, 물이 없어서 사막입니다. 그러나 40년 광야를 걸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온 길을 돌아보면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면서, 먼저 가시면서 갈 길을 지시하셨고, 장막 칠 곳도 일러주셨습니다. 갈 길을 물론이지만 할 일까지 일러주셨습니다.(신1:33) 새해에도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광야입니다. 그러나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일러주십니다. 갈 길을 일러주실 뿐만 아니라 장막 칠 곳으로 찾아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 길에서, 그 장막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도 일러주십니다.
2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시온으로 올라오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을 떠나서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을 했으니 꼬박 넉 달을 걸어야 하는 먼 길이었습니다. 들리는 마을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환영하는 복된 길이 아니라 사막을 횡단하고, 광야를 가로질러야 하는 험한 길이었습니다. 훈련된 젊은이들이 말을 타고 대열을 맞추어 행진 하는 길이 아니라 젖먹이를 둘러 없고, 노인들 부축하면서 모두 함께 가야 하는 힘든 길이었습니다. 멀고 험하고 힘든 길이지만 그 길에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 길에 주님의 손길을 느꼈던 분들이 이런 찬송을 불렀습니다. 포로에서 해방되어 시온으로 올라오는 길, 우리의 마음은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혀에는 찬양이 넘쳤습니다. 뭇 나라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칭송을 하니 우리는 기쁘고도 기뻤습니다. 그토록 눈물을 흘리면 씨앗을 뿌렸는데, 기쁨으로 거두게 하시어 이 길을 걷게 하시오니 기쁘고 즐거울 뿐입니다.
3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하여 걸었던 광야 길, 포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이 시온으로 올라오는 길,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인하여 복되었던 것처럼, 2023년 새해 주님을 바라보면서 걷는 이 길을 의의 길에 되게 하시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면서 걷는 이 길을 좋은 길 되게 하십니다. 다윗의 찬송처럼 “자기이름을 위하여 복된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데,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자기 이름”이란,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인데 무슨 뜻입니까?
4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47세 임종을 앞둔 할아버지 야곱이 손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드립니다. “내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내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태어남으로부터 147살이 되도록 환난에서 건지시며 나를 기르신 하나님, 이 아이들에 복을 내려주소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게 하옵소서.” 무슨 뜻입니까? 아브라함이란 이름이 복된 이름인데, 이삭이란 이름이 아름다운 이름인데,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영광스러운 이름인데, 그 이름에 담겨 있는 명성이 내가 손을 얹은 손자들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2023년을 열어가면서 “여호와가 나의 목자십니다. 선하고도 좋은 목자가 되십니다.” 그렇게 걷는 길인데, 우리의 길을 어그러지면 주님의 이름이 욕되어집니다. 그렇게 걷는 길인데, 우리의 길이 어둠에 묻히면 주의 영광이 가리어집니다. 그렇게 걷는 길인데, 우리의 길이 추하고 더러우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주님의 이름을 걸고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붙잡고 의의 길로 나가는 안디옥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