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20.(주일낮) 나인(=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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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2-02-19 14:28
조회
1098
제목: 나인(=아름다움)
성경: 누가복음 7: 11- 17
1
저의 고향마을 이름입니다.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홍천강의 발원지니,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생명의 샘이 솟아나는 골짜기여서, “날 생, 골 곡, 마을 리”, “생곡리”란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700년 역사를 지닌 한양 성곽은 둘레가 18.2km 입니다. 돌로 쌓아올린 석성과 흙으로 쌓아올린 토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4대문과 4소문을 두고 있습니다. 한양 성곽 북쪽에는 북한산성이 있고, 남쪽에는 우리들이 즐겨 찾는 남한산성이 있습니다. 남한산성 남쪽에 자리 잡은 도시여서 성남시인데,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장동, 백현동, 수내동 자택,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우리교회 새 주소는 “성남시 분당구 미금일로 15” 입니다. 전에 사용하던 지번 주소는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110-2” 입니다. 분당이 개발되기 전에는 “구미리”였는데, 개발되기 전에는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 아홉 가지가 되었으려니 해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경치가 아름다운 것보다 더 복된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구미리”에는 김해 김씨 밀양 박씨 문화 유씨등 아홉 성씨를 지닌 분들이 각각 작은 취락을 이루었는데, 다른 성씨를 가졌음에도 모든 순박하여 “구순리”라고 하고, 순한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좋은 일이 많아서, 아름다운 일이 아주 많아서, 경사스러운 일이 엄청 많아서 “구미리”라고 하였답니다.
2
아홉 가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었음에도 하나같이 순박하여 아름다운 일이 많았던 “구미동”의 이야기가 성경 속에도 펼쳐지는데, 오늘 읽은 말씀의 무대가 되고 있는 “나인”입니다. 히브리어로 “나인”이란 마을 이름이 우리말로는 “구미동”입니다. “나인”이란 “사랑스러운 마을, 아름다운 마을”이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 지리를 공부해 보면 “나인”이란 마을이 “사랑스러운 마을, 아름다운 마을”이란 이름을 지닐 법합니다. 왜냐하면 ①성서의 땅에서 가장 비옥한 곳이 이스르엘 평원입니다. 서쪽으로는 갈멜산, 동쪽으로 갈릴리 호수 사이에 자리 잡은 이스르엘 평원인데, 그 한 가운데 자기 잡은 마을이 “나인”입니다. ②성서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목축업을 하던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내리는 선물이 있습 니다. 때를 따라 내리는 단비와 새벽마다 내리는 이슬이었는데, 성서의 땅에서 비와 이슬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이 “나인”입니다. ③성서의 땅이 그리 넓지 않음에도 지역마다 날씨의 굴곡이 심한데 가장 온화한 날씨를 보이는 마을이 “나인”입니다. ④그런데 “나인”인 복된 것은 땅이 비옥한 것보다, 경치가 아름다운 것보다, 날씨가 좋은 것보다 더 복된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성서 속에서도 신약성서 속에서도 나인을 무대로 하여 복된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지금부터 약 2,800년 전 “여호람”이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을 때 선지자로 활동하셨던 분이 “엘리사”입니다. 엘리사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와 자신의 스승인 엘리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갈멜산을 오가면서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사마리아에서 갈멜 산으로 오르는 길이면 들렸던 마을, 갈멜 산에서 사마리아로 내려오는 길이면 들렸던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의 이름이 “수넴”입니다. “수넴”과 “나인”은 같은 마을이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고, 바로 옆 동네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마을에 살고 있던 한 여인을 “수넴댁” 이라고 이름을 붙여 소개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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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수넴댁을 “한 귀한 여인”이라고 소개합니다.(왕하4:8-37) 신분이 귀족이란 뜻이 아니고, 살림살이가 비교적 넉넉하고 풍족한 여인이란 뜻입니다.⇭ 수넴댁은 살림살이가 풍족한 것처럼 마음도 넓고 따뜻해서 엘리사가 마을을 지날 때면 대문을 활짝 엽니다. 정성껏 식탁을 준비하여 기쁨으로 대접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넴댁은 남편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복된 일을 계획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작은 방 하나를 들입시다. 평안한 마음으로 하룻밤 머무실 수 있도록 침대를 들여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도록 책상과 의자, 그리고 촛대도 마련을 합시다.”
