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4.(주일낮) 만나가 그쳤으니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1-13 17:22
조회
1258
제목: 만나가 그쳤으니
성경: 여호수아 5: 10- 15
1
지난 10월, 우리 교회는 “종이에 쓰고 마음에 새기는 성경문제집”에 집중하였습니다.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에서 출제된 300 문제의 답을 달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자세히 살피고 또 살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도 성도님들이 제출한 문제집을 점검하면서 많이 기뻤습니다.
어떤 분은 약속의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의 동서남북 경계를 살피기 위해서 지파별로 분배된 땅을 지도로 그리면서 답을 달았고, 어떤 분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답이 되는 근거를 문항마다 친절하게 성경구절을 적어 놓았고, 어떤 분은 정답에다 자세하고 정확한 설명을 덧붙이는데 성경학자의 주석을 읽은 것 같았고, 어떤 분은 정답을 찾으면서 받은 은혜와 생활의 적용까지를 기록해 놓아서 참 좋았습니다.
2
“종이에 쓰고 마음에 새기는 성경문제집”, 여호수아서 10번 문제의 내용입니다. “길갈에서 있었던 일이 아닌 것은?” ①할례를 받았다. ②만나가 그쳤다. ③여호수아가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만났다. ④아간이 도둑질을 하였다. 정답은 ④번, “아간이 도둑질을 하였다.” 입니다. 아간이 도둑질을 하기는 했는데, 여리고성을 정복한 후 노획물을 여호와의 곳간에 드릴 때였습니다.
“길갈”은 광야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온 후, 첫 번째 진영을 편성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요단강이 멈춘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기념비를 쌓았습니다. 그곳에서 할례도 받았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광야 1세대는 다 할례를 받았지만, 요단을 건넌 광야 2세대는 광야를 지나느라 할례를 받지 않았기에 할례를 받으면서 새로운 출발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유월절도 지켰습니다. 유월절을 지킨 그 이튿날 가나안 땅에서 거둔 밀과 보리로 무교병을 만들어 볶은 곡식과 함께 먹으니, 만나가 그쳤습니다. 그 때의 일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무엇이 그쳤다고요? “만나”가, 대신 무엇을 먹었다고요? “가나안 땅에 소출을”, 함께 읽습니다.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는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수5:12)
첫째 그친 만나에 초점을 맞춥니다.
1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던 날, 먹을 양식을 힘껏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짊어지고 나온 양식은 한 달 반 만에 바닥이 났고, 사방을 둘러보니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신 광야였습니다.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합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었더라면 비록 종노릇을 하더라도 고기 가마 곁에서 배불리 먹었을 텐데, 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여 굶어죽게 하는가?”
이런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주십니다. 만나의 색깔은 눈과 같이 희었고, 모양은 작은 진주 같았습니다. 그리고 맛은 꿀을 섞은 과자와 같았습니다. 만나는 맑은 날이든지 흐린 날이든지 아침마다 들판으로 나가기만 거둘 수 있는 매일 양식이었는데, 만나는 남자든지 여자든지, 어린이든지 어른이든지 누구나 차별이 없이 거둘 수 있는 하늘 양식이었는데, 그 만나가 그친 것입니다.
2
광야 이스라엘에게 가장 친숙하고, 가장 익숙한 것이 만나였습니다. 광야에서 시간이 흘러 어린아이가 청년이 되고, 청년이 어른이 되어도 변하지 않고 아침마다 내렸던 것이 만나입니다. 삶의 자리를 신 광야에 바란 광야로 이동을 하고, 바란 광야에 에돔 동쪽으로 장막을 옮겨도 변하지 않고 아침마다 거두었던 것이 만나입니다. 40년 동안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만나인데, 40년 동안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만나인데, 그 만나가 그친 것입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지 않아도, 땀 흘려 가꾸지 않아도, 아침마다 들판으로 나가서 만나를 거두며, 텅 빈 광야를 채우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였는데, 거둔 만나를 맷돌에 갈기고 하고,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면서 돌보시는 하나님을 기뻐하였는데, 아침마다 만나를 거두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고, 만나를 먹으면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꼈는데, 그 만나가 그친 것입니다.
