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5. 07.(주일낮) 소년 다윗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5-05 11:06
조회
1008
제목: 소년 다윗
성경: 사무엘상 15 : 11 - 13
1
모세가 태어날 때 히브리인은 이집트의 노예였습니다. 이집트는 히브리인들이 번성하는 것을 막아보려고 악법을 만듭니다. 딸을 낳으면 기를 수 있지만 아들을 낳으면 나일 강물에 던져야 했습니다. 그런 시대에 모세는 히브리인이 아들로 태어납니다. 모세의 부모는 낳은 아들이 잘생긴 것을 보고, 낳은 아이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담겨 있는 것을 보고 석 달을 숨겨 기릅니다.(출2:2)
한나는 하나님과 약속한 대로 젖을 뗀 아이 사무엘을 실로에 있는 성막에 바치게 됩니다. 성막 뜰에서 세마포 에봇을 입고, 복되게 자라는 아이 사무엘의 모습을 성경은 한 줄 말씀으로 그려냅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삼상2:26) 이 모습이 얼마나 복되면 예수님의 소년 시절을 이 말씀으로 그려냅니다.
2
아기 모세를 소개했고, 어린이 사무엘을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소년 다니엘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때 남유다는 망하였고,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갑니다. 포로의 신분임에도 소년 다니엘은 왕궁학교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왕궁학교에 입학하는 소년 다니엘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용모가 아름답고요, 인품에는 흠도 없습니다. 지혜가 넘치고요, 모든 학문에는 익숙하였습니다.”(단1:4)
아기 모세를 소개했고, 어린이 사무엘을 소개했고, 소년 다니엘을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가고 있는 다윗을 소개하겠습니다. 빛은 붉어 건강하였고, 지혜와 명철로 가득하니 빼어난 눈이 되었고, 마음씨 고움은 얼굴에 아름다움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무엘선지자가 준비해온 뿔병을 꺼내어 기름을 부으니, 그날 이후로 다윗은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습니다.(삼상16:12)
누구의 모습이 매력적입니까? 아기 모세입니까? 어린이 사무엘입니까? 소년 다니엘입니까? 아니면 청소년 다윗입니까? 이러면 좋겠지요, 아기 때는 갈대상자 안에 아기 모세이고, 어린이 때는 성막 뜰에서 에봇을 입은 어린이 사무엘이고, 소년 때는 왕궁학교에 입학해서도 믿음을 지켜내는 소년 다니엘이고, 청소년의 때는 기름을 부음을 받는 다윗이면 좋지 않겠습니까? 저는 오늘 다윗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째 다윗은 빛이 붉었습니다.
1
며칠 전 뉴스에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하여 의아했습니다. 지난 3월 17일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어떤 초등학교 6학년 미술시간이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상 “다비드상”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신 나체인 다비드상을 교재로 활용한 것에 대하여 “우리 자녀들이 이런 작품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다비드상은 포로노라.”고 학부모들이 항의하였고, 결국 교장선생님은 사표를 냈다는 뉴스입니다.
약 400년 전 미켈란젤로는 성서를 배경으로 훌륭한 그림을 그렸고, 대리석을 깎고 다듬어서 아름다운 조각품을 남겼습니다. 그림으로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있고, 조각으로는 “피에타”와 “다윗”이 있습니다. “다비드상”에 앞에 서 보면 견고하고 차가운 돌을 깎았음에도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몸매는 균형이 잡혀 있고, 근육은 잘 발달이 되어 있습니다. 몸의 어느 구석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가장 완벽한 남성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년 다윗의 모습을 오늘 읽은 말씀 속에서도 단 두 단어로 표현합니다. “빛이 붉고” “빛이 붉다”는 표현은 피부색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고, 건강하고 튼튼한 몸을 “빛이 붉고”라고 표현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소년 다윗처럼 건강하고 튼튼하고 아름답기를 축복합니다.
