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누기

2019.5.5(주일) - 세마포 에봇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5-05 07:36
조회
2014
제목: 세마포 에봇
성경: 삼상 2 : 12 - 21

1.
5월입니다. 싱그러움은 더해가지만, 일 년 중에 가장 분주한 달입니다. 5월 5일은 ‘어린이날’이고, 5월 8일은 ‘어버이날’입니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고, 5월 셋째 주 월요일은 ‘성년의 날’인데 올해는 20일이고, 그 이튿날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15일이 ‘스승의 날’인 것은 민족의 최대스승인 세종대왕의 생일이기 때문이고,
21일이 ‘부부의 날’이 된 것은 둘(2)이 합쳐 하나(1)가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날의 날짜가 각 나라마다 다른데, 우리나라는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색동회를 이끌던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담아주기 위해서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열었습니다. 1927년에는 좀 더 많은 어린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어린이날을 5월 첫째 주일로 변경하여 기념행사와 더불어 사생대회를 열었습니다. 1939년 일제는 어린이날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을 염려해서 어린이날 행사를 금지시켰고, 해방 이듬해인 1946년부터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바꾸어 시행하였고 1970년에 어린이날을 법정공휴일로 정하였습니다.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날’이면서, 5월 첫째 주일 ‘어린이주일’입니다. 이렇게 복된 날,
저는 사무엘의 어린 시절을 소개하면서 어린이들을 축복하고자 말씀의 제목을 “세마포 에봇”이라고 정하였습니다.

2.
사사로서 사무엘의 첫걸음은 참 복되었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등장할 때
백성들의 마음은 여호와 하나님을 등지고 이방신인 바알과 아스다롯에게로 향해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바알에게로 향하면서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압박을 심하게 받았고,
전쟁터로 여호와의 법궤까지 끌고 나갔지만 법궤는 빼앗기고 이스라엘은 참담한 패배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읍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을 던져 버리고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합니다.
물을 길러 여호와 앞에 붓고 금식하며 회개합니다. “여호와여! 우리가 범죄 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소서.” 하나님은 블레셋 군대에게 큰 우레를 내리셨고,
이스라엘은 승리의 기념비를 세웁니다. “에벤에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습니다.”

3.
사무엘의 첫걸음이 복될 뿐만 아니라 마지막 걸음 또한 아름다웠습니다.
백발의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고별설교를 합니다.
“제가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여러분을 지도하였습니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가려하는데,
혹시 제가 여러분을 다스리면서 누구의 것을 빼앗은 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누구를 속인 일이 있으면,
억울하게 한 일이 있으면, 뇌물을 받고 그릇된 재판을 한 일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제가 갚아드리겠습니다.”

그날 백성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은 우리를 속인 적이 없습니다. 억압하신 일도 없습니다.
무엇 하나 빼앗은 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깨끗한 마음으로 우리를 지도하였고, 온전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표합니다.” 이렇게 사무엘의 시작이 복되고, 삶의 여정 하나 하나가 아름답고,
인생의 끝맺음이 영광스러울 수 있었던 것은 사무엘의 어린 시절에 그 열쇠가 있습니다.

4.
성경은 사무엘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삼상 2:26) 이런 사무엘의 모습이 얼마나 복되었으면,
누가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우리에게 소개하면서 “예수는 그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누가2:52)
누가는 사무엘의 어린 시절과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나란히 놓습니다.

이 구절만 떼어내서 생각해 보면, 사무엘이 흠이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천국 같은 좋은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무엘이 칭찬과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는데, 사무엘의 주변에는 악한 사람이 하나도 없고
착한 사람들이 숲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 사무엘은 젖을 뗀 후 엄마 아빠의 품을 떠나서 성막이 있는 실로에서 자랍니다.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였지만 어린 사무엘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성막이 있는 실로에는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있는데 성경은 그들을 망나니라고 소개합니다.
백성들이 준비한 제물을 갈고리로 강탈하고, 성막을 섬기는 여인들과 성추문이 그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충고를 귓등으로 흘려보냅니다. 결코 좋은 환경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아이 사무엘은 흠이 없이 자랐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5.
사무엘이 자란 환경이 녹록하지 않음에도 복된 소년으로 자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제가 입고 있는 옷을 보십시오. 박정자 권사님이 손수 디자인을 하고 마름질을 하면서
“우리 목사님을 붙잡아 주세요”, 한 땀 한 땀 힘이 없고 아픈 손으로 바느질을 하면서
“우리 목사님에게 능력을 부어주소서” 그렇게 권사님의 사랑의 담겨 있는 옷을 입고 제가 설교 준비를 하였습니다.

