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누기

2022. 09. 04.(주일낮) 큰 잔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9-02 11:02
조회
964
제목: 큰 잔치
성경: 누가복음 14: 15- 24

1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준비하고,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였습니다. 잔치 시간이 되자 주인은 종들을 다시 보냅니다. “어서 오십시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었습니다.”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거절합니다. “나는 밭을 샀으매 둘러보러 가야겠습니다.”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니 시험하러 가보아야겠습니다.” “나는 장가를 들었으니 참석하지 못하겠습니다.” 종들이 돌아와서 그대로 보고하였고, 주인은 분노하였습니다.

저 같으면 잔치자리를 접었을 터인데 주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종들을 다시 보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이든, 몸이 불편한 사람이든 다 데려오라.”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였지만 아직도 자리가 남아있었고, 주인은 다시 명령합니다. “저 산 밑에 나 있는 외딴 길로 가서라도 사람을 만나면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전에 청함을 받았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2
혼인잔칫날이 정해지고, 예식장이 준비되면 초대장을 예쁘게 만듭니다. 축하해주실 분들의 명단을 따라 초대장을 우편으로 붙이기도 하고, 직접 건네기도 하고, 전화로 알리기도 하고, 모바일 초대장을 띄우기도 합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참석해야겠다 싶으면 일정표에 메모를 해 놓기도 하고, 참석하지 않겠다 싶으면 초대장을 받자마자 휴지통에 던져 넣기도 합니다.

혼주는 초대장을 보냈지만 참석할지 불참할지 정확한 인원은 헤아릴 수 없어서, 예상 인원을 따라 잔치자리와 음식을 준비하지만 때로는 예상 밖에 많은 손님들이 몰리면서 음식이 모자라서 난감해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잔치자리가 텅 비어서 부끄럽기도 합니다.

3
우리는 이렇게 잔치를 치르는데, 2000년 전 성서의 땅에서 그렇지 않았습니다. 잔칫날이 정해지고 잔치 자리가 정해지면, 주인은 초대할 손님의 명단을 뽑습니다. 그 명단을 따라 종들을 보냅니다. “김집사님, 우리 주인님이 9월 4일 낮 열한시에 큰 잔치를 준비하시는데 참석하실 수 있겠습니까?” “저를 초대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만사 제쳐놓고 가야지요.” “이권사님, 우리 주인님이 9월 4일 낮 열한시에 큰 잔치를 준비하시는데 참석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럼요, 제가 그 분을 얼마나 존경하고 좋아하는데요.” “박장로님, 우리 주인님이 9월 4일 낮 열한시에 큰 잔치를 준비하시는데 참석하실 수 있겠습니까?” “좋은 자리에, 복된 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저의 기쁨이고 영광입니다.”

참석하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의 리스트와 숫자가 정해지면 주인은 참석자의 면면을 따라서 잔치 음식도 준비하고, 좌석도 마련을 합니다. 드디어 잔칫날이 밝았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었습니다. 오전 11시에 잔치가 열릴 예정이면 9시쯤 해서 다시 종들을 보냅니다. 참석하겠다고 약속한 분들에게 보냅니다. “이제 오십시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었습니다.” 그런데 김집사님 하는 말, “제가 밭을 샀는데 아무래도 밭을 둘러보아야겠습니다. 널리 양해하십니다.” 이권사님 하는 말, “제가 소 다섯 겨리를 샀는데 멍에를 잘 메는지, 밭은 잘 가는지 시험을 해 보아야겠으니 이해해 주십시오.” 박장로님 하시는 말씀, “제가 장가들었습니다. 아내와 즐겁게 지내야겠으니 갈 수 없습니다.”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해서 음식도 준비하고, 자리도 마련했는데 다 사양하는 것입니다.