3
그런데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만나가 그친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만나를 다시는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만나가 그친 대신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나는 밀과 보리로 빵을 만들게 하시고, 밀과 보리를 볶게 하셨습니다. 헬렌 켈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 것을 보는 것이 인생이다.” 요단을 건넌 이스라엘이 그런 것입니다. 문이 닫히면서 광야에서 친숙하고 익숙했던 만나는 그쳤지만, 새로운 문이 열리면서 약속의 땅의 소출을 먹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오늘 우리가 그런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이 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골짜기에서 많은 분들이 생명을 잃었고, 지금도 고통에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터가 흔들리면서 무너지고, 평범했던 일상들이 무거운 짐이 되고, 언제 어떤 모양으로 끝이 날지 앞날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그치게 한 것으로 끝이 아니고, 가나안 땅에 소출을 먹게 하는 새로운 장을 열어주신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코로나를 생활 속으로 받아들이면서 2021년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고 있는데, 또 다른 은혜를 예비하실 주님의 손길을 기대하면서 추수감사절을 지킵시다.
4
만나에는 하나님의 숨결과 하나님의 손길이 담겨 있었음에도 광야 이스라엘은 원망과 불평으로 바뀌었습니다. 광야 이스라엘이 만나를 처음 만나던 날, 감격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감동된 얼굴을 서로 쳐다보면서 “이것이 무엇이냐?” 하늘 양식의 이름이 되었습니다.(출16:15) 그렇게 만나와 첫 만남은 감동 그 자체였는데, 매일 거두다 보니, 일상이 되다 보니 감동은 차츰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감동이 사라지자 만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다른 욕구가 커져갑니다. “누가 고기를 주어 우리로 먹게 할까?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을 먹고,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었는데, 만나만 먹으니 기력이 없도다. 만나 외에 다른 것을 먹었으면 좋겠다.”(민11:4-5) 만나를 평가 절하 하는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에돔 땅을 우회하는 길이 험하니, 불평을 합니다.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먹을 것도 없고”라고 불평을 쏟아내다 보니 만나가 보이거든요 그래서 내뱉는 말이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민21:4-5) 만나를 하찮은, 보잘 것 없는 양식이라고 비방하기에 이르렀고, 결국은 하나님께서 불 뱀을 보내니 불 뱀이 이스라엘을 물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5
아침마다 내리는 만나가 하나님의 선물이었는데, 아침마다 내리는 만나가 일상이다 보니 감동은 사라지고, 심지어는 보잘 것 없는 양식이라고 평가 절하하던 광야 이스라엘을 살피다보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라고, 매일 마주 하는 일들을 복되게 여기라고, 값없이 주어지는 것들에 가치를 부여하라.”고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설명을 드리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거리두기를 통하여 만남을 제한하는 대신 가족과의 시간을 늘려주면서 아내와 남편에 대한 고마움, 자녀들의 소중함. 부모에 대한 존경, 더하기표를 하라고 말합니다. 아내가 “살 중에 살이요, 뼈 중에 뼈”였는데, 매일 당연히 만나는 얼굴이 되다 보니 이스라엘이 만나를 대하듯이 하찮게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까?