마음이 담긴 대접을 받은 엘리사가 감동하여 이런 제안을 합니다. “내가 여호람 임금님도 잘 알고, 군대장관도 내 청은 거절하지 못할 막역한 사이입니다. 아쉬운 것이 있으면 청해 보십시오.” 성경을 보면, 대답이 참 은혜가 됩니다. 엘리사의 청을 완곡하게 거절하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족하나이다. 저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를 알아보는 것으로 족하고, 그 분에게 따뜻한 식사 한 끼 대접하는 것으로, 그 분을 위하여 작은 방 하나를 들이는 것으로, 그리그 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족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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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선지자가 고민에 빠집니다. 뭔가 보답을 했으면 좋겠는데, 궁리하다가 사환인 게하시를 통하여 가정 형편을 알아보니 아이가 없습니다. 남편은 이미 늙었는데 아이가 없습니다. 엘리사 축복합니다. “내년 이맘때가 되면 네 품에 아들을 안으리라.” 엘리사의 예언대로 수넴댁은 아들을 낳았고, 낳은 아들은 곱고 아름답게 자라면서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을 들녘으로 나간 아이가 “아이고 머리야! 아이고 머리야!” 하더니 어미의 품에서 숨을 거두는 것입니다.
수넴댁은 죽은 아이를 자신의 집에 있는 엘리사의 방, 침대에 뉘여 놓고는 갈멜산에 있는 엘리사를 찾아가서 간청하였고, 엘리사는 단숨에 달려와서 죽은 아이의 입에 자신의 입을 대고, 죽은 아이의 눈에 자신의 눈을 대고, 죽은 아이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고,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데, 아이의 몸이 따뜻해지더니, 일곱 번 크게 재치기를 하고는 눈을 번쩍 뜨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수넴(나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돌아보시는 사랑스러운 마을이 되었습니다.
6
수넴에서 있었던 구약성서 이야기를 가지고 저와 함께 나인이란 마을로 들어가 봅시다. 사랑스러운 마을인데, 즐거운 마을인데 성문 앞에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그날의 상황을 누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①사람들이 누구를 메고 나옵니까?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옵니다. ②죽은 자의 어머니는? “혼자 된 여인”입니다. ③여인의 뒤를 누가 따릅니까? “성의 많은 사람들이” 뒤를 따릅니다. 함께 읽습니다.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누가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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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장례 행렬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봅시다. 사람을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삶의 길을 멈추어 서게 하고, 모든 것을 통째로 삼켜버립니다. 재물도 삼켜버리고, 권세도 삼켜버리고, 아름다운 미모도 삼켜버리고, 열정적인 사랑도 삼켜버립니다. 죽음이 내 앞에서 서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받아들이고,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 슬프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성경에 그려진 죽음은 젊은이의 죽음입니다. 멋진 꿈을 펼칠 젊은이인데, 모래도 씹어 삼킬 젊은이인데, 뜨겁게 사랑을 나누어야할 젊은이인데, 수레바퀴가 빠지면서, 질그릇이 깨어지면서 죽음이 찾아왔고, 주검이 된 젊은이는 상여에 실린 채 성문 밖 공동묘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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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만근 무거운 걸음으로 상여를 뒤따르며 마음을 찢어내는, 절망하며 절규하는 어머니를 성경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짤막하게 소개하지만 우리는 이 여인에 대한 긴 이야기를 펼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에게도 꿈 많던 소녀 시절이 있었습니다. 동화 속에 예쁜 공주가 되어 백마를 탄 기사를 기다리던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녀 앞에는 백마를 탄 기사가 나타났고, 소녀는 달콤한 사랑에 빠졌고, 가시밭에 피어난 백합화처럼 아름다운 신부가 되었습니다. 꿈결 같은 신혼 시절에 사랑의 열매가 맺히니 예쁜 사내아이를 선물로 받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복된 이름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행복이 영원할 것 같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능금나무 그늘 갔던 남편이, 백향목 기둥 같던 남편이 쓰러지더니 사랑하는 아내와 갓난아이를 남겨놓고 훌쩍 하늘나라로 떠나 버린 것입니다. 혼자 된 여인은 어린 아들을 부둥켜 앉고 며칠 밤이고 눈물로 지새웠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을 했습니다. “내 남은 때 이 아이를 위해서 살리라.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도록 남보란 듯이 길러보리라.” 밭일을 하느라 손은 뭉그러지고, 시장바닥에서 고운 얼굴은 터져 나가고, 혼자이기에 겪어야 했던 서러움과 어려움을 아들 하나 바라보면서 이겨왔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어린아이는 장성한 젊은이가 되었습니다. 반듯한 젊은이가 되었습니다. 잠언기자의 말대로 “장래가 있는, 소망이 있는 젊은이”로 자랐습니다. 아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 동안의 고생은 눈 녹듯 사라지고, 마음은 기쁨으로 벅차올랐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삶의 이유이고, 삶의 전부인 그 아들이 죽어서 상여에 실린 것입니다. 상여에 살려 성문 밖 공동묘지로 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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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된 젊은이 마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칭찬 받으면서 자랐음이 분명합니다. 