4
큰 잔치를 사양하는 사람들, 그날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는 율법학자들, 바리새인들을 포함한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할례 언약을 맺으면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 삼으셨고, 모세와 시내 산 언약을 맺으면서 율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할례 언약의 완성으로, 율법 언약의 완성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시어 “그 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내시어 “다윗에게서 돋아나는 한 의로운 가지라고”, 에스겔 선지자를 보내시어 “약한 자를 강하게 하고, 병든 자를 고쳐주고, 상한 자를 싸매어 주는, 잃은 자를 찾아서 품에 안는 참 선한 목자라고”, 말라기 선지자를 보내면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는 의로운 태양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고” 초대장을 보냈고,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베푸는 큰 잔치에 참석하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비우셨고 베들레헴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면서 큰 잔치를 베푸시는데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피고름 나는 나병환자의 몸에 손을 얹어 깨끗하게 하시면서, 나면서부터 보지 못하는 맹인의 눈을 밝히시면서 큰 잔치를 베푸시는데 바리새인들이 하나같이 거절하는 것입니다. “나는 밭을 샀으매 둘러보러 가야겠고,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니 시험하러 가 보아야겠고, 나는 장가를 들었으니 참석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럴듯한 이유를 대면서 큰 잔치를 거절하고 나선 것입니다.

5
김집사님이 밭을 샀는데, 밭을 둘러보아야겠기에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하는데, 저는 안디옥식구들이 밭은 사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좋은 밭을, 더 넓은 밭을 많이 샀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막내아우를 위해서 기도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 삶의 터전이 넓어지게, 기름지게 하옵소서. 삶의 터전이 넓어짐보다 먼저 마음의 밭이 넓어지게 하시어 신앙 인품이 복 주신 밭에 향취가 되게 하소서.” 밭을 사고, 밭을 둘러보는 것이 복된 일임에도 그보다 더 귀한 것,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는데, 주님이 베푸시는 큰 잔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권사님이 소 다섯 겨리를 샀는데 멍에를 잘 메는지, 밭은 잘 가는지 시험 해 보아야겠다고 하는데, 저는 안디옥식구들이 소 다섯 겨리를 사고, 소를 시험하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넓은 밭과 많은 돈도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자산이지만, 소를 훈련시키고, 멍에를 메워 밭을 가는 기술 또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깊고 넓은 학문에 돈과 명성이 따라오고, 탁월한 기술과 앞서가는 정보에도 돈과 명예가 따라오기에 저는 안디옥식구들에게 깊은 학문도 있고, 탁월한 기술도 있고, 앞서가는 정보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탁월한 기술보다 앞서 가는 많은 정보보다 더 귀한 것, 더 가치 있는 것이 있는데, 주님이 베푸시는 큰 잔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박장로님이 “제가 장가들었습니다. 아내와 즐겁게 지내야겠으니 갈 수 없습니다.” 결혼을 해서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들을 낳아 어린 감람나무로 기르고, 딸을 낳아 아름다운 모퉁이 돌로 다듬어 가는 것 복된 일입니다. 넓은 밭을 샀고, 소를 다루는 빼어난 기술이 있다 하더러도 가정이 무너져 내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렇게 가정을 복되게 세우는 것이 소중한데 이보다 더 귀한 것, 이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이 있는데, 주님이 베푸시는 큰 잔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베푸시는 큰 잔치에 참석을 해야 넓은 밭이 의미가 있고, 큰 잔치에 참석을 해야 탁월한 기술도 의미가 있고, 큰 잔치에 참석을 해야 세워가는 가정도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베푸시는 큰 잔치, 초대를 받은 우리들의 마땅히 참석해야 할 큰 잔치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큰 잔치를 베푸셨던 벳세다 들녘으로 저와 함께 나가 보십시다.

6
벳세다는 빈 들녘이었고, 해는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굶주린 사람들은 오천 명인데, 가진 것을 보리떡 다섯, 물고기 둘이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은 소년이 드린 보리떡 다섯 물고기 둘을 손에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기도를 드리십니다. 그리고 떼어 나누어 주시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거두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큰 잔치임에 분명합니다. 직접 그 잔치에 참석을 해서 예수님이 떼어 입에 넣어주시는 떡을 맛보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성서 속에 이야기로 읽으면서도 일용할 양식으로 큰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광야 이스라엘을 위하여 아침마다 하늘 양식을 내려주신 하나님, 탈진하여 로뎀나무 아래 쓰러진 엘리야를 위하여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을 준비하신 하나님, 갈릴리 호숫가에 숯불을 피우시고 떡과 생선을 구워 조반을 준비하시는 부활의 주님께서 내게도 일용할 양식으로 큰 잔치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하게 됩니다.