코로나 바이러스는 매일 마주하는 일을 복되게 여기라고 합니다. 둘러보면 소소한 일상이 하나님의 큰 선물입니다. 아이들이 아침이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것, 아내의 배웅을 받으면서 일터를 향하는 것, 주일이면 가족들이 한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것, 가족이 손을 잡고 외식을 하는 것, 찻집에서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어울려 산과 들로 소풍을 나가는 것, 소소한 일상이 하나님의 선물이었다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러주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었음을 깨닫게도 합니다. 매일 마스크를 쓰면서 돈 내지 않고 마시던 물, 값을 치루지 않고 마시던 공기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한 번 갖게 됩니다. 공기를 오염시켜 놓고 공기청정기를 방마다 들여놓고, 물을 오염시켜 놓고 비싼 값을 치루면서 정수기를 사용하는 시대에 대하여 반성을 하게 됩니다. 만나를 하찮은 것으로 평가 절하였던 광야 이스라엘을 거울삼아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고마워하면서, 매일 펼쳐지는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값싸게 여기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면서 2021년도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군대 대장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1
길갈에서 있었던 일들 중에서 우리는 두 가지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친 만나이고, 다른 하나는 만난 군대 대장입니다. 지금까지는 그친 만나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에는 여호수아가 만난 군대 대장에게 초점을 맞추어 보겠습니다.
요단을 건너 길갈에 진영을 편성한 이스라엘이 제일 먼저 점령해야 할 성은 크고 견고한 성 여리고였습니다. 여리고 평지를 거닐면서 어떻게 여리고성을 점령해야 하는가? 구상하고 있는 여호수아가 칼을 빼어 손에 든 한 사람이 마주합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여호수아가 물었고,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나는 네 편도 아니고, 적군의 편으로도 아니라.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여호수아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을 합니다.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을 거룩하니라.”
2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땅은 아무도 살지 않는 무주공산이 아니었습니다. 들어가서 말뚝을 박고, 줄을 둘러치면 내 땅에 되는,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한 부족도 아니고 일곱 부족이 자리를 잡고 있는 땅이었고, 그 땅에 사는 일곱 부족은 광야 이스라엘 비하여 군대의 숫자도 많고, 가지고 있는 무기도 이스라엘이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였습니다.
열두 정탐꾼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더 확실해 집니다. 바란 광야에서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고, 살피고 돌아온 사람들의 보고서에는 가나안에 살던 일곱 부족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입니다. 그곳에서 나는 포도 한 송이를 막대기에 꿰어 어깨에 메고 돌아왔습니다. 이런 과일을 먹는 사람들이니 키는 장대처럼 크고, 힘은 모두 항우장사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쌓은 성이니 크고 견고합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들은 메뚜기에 불과합니다.”(민13:27-29) 그 때 열두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가나안 땅을 살피고 돌아온 사람이 여호수아, 지금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만나고 있는 여호수아입니다.
그러니 여리고 성에 앞에 서 있는 여호수아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엊그제 요단강이 멈추어서는 기적을 맛보기는 했지만, 적을 알고 나를 아는데 장대 같은 사람들과 메뚜기 같은 사람이 맞붙으면 누가 이길지를 뻔히 압니다. 뒤를 돌아보면 기적의 현장인 멈추어선 요단강이 흐르고 있지만, 앞을 바라보면 크고 견고한 성인 여리고가 버티고 서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군대 대장이 되어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3
코로나 바이러스를 처음 접하였을 때 우리 나라를 국민들을 정부의 정책을 비교적 잘 따르니까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하면 바이러스의 골짜기를 벗어나는 줄 알았습니다. 백신을 못 구해서 그렇지 백신이 들어오고, 11월이 되어서 70%의 국민이 백신을 맞으면 해결되는 줄 알았습니다. 70%가 아니라 80%의 국민의 백신을 맞았음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성남시에서는 하루에 50여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나라 전체로는 2,000명이 넘는 확진가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갖게 되는 믿음이 있습니다. 지난 온 날들을 뒤돌아보면 요단강을 멈추어 서게 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이 있지만, 앞을 바라보면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크고 견고한 여리고처럼 버티고 서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군대 대장되시어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말합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광야를 걸어온 내 경험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더 귀한 것을 인정하면서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성찬을 받으면서 두 발에서 신발을 벗는, 내일부터 한 주간 계속되는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서 두 발에서 신발을 벗는, 그리고 하나님의 군대 대장의 편이 되는 복된 역사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 여호수아 5: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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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우리 교회는 “종이에 쓰고 마음에 새기는 성경문제집”에 집중하였습니다.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에서 출제된 300 문제의 답을 달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자세히 살피고 또 살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도 성도님들이 제출한 문제집을 점검하면서 많이 기뻤습니다.