어린 사무엘에게도 작은 겉옷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무엇을 입었습니까?
“세마포 에봇”을 입었습니다. 누가 만들어 준 옷입니까? “그의 어머니가” 만들어 준 옷입니다.
그 옷을 입고 누구를 섬겼습니까? “여호와 앞에서 섬겼습니다.”
사무엘이 복될 수 있었던 것은 예배를 드리는 아버지 엘가나와 기도를 드리는 어머니 한나가 만들어준 작은 겉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서 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 교회 제단 뜰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이
어린 사무엘처럼 세마포 에봇, 작은 겉옷을 입고 자라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들은 예배를 드리는 엘가나가 되고,
어머니들은 기도를 드리는 한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예배드리는 아버지입니다.

1.
사무엘상 2장 17절 말씀에 보면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이 소년들이 누구입니까?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입니다. 그들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심히 크다고 하는데,
큰 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배드리는 것을 멸시하였습니다.” 어떻게 멸시합니까? 사람들이 제물을 가져와서
하나님 앞에 드리려고 가마솥에 넣고 삶을 때, 갈고리를 가지고 다니면서 제물을 찔러 나오는 대로 가져갑니다.
하나님께 드리기도 전에 살코기를 내어놓으라고 소리를 칩니다. 듣지 아니하면 강제로라도 빼앗아 갑니다.

아버지 엘리는 제사장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제사장입니다.
예배를 집례하면서 백성들의 소원과 아픔을 하나님께로 가져가고,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복을 백성들에게로
가져오는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레위지파로 태어나야 했고,
레위 지파 중에서 아론의 후손을 태어나야 했으니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엘리는 아론의 후손으로 어디에서 제사장 역할을 합니까? 하나님의 영화로운 성막이 있던 실로에서
제사장의 직임을 감당합니다. 그리고 엘리의 뒤를 이을 제사장이 홉니와 비느하스인데,
그런 사람들이 여호와의 예배를 멸시하니 성소의 등불은 꺼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이스라엘을 떠납니다.

2.
지금까지는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망나니를 길러낸 “엘리의 가정”을 들여다 보았다면 이번에는
사무엘이라는 믿음의 사람을 길러낸 “엘가나의 가정”으로 들어가 봅시다. 사무엘상 1장 3절 말씀에 보면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가나는 에브라임 산지 사람입니다. 예배드릴 때가 되면 성막이 있는 실로로 올라갑니다.
아내와 함께 모든 자녀들을 이끌고 성막으로 올라갑니다. 하나님 앞에 드릴 예물을 준비하여
성막이 있는 실로로 올라갑니다. 엘가나의 복된 예배생활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3.
“매년”입니다. 엘가나의 예배생활을 소개할 때마다 “매년”이란 말이 함께 나옵니다.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 실로에 올라가서”(삼상1:7)
어느 한 때만 예배를 드리고 멈춘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한 순간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만 둔 것이 아닙니다.
예배드리는 때가 돌아오면 항상 일손을 멈추고 예배당으로 돌라갑니다. 정기적인 예배에 꼭 참석하는 복된 모습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엘가나를 인터뷰 했습니다. “당신이 하는 일들 중에서 가장 소중한 일,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한 가지만 말씀해 주시지요?” 엘가나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즉시 대답할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일은,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온 가족이 함께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집으로
예배를 드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엘가나처럼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아버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4.
“온 집이 함께”입니다. 사무엘상 2장 21절 말씀에 보면 “그 사람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삼상1:21) 아버지 엘가나는 예배를 드리러 성막이 있는 실로로 올라갈 때면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올라갑니다. 온 집안이 함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모세와 이스라엘을 노예로 잡고 있는 바로 사이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면서 열 가지의 재앙이 내립니다. 애굽 왕 바로는 광야라는 구별된 장소로 가지 말고
여기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여기, 애굽 땅에 놓아두고 어른들만 가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재물인 소나 양은 놓아두고 사람들만 가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배 자리로 정하신 광야로 가야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데 빈손으로
갈 수야 없지요 당연히 소도 끌고 가야 가겠습니다. 장정만이라니요? 아내와 자녀들, 온 가족이 예배를 드려야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목사님, 저도요 주일이면 한 팔로는 남편 팔짱을 끼도, 한 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예배당에 오르고 싶습니다. 예배당 긴 의자에 남편이 앉고, 내 아들 딸이 앉고, 그리고 제가 앉아 온 가족이
예배를 드리고 싶은데 그게 안 되어서 흐르는 것이 눈물입니다.”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보시고, 그 마음을 받으시고,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는 날을 속히 선물주실 줄 믿습니다.