2
어떤 성도님들이 반문합니다. “목사님, 이의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남자 아이가 아니고 여자 아이입니다. 사내처럼 근육이 발달하는 것보다 더 복된 모습은 없을까요?” 성경에는 소년 다윗의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고, 소녀 에스더의 모습도 그려져 있습니다. 사실 에스더에게는 많은 그늘이 있고, 깊은 상처가 있을 법한 가정환경입니다. 왜냐하면 포로로 끌려 온 히브리 소녀입니다. 일찍 부모를 잃고 사촌 오라비인 모르드개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그럼에도 소녀 에스더는 “용모가 곱고 아리땁더라.”(에2:7) 어느 정도로 곱고 아리따운가?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았음에도, 좋은 향 기름을 바르지 않았음에도, 값비싼 보석으로 꾸미지 않았음에도, “모든 보는 자에게 굄을 받았더라.” “귀여움과 사랑을 받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소년 다윗처럼, 소녀 에스더처럼 건강하고 아리땁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다윗은 눈이 빼어났습니다.
1
지난겨울이었습니다. 손녀인 유진이와 예진이가 저희 집에서 와서 며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에는 눈이 많이 내렸는데, 밤이 깊어 가는데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걱정을 하다가 통화를 했는데, 미금역 부근 어느 오피스텔에 있다는 것입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데 차를 가지고 알려준 곳을 가보니, “천사의 도시” 2층이었고, 알려 준 방으로 들어갔더니, 이제 거의 끝나간다는 것입니다.
유진이는 속눈썹을 붙이는 일이 끝났고, 예진이는 속눈썹을 올리는 일이 거의 끝나간다는 것입니다. 내 딸 같으면 야단을 쳤을 텐데, 손녀는 어떤 경우에도 야단은 치지 말고 칭찬만 하는 것이라 배워서 “유진이 눈은 예쁜데, 속눈썹을 붙이니까 더 예쁘다.” “예진이 눈은 빼어난데 속눈썹을 올리니까 더 예쁘다.”고 칭찬을 했는데, 내 새끼여서 그런지 속눈썹을 단장하니까 눈이 예쁘고 빼어나기는 했습니다.
2
소년 다윗을 소개하면서 “눈이 빼어나고” 라고 하였는데, 눈이 빼어나다는 것은 시력이 좋아서 안경을 낄 필요도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쌍꺼풀이 지고 속눈썹이 길게 나와 있어서 저희 손녀들처럼 속눈썹을 파마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움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드러남을 “눈이 빼어나다”고 표현을 합니다.
청년 야곱이 형에게 돌아갈 축복을 가로 채고는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을 칩니다. 외삼촌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입니다. 청년 야곱은 아우인 라헬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7년 동안 머슴을 사는데, 라헬을 사랑한 까닭에 “칠년을 수일같이”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라헬을 사랑하게 된 까닭을 성경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레아의 눈에는 총기가 없었지만 라헬의 눈은 지혜가 있어 곱고 아리따웠다고 하였습니다. 라헬처럼 지혜가 있어서 눈이 곱고 아리따운 것을 성경은 “눈이 빼어나다”고 표현을 합니다.
3
요즈음 우리는 수요기도회에서 욥기서를 읽으면서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욥기서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보석과 같이 빛나는 말씀들 만나게 됩니다. 산울처럼 두르고 있는 많은 재산이 풍비박산이 났을 때에도 “주신 분도 여호와시요, 거두어 가신 분도 여호와십니다.” 욥이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종기가 나서 붙었다가 터지기를 반복하는데, 종기 속에 구더기에 살고 있는 아픔 가운데서도 “주님은 아침마다 나를 권징하고, 순간마다 나를 놓지 아니하시니, 내가 침을 한번 꿀꺽 삼킬 동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나이다.” 욥은 지금의 고난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고난 그 너머를 바라보면서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고난의 언덕을 넘은 후에는 “전에는 제가 주님에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었는데, 이제는 주님을 두 눈으로 뵙게 되었습니다.”
이런 장면도 있습니다. 욥이 세 친구와 변론을 끝내면서 주님이 주시는 지혜를 예찬합니다. “제가요 은은 어디에서 나는지, 금은 어떤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지를 알겠는데요, 지혜는 어디에 있으며 명철은 어디에서 얻습니까?” “지혜는 순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많은 은을 달아주어도 살 수 없으니 어느 보석보다도 귀한데요, 지혜는 어디에 있으며 명철은 어디에서 얻습니까?”