어떤 분은 약속의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의 동서남북 경계를 살피기 위해서 지파별로 분배된 땅을 지도로 그리면서 답을 달았고, 어떤 분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답이 되는 근거를 문항마다 친절하게 성경구절을 적어 놓았고, 어떤 분은 정답에다 자세하고 정확한 설명을 덧붙이는데 성경학자의 주석을 읽은 것 같았고, 어떤 분은 정답을 찾으면서 받은 은혜와 생활의 적용까지를 기록해 놓아서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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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쓰고 마음에 새기는 성경문제집”, 여호수아서 10번 문제의 내용입니다. “길갈에서 있었던 일이 아닌 것은?” ①할례를 받았다. ②만나가 그쳤다. ③여호수아가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만났다. ④아간이 도둑질을 하였다. 정답은 ④번, “아간이 도둑질을 하였다.” 입니다. 아간이 도둑질을 하기는 했는데, 여리고성을 정복한 후 노획물을 여호와의 곳간에 드릴 때였습니다.
“길갈”은 광야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온 후, 첫 번째 진영을 편성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요단강이 멈춘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기념비를 쌓았습니다. 그곳에서 할례도 받았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광야 1세대는 다 할례를 받았지만, 요단을 건넌 광야 2세대는 광야를 지나느라 할례를 받지 않았기에 할례를 받으면서 새로운 출발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유월절도 지켰습니다. 유월절을 지킨 그 이튿날 가나안 땅에서 거둔 밀과 보리로 무교병을 만들어 볶은 곡식과 함께 먹으니, 만나가 그쳤습니다. 그 때의 일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무엇이 그쳤다고요? “만나”가, 대신 무엇을 먹었다고요? “가나안 땅에 소출을”, 함께 읽습니다.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는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수5:12)
첫째 그친 만나에 초점을 맞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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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던 날, 먹을 양식을 힘껏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짊어지고 나온 양식은 한 달 반 만에 바닥이 났고, 사방을 둘러보니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신 광야였습니다.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합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었더라면 비록 종노릇을 하더라도 고기 가마 곁에서 배불리 먹었을 텐데, 왜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여 굶어죽게 하는가?”
이런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주십니다. 만나의 색깔은 눈과 같이 희었고, 모양은 작은 진주 같았습니다. 그리고 맛은 꿀을 섞은 과자와 같았습니다. 만나는 맑은 날이든지 흐린 날이든지 아침마다 들판으로 나가기만 거둘 수 있는 매일 양식이었는데, 만나는 남자든지 여자든지, 어린이든지 어른이든지 누구나 차별이 없이 거둘 수 있는 하늘 양식이었는데, 그 만나가 그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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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이스라엘에게 가장 친숙하고, 가장 익숙한 것이 만나였습니다. 광야에서 시간이 흘러 어린아이가 청년이 되고, 청년이 어른이 되어도 변하지 않고 아침마다 내렸던 것이 만나입니다. 삶의 자리를 신 광야에 바란 광야로 이동을 하고, 바란 광야에 에돔 동쪽으로 장막을 옮겨도 변하지 않고 아침마다 거두었던 것이 만나입니다. 