상여를 뒤따른 어머니, 삶의 무게가 힘겨웠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았음에 분명합니다.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젊은이의 죽음을 함께 짊어지고 있고,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의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들이, 슬픔을 나누어지는 걸음들이 장례 행렬을 이루면서 성문을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안디옥식구 여러분, 장례행렬을 이룬 많은 사람들, 상여 실린 젊은이처럼 죽음 아래 놓여있는 사람들임에 분명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자신들도 장례 행렬의 주인공이 되어 상여에 실릴 것이 분명합니다. 장례행렬을 이룬 많은 사람들, 지금은 외동아들을 앞세운 어머니를 위로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들에게도 그런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임에 분명합니다. 그러고 보니 주검이 된 젊은이에게 예수님이 꼭 필요하듯이, 절망하는 혼자 된 여인에게 예수님이 꼭 필요하듯이, 장례행렬을 이루며 성문 밖으로 나서는 모든 사람에게도 예수님은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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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우리 예수님은 성문 밖에서 장례행렬을 만나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만나주시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①주님께서 과부를 어떻게 하시고? “보시고” ②어떤 마음을 가지십니까? “불쌍히 여기사” ③가까이 가신 주님은 무엇을 관에 대십니까? “손을” ④무엇이라고 선포하십니까? “청년아 내게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함께 읽습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누가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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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상여를 뒤따르면서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여인을 보셨습니다. 보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불쌍히 여깁니다. 불쌍히 여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시고 “울지 말라.” 위로하십니다. 위로하실 뿐만 아니라 상여 가까이로 오십니다. 가까이 오셔서 관에다 손을 대십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는 이렇게 연출이 됩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나서 거반 죽게 된 사람을 봅니다.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불쌍히 여깁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가까이 갑니다.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어 줍니다.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 갑니다. 이튿날 주막 주인에게 치료비를 주면서 부탁을 합니다.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치료비가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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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행렬은 주님을 만남으로 생명의 행렬이 되었고, 생명의 행렬이 되었으니 더 이상 죽은 자의 땅으로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돌아옵니다. 그 날 죽었다가 살아난 젊은이,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된 어머니,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된 마을 사람들이, 사랑스러운 마을 나인으로 돌아오면서, 즐거움이 넘치는 마을 나인으로 돌아오면서 고백하는 말이 둘이 있습니다. ①하나는?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도다.” ②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도다.” 16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엘리사선지자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 다시 살아 숨을 쉬게 하였는데 엘리사보다도 “더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도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엘리사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수넴 마을 사람들을 돌보셨는데, 지금도 나인 마을 사람들을 돌보셨도다.” 주검이 된 젊은이의 관에 손을 대시면서 돌보시고, 외동아들을 잃은 여인의 눈물을 닦으면서 돌보시고, 슬픔의 장례행렬이 되어 공동묘지로 향하는 많은 마을 사람들을 돌보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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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오셔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게 될 주님의 손길에 대하여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보석처럼 귀한데 안타깝게도 찔레가 덮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장막, 하나님의 집처럼 안전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가시넝쿨이 퍼져가고 있습니다.”(호9:6)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주님께서 보석에 찔레가 덮여 가는데 외면하실 리가 없으시지요. 장막에 가시넝쿨이 퍼져 가는데 모르는 척하실리라 없으시지요.