7
벳세다 들녘의 이야기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펼쳐지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셨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 하자 혼자 산으로 떠나시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다음 날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사람들이 일터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요한6:27 “썩을 양식”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에 포인트)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 그런데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요한6:51,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에 포인트) 그 날 예수님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한6:51) (요한6:54-55 “참된 양식” “참된 음료”에 포인트)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한6:54-55) 예수님의 이야기가 보리떡에서 생명의 떡으로 옮겨지고, 일용할 양식에서 하늘 양식으로 옮겨지고, 썩을 양식에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으로 옮겨지자 구름떼와 같이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뿔뿔이 다 흩어지고 열두 제자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습니다.⇭

8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펼쳐졌던 벳세다 들녘의 이야기를 오늘 우리가 읽은 큰 잔치의 비유 속으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보리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사람들, 밭을 샀으매 둘러보아야겠다고,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해 보아야겠다고, 장가를 들었으매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칩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면 큰 잔치에 기쁨으로 참여합니다. 가난함에도 나를 초대해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장애가 있음에도 받아주시는 것에 기뻐하면서 큰 잔치에 참석을 합니다. 마치 베드로사도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요한6:68) 고백하며 예수님을 붙좇았듯이 말입니다.


큰 잔치에 차려진 주님의 식탁은 골고다 언덕 십자가와 잇대어져 있습니다. 군병들이 조롱하기 위해서 가시관을 씌우고, 쓰러진 예수님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채찍질을 하지만 찢긴 몸에서 흘러내리는 보혈은 우리를 일으켜 세웁니다. 손과 발에 못을 박지만 솟아난 보혈은 십자가를 적시고 십자가 아래 서 있는 우리들의 마음으로 흘러들면서 죄는 씻고, 허물은 덮으면서 나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찬의 자리에서 떡을 받으면서 보리떡으로 받지 않습니다. 찢기신 주님의 몸으로 받으니 참된 양식이 됩니다. 우리는 잔을 받으면서 포도주로 마지지 않습니다. 흘리신 주님의 보혈로 받으니 참된 음료가 됩니다. 우리는 큰 잔치에 참여하고, 주님의 식탁에서 참된 양식을 먹고, 참된 음료를 마시면서 구원의 은총의 은총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인하며 기뻐합니다.(갈3:26)

10 
큰 잔치에 차려진 주님의 식탁은 예루살렘 다락방과 잇대어져 있습니다. 그날 주님은 유월절 식탁을 주님의 식탁으로 바꾸어주시면서,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의 내 안에 계시는 연합의 신비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지저분한 마음인데, 허물로 얼룩진 몸인데, 부끄러운 삶인데, 내 안에 주님이 찾아오시어 좌정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겠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식탁에서 떡을 주님의 몸으로 받은 성도는 주님의 마음을 닮아갑니다. 주님의 식탁에서 잔을 주님의 보혈로 받은 성도는 앞서 가신 주님을 따라갑니다. 주님의 식탁에 앉아서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으매 기뻐하며 감사합니다.(갈3:27)

11
큰 잔치에 차려진 주님의 식탁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과 잇대어져 있습니다. 성찬이 제정되는 이야기는 사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런 주님의 말씀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마가14:25) 성찬을 하늘나라에 잇대어 놓고,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잇대어 놓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성찬의 담긴 은혜를 펼쳐놓는데 이런 말씀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6) 성찬을 받으면서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성찬을 받으면서 천국 생활을 소망하며 기다립니다. 성찬의 자리에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기뻐하며 감사합니다. 큰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면서 성찬에 참여하는 안디옥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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