하나님께서 지혜가 있는 곳을 알려주셨습니다. 온 땅을 감찰하시고 땅 끝까지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고, 물의 분량을 정하신 하나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비구름의 길을 정하시고, 비가 내리는 법칙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고, 악에서 떠나는 것이 명철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욥28:28) 지혜와 명철이 다윗처럼 눈을 빼어나게 했던 것처럼, 제단 뜰에서 자라는 안디옥교회 어린이들이 지혜와 명철로 인하여 눈이 빼어나는 복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다윗은 얼굴이 아름다웠습니다.
1
얼굴은 마음의 창문입니다.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얼굴에는 그늘이 지고, 마음에 즐거움이 있으면 얼굴은 희색이 됩니다.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하면 얼굴은 잿빛이 되고, 마음이 평안하면 얼굴에는 꽃이 핍니다. 마음에 미움과 시기가 가득하면 얼굴은 굳어지고, 마음에 사랑이 넘치면 얼굴은 환하게 빛이 납니다. 그러므로 소년 다윗의 얼굴이 아름답다는 것은 마음씨가 곱고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2
오늘 읽은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십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무엘선지자를 찾아오십니다.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는데, 언제까지 슬퍼만 하겠는가?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내려가라.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삼상16:1)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내려갔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잔치 자리에 초대를 하였습니다.
사무엘의 초대를 받은 이새에게는 여덟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인 엘리압부터 일곱째까지는 데리고 가면서 말째인 다윗은 양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새가 맏이인 엘리압을 사무엘 앞에 세우자 사무엘이 무릎을 칩니다.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분이 과연 여기 있구나.”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마음을 보느니라.” 외모로 볼 때는 아버지의 생각에도 말째인 다윗은 아니었습니다. “말째”란 자녀들 중에 마지막이란 뜻이 있지만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어딘가 조금 모자라고, 조금 부족하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외모를 볼 때 다윗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말째인 다윗을 왕으로 세우십니다.
3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아버지들 향하여 이렇게 권면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3:20) 아이들을 화나게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이에게 매를 대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기르라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그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지 말고, 인격에 지워지지 않는 흠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릴 때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으면 평생토록 족쇄처럼 따라다니면서 귀한 인생을 파멸로 몰고 가니 아이의 마음에 흠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꾼을 택하시는데 가난한 사람도 일꾼으로 택하십니다. 장애인도 일꾼으로 쓰십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도 일을 맡기십니다.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하나님은 일꾼으로 쓰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쓰시지 못하는 일꾼이 있습니다. 인격에 흠이 있는 사람, 인품에 흠이 있는 사람,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입니다. 소년 다윗의 얼굴이 아름답다는 것은 마음씨가 일그러짐이 없고 온전한, 흠이 없고 깨끗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다윗처럼 얼굴이 아름답기를 축복합니다.
넷째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1
다윗처럼 빛이 붉어 건강하고, 지혜로워서 눈이 빼어나고, 마음씨 고움이 얼굴에 아름다움으로 그려지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자녀들이 건강하고 지혜롭고 마음이 아름다우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은 그런 것들보다 먼저 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보십시오.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운 다윗이 사무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사무엘은 준비해온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다윗에게 부으니, 그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자녀들에게 은혜의 옷을 입혀주시고, 머리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옵소서.” 자녀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우리들의 기도제목입니다.
2
지난 주간 새벽기도회에서는 창세기 6장부터 9장까지에 그려져 있는 노아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노아가 살아야 했던 시대적인 상황,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람마다 마음으로 생각하며 계획하는 것이 항상 악하였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면서 근심하셨겠습니까? 그래서 땅을 홍수로 심판하시지만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펼치십니다.