하늘 보좌를 비우십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십니다.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을 여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십니다. 복음이 되신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는데 자기 양떼처럼 구원하시고, 구원한 백성들을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게 하시는데 왕관의 보석같이 빛나게 하십니다.(스가랴9:16) 보석에서 찔레를 걷어내고, 장막에서 가시덤불을 뽑아내고 여호와의 땅에서 왕관의 보석처럼 빛나게 하십니다. 그 분의 형통함이 어찌 그리 큰지, 그 분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청년들에게는 풍성한 곡식을 주시어 부요하게 하시고, 처녀들에게 새 포도주를 주시어 강건하게 하십니다.(스가랴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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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이란 마을은 “사랑스러운 마을, 아름다운 마을”이었습니다. 나인이란 마을은 하나님의 장막이었고, 마을 사는 사람들은 보석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인이란 장막에 가시덤불이 퍼져가고, 보석 같은 사람들에게 찔레가 덮여 갑니다. 젊은이 죽음으로, 어머니의 통곡으로, 마을 사람들의 슬픔으로 가시덤불이 퍼져가고, 찔레가 덮인 것입니다.
그런데 찔레와 가시덤불을 뽑아주시는 주님께서 슬픔의 장례행렬을 보셨습니다. 불쌍히 여기십니다. “울지 말라.” 위로하십니다. 가까이 오셔서 관에다 손을 대십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나니 일어나라.” 말씀하십니다. 찔레와 가시덤불은 뽑혀나갔고 나인이란 마을은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는 보석이 되었습니다. 나인은 성서 속에 이야기면서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성경: 누가복음 7: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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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고향마을 이름입니다.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홍천강의 발원지니,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생명의 샘이 솟아나는 골짜기여서, “날 생, 골 곡, 마을 리”, “생곡리”란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700년 역사를 지닌 한양 성곽은 둘레가 18.2km 입니다. 돌로 쌓아올린 석성과 흙으로 쌓아올린 토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4대문과 4소문을 두고 있습니다. 한양 성곽 북쪽에는 북한산성이 있고, 남쪽에는 우리들이 즐겨 찾는 남한산성이 있습니다. 남한산성 남쪽에 자리 잡은 도시여서 성남시인데,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장동, 백현동, 수내동 자택,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우리교회 새 주소는 “성남시 분당구 미금일로 15” 입니다. 전에 사용하던 지번 주소는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110-2” 입니다. 분당이 개발되기 전에는 “구미리”였는데, 개발되기 전에는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 아홉 가지가 되었으려니 해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경치가 아름다운 것보다 더 복된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구미리”에는 김해 김씨 밀양 박씨 문화 유씨등 아홉 성씨를 지닌 분들이 각각 작은 취락을 이루었는데, 다른 성씨를 가졌음에도 모든 순박하여 “구순리”라고 하고, 순한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좋은 일이 많아서, 아름다운 일이 아주 많아서, 경사스러운 일이 엄청 많아서 “구미리”라고 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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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가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었음에도 하나같이 순박하여 아름다운 일이 많았던 “구미동”의 이야기가 성경 속에도 펼쳐지는데, 오늘 읽은 말씀의 무대가 되고 있는 “나인”입니다. 