40년 동안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만나인데, 40년 동안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만나인데, 그 만나가 그친 것입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지 않아도, 땀 흘려 가꾸지 않아도, 아침마다 들판으로 나가서 만나를 거두며, 텅 빈 광야를 채우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였는데, 거둔 만나를 맷돌에 갈기고 하고,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면서 돌보시는 하나님을 기뻐하였는데, 아침마다 만나를 거두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고, 만나를 먹으면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꼈는데, 그 만나가 그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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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만나가 그친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만나를 다시는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만나가 그친 대신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나는 밀과 보리로 빵을 만들게 하시고, 밀과 보리를 볶게 하셨습니다. 헬렌 켈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 것을 보는 것이 인생이다.” 요단을 건넌 이스라엘이 그런 것입니다. 문이 닫히면서 광야에서 친숙하고 익숙했던 만나는 그쳤지만, 새로운 문이 열리면서 약속의 땅의 소출을 먹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오늘 우리가 그런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이 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골짜기에서 많은 분들이 생명을 잃었고, 지금도 고통에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터가 흔들리면서 무너지고, 평범했던 일상들이 무거운 짐이 되고, 언제 어떤 모양으로 끝이 날지 앞날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그치게 한 것으로 끝이 아니고, 가나안 땅에 소출을 먹게 하는 새로운 장을 열어주신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코로나를 생활 속으로 받아들이면서 2021년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고 있는데, 또 다른 은혜를 예비하실 주님의 손길을 기대하면서 추수감사절을 지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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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에는 하나님의 숨결과 하나님의 손길이 담겨 있었음에도 광야 이스라엘은 원망과 불평으로 바뀌었습니다. 광야 이스라엘이 만나를 처음 만나던 날, 감격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감동된 얼굴을 서로 쳐다보면서 “이것이 무엇이냐?” 하늘 양식의 이름이 되었습니다.(출16:15) 그렇게 만나와 첫 만남은 감동 그 자체였는데, 매일 거두다 보니, 일상이 되다 보니 감동은 차츰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감동이 사라지자 만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다른 욕구가 커져갑니다. “누가 고기를 주어 우리로 먹게 할까?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을 먹고,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었는데, 만나만 먹으니 기력이 없도다. 만나 외에 다른 것을 먹었으면 좋겠다.”(민11:4-5) 만나를 평가 절하 하는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에돔 땅을 우회하는 길이 험하니, 불평을 합니다.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먹을 것도 없고”라고 불평을 쏟아내다 보니 만나가 보이거든요 그래서 내뱉는 말이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민21:4-5) 만나를 하찮은, 보잘 것 없는 양식이라고 비방하기에 이르렀고, 결국은 하나님께서 불 뱀을 보내니 불 뱀이 이스라엘을 물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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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내리는 만나가 하나님의 선물이었는데, 아침마다 내리는 만나가 일상이다 보니 감동은 사라지고, 심지어는 보잘 것 없는 양식이라고 평가 절하하던 광야 이스라엘을 살피다보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라고, 매일 마주 하는 일들을 복되게 여기라고, 값없이 주어지는 것들에 가치를 부여하라.”고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설명을 드리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거리두기를 통하여 만남을 제한하는 대신 가족과의 시간을 늘려주면서 아내와 남편에 대한 고마움, 자녀들의 소중함. 부모에 대한 존경, 더하기표를 하라고 말합니다. 아내가 “살 중에 살이요, 뼈 중에 뼈”였는데, 매일 당연히 만나는 얼굴이 되다 보니 이스라엘이 만나를 대하듯이 하찮게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까?