노아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은 노아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노아는 의인입니다. 당대의 완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노아가 의인이고, 완전한 사람이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것이 다윗에게는 기름부음을 받은 것입니다. 소년 다윗의 모습이 여러분의 가정에서 자라는 자녀들, 안디옥 제단 뜰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의 모습이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 사무엘상 15 : 11 - 13
1
모세가 태어날 때 히브리인은 이집트의 노예였습니다. 이집트는 히브리인들이 번성하는 것을 막아보려고 악법을 만듭니다. 딸을 낳으면 기를 수 있지만 아들을 낳으면 나일 강물에 던져야 했습니다. 그런 시대에 모세는 히브리인이 아들로 태어납니다. 모세의 부모는 낳은 아들이 잘생긴 것을 보고, 낳은 아이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담겨 있는 것을 보고 석 달을 숨겨 기릅니다.(출2:2)
한나는 하나님과 약속한 대로 젖을 뗀 아이 사무엘을 실로에 있는 성막에 바치게 됩니다. 성막 뜰에서 세마포 에봇을 입고, 복되게 자라는 아이 사무엘의 모습을 성경은 한 줄 말씀으로 그려냅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삼상2:26) 이 모습이 얼마나 복되면 예수님의 소년 시절을 이 말씀으로 그려냅니다.
2
아기 모세를 소개했고, 어린이 사무엘을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소년 다니엘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때 남유다는 망하였고,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갑니다. 포로의 신분임에도 소년 다니엘은 왕궁학교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왕궁학교에 입학하는 소년 다니엘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용모가 아름답고요, 인품에는 흠도 없습니다. 지혜가 넘치고요, 모든 학문에는 익숙하였습니다.”(단1:4)
아기 모세를 소개했고, 어린이 사무엘을 소개했고, 소년 다니엘을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가고 있는 다윗을 소개하겠습니다. 빛은 붉어 건강하였고, 지혜와 명철로 가득하니 빼어난 눈이 되었고, 마음씨 고움은 얼굴에 아름다움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무엘선지자가 준비해온 뿔병을 꺼내어 기름을 부으니, 그날 이후로 다윗은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습니다.(삼상16:12)
누구의 모습이 매력적입니까? 아기 모세입니까? 어린이 사무엘입니까? 소년 다니엘입니까? 아니면 청소년 다윗입니까? 이러면 좋겠지요, 아기 때는 갈대상자 안에 아기 모세이고, 어린이 때는 성막 뜰에서 에봇을 입은 어린이 사무엘이고, 소년 때는 왕궁학교에 입학해서도 믿음을 지켜내는 소년 다니엘이고, 청소년의 때는 기름을 부음을 받는 다윗이면 좋지 않겠습니까? 저는 오늘 다윗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째 다윗은 빛이 붉었습니다.
1
며칠 전 뉴스에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하여 의아했습니다. 지난 3월 17일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어떤 초등학교 6학년 미술시간이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상 “다비드상”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신 나체인 다비드상을 교재로 활용한 것에 대하여 “우리 자녀들이 이런 작품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다비드상은 포로노라.”고 학부모들이 항의하였고, 결국 교장선생님은 사표를 냈다는 뉴스입니다.
약 400년 전 미켈란젤로는 성서를 배경으로 훌륭한 그림을 그렸고, 대리석을 깎고 다듬어서 아름다운 조각품을 남겼습니다. 그림으로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있고, 조각으로는 “피에타”와 “다윗”이 있습니다. “다비드상”에 앞에 서 보면 견고하고 차가운 돌을 깎았음에도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몸매는 균형이 잡혀 있고, 근육은 잘 발달이 되어 있습니다. 몸의 어느 구석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가장 완벽한 남성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년 다윗의 모습을 오늘 읽은 말씀 속에서도 단 두 단어로 표현합니다. “빛이 붉고” “빛이 붉다”는 표현은 피부색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고, 건강하고 튼튼한 몸을 “빛이 붉고”라고 표현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소년 다윗처럼 건강하고 튼튼하고 아름답기를 축복합니다.