히브리어로 “나인”이란 마을 이름이 우리말로는 “구미동”입니다. “나인”이란 “사랑스러운 마을, 아름다운 마을”이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 지리를 공부해 보면 “나인”이란 마을이 “사랑스러운 마을, 아름다운 마을”이란 이름을 지닐 법합니다. 왜냐하면 ①성서의 땅에서 가장 비옥한 곳이 이스르엘 평원입니다. 서쪽으로는 갈멜산, 동쪽으로 갈릴리 호수 사이에 자리 잡은 이스르엘 평원인데, 그 한 가운데 자기 잡은 마을이 “나인”입니다. ②성서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목축업을 하던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내리는 선물이 있습 니다. 때를 따라 내리는 단비와 새벽마다 내리는 이슬이었는데, 성서의 땅에서 비와 이슬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이 “나인”입니다. ③성서의 땅이 그리 넓지 않음에도 지역마다 날씨의 굴곡이 심한데 가장 온화한 날씨를 보이는 마을이 “나인”입니다. ④그런데 “나인”인 복된 것은 땅이 비옥한 것보다, 경치가 아름다운 것보다, 날씨가 좋은 것보다 더 복된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성서 속에서도 신약성서 속에서도 나인을 무대로 하여 복된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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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약 2,800년 전 “여호람”이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을 때 선지자로 활동하셨던 분이 “엘리사”입니다. 엘리사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와 자신의 스승인 엘리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갈멜산을 오가면서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사마리아에서 갈멜 산으로 오르는 길이면 들렸던 마을, 갈멜 산에서 사마리아로 내려오는 길이면 들렸던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의 이름이 “수넴”입니다. “수넴”과 “나인”은 같은 마을이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고, 바로 옆 동네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마을에 살고 있던 한 여인을 “수넴댁” 이라고 이름을 붙여 소개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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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수넴댁을 “한 귀한 여인”이라고 소개합니다.(왕하4:8-37) 신분이 귀족이란 뜻이 아니고, 살림살이가 비교적 넉넉하고 풍족한 여인이란 뜻입니다.⇭ 수넴댁은 살림살이가 풍족한 것처럼 마음도 넓고 따뜻해서 엘리사가 마을을 지날 때면 대문을 활짝 엽니다. 정성껏 식탁을 준비하여 기쁨으로 대접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넴댁은 남편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복된 일을 계획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작은 방 하나를 들입시다. 평안한 마음으로 하룻밤 머무실 수 있도록 침대를 들여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도록 책상과 의자, 그리고 촛대도 마련을 합시다.”
마음이 담긴 대접을 받은 엘리사가 감동하여 이런 제안을 합니다. “내가 여호람 임금님도 잘 알고, 군대장관도 내 청은 거절하지 못할 막역한 사이입니다. 아쉬운 것이 있으면 청해 보십시오.” 성경을 보면, 대답이 참 은혜가 됩니다. 엘리사의 청을 완곡하게 거절하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족하나이다. 저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를 알아보는 것으로 족하고, 그 분에게 따뜻한 식사 한 끼 대접하는 것으로, 그 분을 위하여 작은 방 하나를 들이는 것으로, 그리그 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족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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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선지자가 고민에 빠집니다. 뭔가 보답을 했으면 좋겠는데, 궁리하다가 사환인 게하시를 통하여 가정 형편을 알아보니 아이가 없습니다. 남편은 이미 늙었는데 아이가 없습니다. 엘리사 축복합니다. “내년 이맘때가 되면 네 품에 아들을 안으리라.” 엘리사의 예언대로 수넴댁은 아들을 낳았고, 낳은 아들은 곱고 아름답게 자라면서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을 들녘으로 나간 아이가 “아이고 머리야! 아이고 머리야!” 하더니 어미의 품에서 숨을 거두는 것입니다.