코로나 바이러스는 매일 마주하는 일을 복되게 여기라고 합니다. 둘러보면 소소한 일상이 하나님의 큰 선물입니다. 아이들이 아침이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것, 아내의 배웅을 받으면서 일터를 향하는 것, 주일이면 가족들이 한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것, 가족이 손을 잡고 외식을 하는 것, 찻집에서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어울려 산과 들로 소풍을 나가는 것, 소소한 일상이 하나님의 선물이었다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러주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었음을 깨닫게도 합니다. 매일 마스크를 쓰면서 돈 내지 않고 마시던 물, 값을 치루지 않고 마시던 공기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한 번 갖게 됩니다. 공기를 오염시켜 놓고 공기청정기를 방마다 들여놓고, 물을 오염시켜 놓고 비싼 값을 치루면서 정수기를 사용하는 시대에 대하여 반성을 하게 됩니다. 만나를 하찮은 것으로 평가 절하였던 광야 이스라엘을 거울삼아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고마워하면서, 매일 펼쳐지는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값싸게 여기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면서 2021년도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군대 대장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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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갈에서 있었던 일들 중에서 우리는 두 가지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친 만나이고, 다른 하나는 만난 군대 대장입니다. 지금까지는 그친 만나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에는 여호수아가 만난 군대 대장에게 초점을 맞추어 보겠습니다.
요단을 건너 길갈에 진영을 편성한 이스라엘이 제일 먼저 점령해야 할 성은 크고 견고한 성 여리고였습니다. 여리고 평지를 거닐면서 어떻게 여리고성을 점령해야 하는가? 구상하고 있는 여호수아가 칼을 빼어 손에 든 한 사람이 마주합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여호수아가 물었고,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나는 네 편도 아니고, 적군의 편으로도 아니라.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여호수아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을 합니다.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을 거룩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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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땅은 아무도 살지 않는 무주공산이 아니었습니다. 들어가서 말뚝을 박고, 줄을 둘러치면 내 땅에 되는,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한 부족도 아니고 일곱 부족이 자리를 잡고 있는 땅이었고, 그 땅에 사는 일곱 부족은 광야 이스라엘 비하여 군대의 숫자도 많고, 가지고 있는 무기도 이스라엘이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였습니다.
열두 정탐꾼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더 확실해 집니다. 바란 광야에서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고, 살피고 돌아온 사람들의 보고서에는 가나안에 살던 일곱 부족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입니다. 그곳에서 나는 포도 한 송이를 막대기에 꿰어 어깨에 메고 돌아왔습니다. 이런 과일을 먹는 사람들이니 키는 장대처럼 크고, 힘은 모두 항우장사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쌓은 성이니 크고 견고합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들은 메뚜기에 불과합니다.”(민13:27-29) 그 때 열두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가나안 땅을 살피고 돌아온 사람이 여호수아, 지금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만나고 있는 여호수아입니다.
그러니 여리고 성에 앞에 서 있는 여호수아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엊그제 요단강이 멈추어서는 기적을 맛보기는 했지만, 적을 알고 나를 아는데 장대 같은 사람들과 메뚜기 같은 사람이 맞붙으면 누가 이길지를 뻔히 압니다. 뒤를 돌아보면 기적의 현장인 멈추어선 요단강이 흐르고 있지만, 앞을 바라보면 크고 견고한 성인 여리고가 버티고 서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군대 대장이 되어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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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를 처음 접하였을 때 우리 나라를 국민들을 정부의 정책을 비교적 잘 따르니까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하면 바이러스의 골짜기를 벗어나는 줄 알았습니다. 백신을 못 구해서 그렇지 백신이 들어오고, 11월이 되어서 70%의 국민이 백신을 맞으면 해결되는 줄 알았습니다. 70%가 아니라 80%의 국민의 백신을 맞았음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성남시에서는 하루에 50여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나라 전체로는 2,000명이 넘는 확진가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갖게 되는 믿음이 있습니다. 지난 온 날들을 뒤돌아보면 요단강을 멈추어 서게 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이 있지만, 앞을 바라보면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크고 견고한 여리고처럼 버티고 서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군대 대장되시어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말합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광야를 걸어온 내 경험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더 귀한 것을 인정하면서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성찬을 받으면서 두 발에서 신발을 벗는, 내일부터 한 주간 계속되는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서 두 발에서 신발을 벗는, 그리고 하나님의 군대 대장의 편이 되는 복된 역사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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