2
어떤 성도님들이 반문합니다. “목사님, 이의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남자 아이가 아니고 여자 아이입니다. 사내처럼 근육이 발달하는 것보다 더 복된 모습은 없을까요?” 성경에는 소년 다윗의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고, 소녀 에스더의 모습도 그려져 있습니다. 사실 에스더에게는 많은 그늘이 있고, 깊은 상처가 있을 법한 가정환경입니다. 왜냐하면 포로로 끌려 온 히브리 소녀입니다. 일찍 부모를 잃고 사촌 오라비인 모르드개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그럼에도 소녀 에스더는 “용모가 곱고 아리땁더라.”(에2:7) 어느 정도로 곱고 아리따운가?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았음에도, 좋은 향 기름을 바르지 않았음에도, 값비싼 보석으로 꾸미지 않았음에도, “모든 보는 자에게 굄을 받았더라.” “귀여움과 사랑을 받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소년 다윗처럼, 소녀 에스더처럼 건강하고 아리땁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다윗은 눈이 빼어났습니다.
1
지난겨울이었습니다. 손녀인 유진이와 예진이가 저희 집에서 와서 며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에는 눈이 많이 내렸는데, 밤이 깊어 가는데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걱정을 하다가 통화를 했는데, 미금역 부근 어느 오피스텔에 있다는 것입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데 차를 가지고 알려준 곳을 가보니, “천사의 도시” 2층이었고, 알려 준 방으로 들어갔더니, 이제 거의 끝나간다는 것입니다.
유진이는 속눈썹을 붙이는 일이 끝났고, 예진이는 속눈썹을 올리는 일이 거의 끝나간다는 것입니다. 내 딸 같으면 야단을 쳤을 텐데, 손녀는 어떤 경우에도 야단은 치지 말고 칭찬만 하는 것이라 배워서 “유진이 눈은 예쁜데, 속눈썹을 붙이니까 더 예쁘다.” “예진이 눈은 빼어난데 속눈썹을 올리니까 더 예쁘다.”고 칭찬을 했는데, 내 새끼여서 그런지 속눈썹을 단장하니까 눈이 예쁘고 빼어나기는 했습니다.
2
소년 다윗을 소개하면서 “눈이 빼어나고” 라고 하였는데, 눈이 빼어나다는 것은 시력이 좋아서 안경을 낄 필요도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쌍꺼풀이 지고 속눈썹이 길게 나와 있어서 저희 손녀들처럼 속눈썹을 파마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움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드러남을 “눈이 빼어나다”고 표현을 합니다.
청년 야곱이 형에게 돌아갈 축복을 가로 채고는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을 칩니다. 외삼촌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입니다. 청년 야곱은 아우인 라헬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7년 동안 머슴을 사는데, 라헬을 사랑한 까닭에 “칠년을 수일같이”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라헬을 사랑하게 된 까닭을 성경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레아의 눈에는 총기가 없었지만 라헬의 눈은 지혜가 있어 곱고 아리따웠다고 하였습니다. 라헬처럼 지혜가 있어서 눈이 곱고 아리따운 것을 성경은 “눈이 빼어나다”고 표현을 합니다.
3
요즈음 우리는 수요기도회에서 욥기서를 읽으면서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욥기서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보석과 같이 빛나는 말씀들 만나게 됩니다. 산울처럼 두르고 있는 많은 재산이 풍비박산이 났을 때에도 “주신 분도 여호와시요, 거두어 가신 분도 여호와십니다.” 욥이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종기가 나서 붙었다가 터지기를 반복하는데, 종기 속에 구더기에 살고 있는 아픔 가운데서도 “주님은 아침마다 나를 권징하고, 순간마다 나를 놓지 아니하시니, 내가 침을 한번 꿀꺽 삼킬 동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나이다.” 욥은 지금의 고난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고난 그 너머를 바라보면서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고난의 언덕을 넘은 후에는 “전에는 제가 주님에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었는데, 이제는 주님을 두 눈으로 뵙게 되었습니다.”
이런 장면도 있습니다. 욥이 세 친구와 변론을 끝내면서 주님이 주시는 지혜를 예찬합니다. “제가요 은은 어디에서 나는지, 금은 어떤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지를 알겠는데요, 지혜는 어디에 있으며 명철은 어디에서 얻습니까?” “지혜는 순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많은 은을 달아주어도 살 수 없으니 어느 보석보다도 귀한데요, 지혜는 어디에 있으며 명철은 어디에서 얻습니까?”