수넴댁은 죽은 아이를 자신의 집에 있는 엘리사의 방, 침대에 뉘여 놓고는 갈멜산에 있는 엘리사를 찾아가서 간청하였고, 엘리사는 단숨에 달려와서 죽은 아이의 입에 자신의 입을 대고, 죽은 아이의 눈에 자신의 눈을 대고, 죽은 아이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고,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데, 아이의 몸이 따뜻해지더니, 일곱 번 크게 재치기를 하고는 눈을 번쩍 뜨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수넴(나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돌아보시는 사랑스러운 마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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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넴에서 있었던 구약성서 이야기를 가지고 저와 함께 나인이란 마을로 들어가 봅시다. 사랑스러운 마을인데, 즐거운 마을인데 성문 앞에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그날의 상황을 누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①사람들이 누구를 메고 나옵니까?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옵니다. ②죽은 자의 어머니는? “혼자 된 여인”입니다. ③여인의 뒤를 누가 따릅니까? “성의 많은 사람들이” 뒤를 따릅니다. 함께 읽습니다.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누가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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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장례 행렬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봅시다. 사람을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삶의 길을 멈추어 서게 하고, 모든 것을 통째로 삼켜버립니다. 재물도 삼켜버리고, 권세도 삼켜버리고, 아름다운 미모도 삼켜버리고, 열정적인 사랑도 삼켜버립니다. 죽음이 내 앞에서 서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받아들이고,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 슬프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성경에 그려진 죽음은 젊은이의 죽음입니다. 멋진 꿈을 펼칠 젊은이인데, 모래도 씹어 삼킬 젊은이인데, 뜨겁게 사랑을 나누어야할 젊은이인데, 수레바퀴가 빠지면서, 질그릇이 깨어지면서 죽음이 찾아왔고, 주검이 된 젊은이는 상여에 실린 채 성문 밖 공동묘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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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만근 무거운 걸음으로 상여를 뒤따르며 마음을 찢어내는, 절망하며 절규하는 어머니를 성경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짤막하게 소개하지만 우리는 이 여인에 대한 긴 이야기를 펼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에게도 꿈 많던 소녀 시절이 있었습니다. 동화 속에 예쁜 공주가 되어 백마를 탄 기사를 기다리던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녀 앞에는 백마를 탄 기사가 나타났고, 소녀는 달콤한 사랑에 빠졌고, 가시밭에 피어난 백합화처럼 아름다운 신부가 되었습니다. 꿈결 같은 신혼 시절에 사랑의 열매가 맺히니 예쁜 사내아이를 선물로 받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복된 이름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행복이 영원할 것 같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능금나무 그늘 갔던 남편이, 백향목 기둥 같던 남편이 쓰러지더니 사랑하는 아내와 갓난아이를 남겨놓고 훌쩍 하늘나라로 떠나 버린 것입니다. 혼자 된 여인은 어린 아들을 부둥켜 앉고 며칠 밤이고 눈물로 지새웠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을 했습니다. “내 남은 때 이 아이를 위해서 살리라.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도록 남보란 듯이 길러보리라.” 밭일을 하느라 손은 뭉그러지고, 시장바닥에서 고운 얼굴은 터져 나가고, 혼자이기에 겪어야 했던 서러움과 어려움을 아들 하나 바라보면서 이겨왔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어린아이는 장성한 젊은이가 되었습니다. 반듯한 젊은이가 되었습니다. 잠언기자의 말대로 “장래가 있는, 소망이 있는 젊은이”로 자랐습니다. 아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 동안의 고생은 눈 녹듯 사라지고, 마음은 기쁨으로 벅차올랐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삶의 이유이고, 삶의 전부인 그 아들이 죽어서 상여에 실린 것입니다. 상여에 살려 성문 밖 공동묘지로 향하는 것입니다.