하나님께서 지혜가 있는 곳을 알려주셨습니다. 온 땅을 감찰하시고 땅 끝까지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고, 물의 분량을 정하신 하나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비구름의 길을 정하시고, 비가 내리는 법칙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고, 악에서 떠나는 것이 명철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욥28:28) 지혜와 명철이 다윗처럼 눈을 빼어나게 했던 것처럼, 제단 뜰에서 자라는 안디옥교회 어린이들이 지혜와 명철로 인하여 눈이 빼어나는 복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다윗은 얼굴이 아름다웠습니다.
1
얼굴은 마음의 창문입니다.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얼굴에는 그늘이 지고, 마음에 즐거움이 있으면 얼굴은 희색이 됩니다.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하면 얼굴은 잿빛이 되고, 마음이 평안하면 얼굴에는 꽃이 핍니다. 마음에 미움과 시기가 가득하면 얼굴은 굳어지고, 마음에 사랑이 넘치면 얼굴은 환하게 빛이 납니다. 그러므로 소년 다윗의 얼굴이 아름답다는 것은 마음씨가 곱고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2
오늘 읽은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십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무엘선지자를 찾아오십니다.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는데, 언제까지 슬퍼만 하겠는가?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내려가라.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삼상16:1)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내려갔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잔치 자리에 초대를 하였습니다.
사무엘의 초대를 받은 이새에게는 여덟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인 엘리압부터 일곱째까지는 데리고 가면서 말째인 다윗은 양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새가 맏이인 엘리압을 사무엘 앞에 세우자 사무엘이 무릎을 칩니다.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분이 과연 여기 있구나.”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마음을 보느니라.” 외모로 볼 때는 아버지의 생각에도 말째인 다윗은 아니었습니다. “말째”란 자녀들 중에 마지막이란 뜻이 있지만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어딘가 조금 모자라고, 조금 부족하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외모를 볼 때 다윗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말째인 다윗을 왕으로 세우십니다.
3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아버지들 향하여 이렇게 권면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3:20) 아이들을 화나게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이에게 매를 대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기르라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그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지 말고, 인격에 지워지지 않는 흠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릴 때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으면 평생토록 족쇄처럼 따라다니면서 귀한 인생을 파멸로 몰고 가니 아이의 마음에 흠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꾼을 택하시는데 가난한 사람도 일꾼으로 택하십니다. 장애인도 일꾼으로 쓰십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도 일을 맡기십니다.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하나님은 일꾼으로 쓰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쓰시지 못하는 일꾼이 있습니다. 인격에 흠이 있는 사람, 인품에 흠이 있는 사람,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입니다. 소년 다윗의 얼굴이 아름답다는 것은 마음씨가 일그러짐이 없고 온전한, 흠이 없고 깨끗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다윗처럼 얼굴이 아름답기를 축복합니다.
넷째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1
다윗처럼 빛이 붉어 건강하고, 지혜로워서 눈이 빼어나고, 마음씨 고움이 얼굴에 아름다움으로 그려지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자녀들이 건강하고 지혜롭고 마음이 아름다우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은 그런 것들보다 먼저 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보십시오.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운 다윗이 사무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사무엘은 준비해온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다윗에게 부으니, 그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자녀들에게 은혜의 옷을 입혀주시고, 머리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옵소서.” 자녀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우리들의 기도제목입니다.
2
지난 주간 새벽기도회에서는 창세기 6장부터 9장까지에 그려져 있는 노아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노아가 살아야 했던 시대적인 상황,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람마다 마음으로 생각하며 계획하는 것이 항상 악하였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면서 근심하셨겠습니까? 그래서 땅을 홍수로 심판하시지만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펼치십니다.
노아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은 노아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노아는 의인입니다. 당대의 완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노아가 의인이고, 완전한 사람이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것이 다윗에게는 기름부음을 받은 것입니다. 소년 다윗의 모습이 여러분의 가정에서 자라는 자녀들, 안디옥 제단 뜰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의 모습이시기를 축복합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