9
죽음이 된 젊은이 마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칭찬 받으면서 자랐음이 분명합니다. 상여를 뒤따른 어머니, 삶의 무게가 힘겨웠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았음에 분명합니다.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젊은이의 죽음을 함께 짊어지고 있고,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의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들이, 슬픔을 나누어지는 걸음들이 장례 행렬을 이루면서 성문을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안디옥식구 여러분, 장례행렬을 이룬 많은 사람들, 상여 실린 젊은이처럼 죽음 아래 놓여있는 사람들임에 분명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자신들도 장례 행렬의 주인공이 되어 상여에 실릴 것이 분명합니다. 장례행렬을 이룬 많은 사람들, 지금은 외동아들을 앞세운 어머니를 위로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들에게도 그런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임에 분명합니다. 그러고 보니 주검이 된 젊은이에게 예수님이 꼭 필요하듯이, 절망하는 혼자 된 여인에게 예수님이 꼭 필요하듯이, 장례행렬을 이루며 성문 밖으로 나서는 모든 사람에게도 예수님은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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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우리 예수님은 성문 밖에서 장례행렬을 만나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만나주시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①주님께서 과부를 어떻게 하시고? “보시고” ②어떤 마음을 가지십니까? “불쌍히 여기사” ③가까이 가신 주님은 무엇을 관에 대십니까? “손을” ④무엇이라고 선포하십니까? “청년아 내게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함께 읽습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누가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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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상여를 뒤따르면서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여인을 보셨습니다. 보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불쌍히 여깁니다. 불쌍히 여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시고 “울지 말라.” 위로하십니다. 위로하실 뿐만 아니라 상여 가까이로 오십니다. 가까이 오셔서 관에다 손을 대십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는 이렇게 연출이 됩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나서 거반 죽게 된 사람을 봅니다.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불쌍히 여깁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가까이 갑니다.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어 줍니다.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 갑니다. 이튿날 주막 주인에게 치료비를 주면서 부탁을 합니다.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치료비가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12
죽음의 행렬은 주님을 만남으로 생명의 행렬이 되었고, 생명의 행렬이 되었으니 더 이상 죽은 자의 땅으로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돌아옵니다. 그 날 죽었다가 살아난 젊은이,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된 어머니,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된 마을 사람들이, 사랑스러운 마을 나인으로 돌아오면서, 즐거움이 넘치는 마을 나인으로 돌아오면서 고백하는 말이 둘이 있습니다. ①하나는?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도다.” ②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도다.” 16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엘리사선지자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 다시 살아 숨을 쉬게 하였는데 엘리사보다도 “더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도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엘리사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수넴 마을 사람들을 돌보셨는데, 지금도 나인 마을 사람들을 돌보셨도다.” 주검이 된 젊은이의 관에 손을 대시면서 돌보시고, 외동아들을 잃은 여인의 눈물을 닦으면서 돌보시고, 슬픔의 장례행렬이 되어 공동묘지로 향하는 많은 마을 사람들을 돌보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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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오셔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게 될 주님의 손길에 대하여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보석처럼 귀한데 안타깝게도 찔레가 덮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장막, 하나님의 집처럼 안전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가시넝쿨이 퍼져가고 있습니다.”(호9:6)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주님께서 보석에 찔레가 덮여 가는데 외면하실 리가 없으시지요. 장막에 가시넝쿨이 퍼져 가는데 모르는 척하실리라 없으시지요.
하늘 보좌를 비우십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십니다.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을 여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십니다. 복음이 되신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는데 자기 양떼처럼 구원하시고, 구원한 백성들을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게 하시는데 왕관의 보석같이 빛나게 하십니다.(스가랴9:16) 보석에서 찔레를 걷어내고, 장막에서 가시덤불을 뽑아내고 여호와의 땅에서 왕관의 보석처럼 빛나게 하십니다. 그 분의 형통함이 어찌 그리 큰지, 그 분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청년들에게는 풍성한 곡식을 주시어 부요하게 하시고, 처녀들에게 새 포도주를 주시어 강건하게 하십니다.(스가랴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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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이란 마을은 “사랑스러운 마을, 아름다운 마을”이었습니다. 나인이란 마을은 하나님의 장막이었고, 마을 사는 사람들은 보석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인이란 장막에 가시덤불이 퍼져가고, 보석 같은 사람들에게 찔레가 덮여 갑니다. 젊은이 죽음으로, 어머니의 통곡으로, 마을 사람들의 슬픔으로 가시덤불이 퍼져가고, 찔레가 덮인 것입니다.
그런데 찔레와 가시덤불을 뽑아주시는 주님께서 슬픔의 장례행렬을 보셨습니다. 불쌍히 여기십니다. “울지 말라.” 위로하십니다. 가까이 오셔서 관에다 손을 대십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나니 일어나라.” 말씀하십니다. 찔레와 가시덤불은 뽑혀나갔고 나인이란 마을은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는 보석이 되었습니다. 나인은 성서 속에 이야기면서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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