5.
“제물의 분깃을 나누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엘가나가 예배를 드리러 올라갈 때면 예물을 준비합니다.
수소를 끌고 가고, 항아리에 고운 밀가루를 넣어가고, 가죽 부대에 포도주를 담아갑니다.
제물 중에 하나님의 것을 성별하고, 제사장의 몫을 구분하고, 가족에게 돌아갈 분깃을
아내인 한나에게 주고 브닌나에게도 줍니다. 자녀들에게도 줍니다.

구약의 예배 모습과 신약의 예배 모습이 다릅니다. 예배에 담기는 내용은 같지만 담아내는 그릇의 모양,
형식이 다릅니다. 엘가나의 가족이 제물을 드린 후 분깃을 나눈 것이 오늘 예배생활 속에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주일 저녁 식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았습니다.
가족이 그날 교회에서 받은 은혜를 식탁에서 나눌 수 있다면, 교회에 연결된 복된 가정이고,
주님의 얼굴빛이 비추는 복된 가정입니다. “찬송을 부르는데 이 부분이 제게는 감동이었습니다.
설교 말씀 중에 저는 이런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회에서 이런 기도를 드렸는데 속히 응답해 주시겠지요.
아무개 집사님의 간증을 들을 때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렇게 분깃을 나누는 복된 가정으로 세워지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기도를 드리는 어머니입니다.

1.
성경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마음을 하나님의 뜻으로 채우고,
기도의 무릎을 꿇으면서 하나님의 선한 능력을 덧입는다는 것입니다. 사무엘도 그의 복된 사역을 기도로 펼쳐 가는데,
사무엘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리라”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것을 죄로 생각하였으니 그 삶의 얼마나 복되고, 능력 있고, 풍성하였겠습니까?
이렇게 사무엘이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 기도드리는 어머니 한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어머니 한나의 기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문제를 기도로 해결합니다. 한나에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좋은 남편이 있는데, 집안 살림은 넉넉한데, 몸도 건강한데, 온 집안이 신앙생활도 잘하는데,
자식이 없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한나가 살던 시대는 자식이 없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났다는 증거였습니다. 한나는 이 문제를 가지고 기도의 자리에 엎드립니다.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생각하소서. 아들 주시오면 그의 평생을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마음을 쏟아내는 기도였습니다. 한나가 기도하는 모습을 엘리 제사장이 지켜봅니다.
한나가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를 하였습니다. “자네가 언제까지 취해 있겠는가? 당장 포도주를 끊어라.”
한나가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저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였습니다. 저는 마음이 슬픈 여자입니다.
나의 심정과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 낸 것뿐입니다.” 한나는 심정을 토하는, 마음을 쏟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 응답에 감사하고 찬양하였습니다. 한나의 기도가 응답되어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름을 무엇이라고 짓습니까?
“사무엘”이라고 짓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다.” 한나가 하나님 앞에 서원한대로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던 날 이런 찬송을 드립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술이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나이다.”

한나의 기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어린 사무엘을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실로에 바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한나는 성막에서 자라는 사무엘을 위하여 작은 겉옷을 만들고 있습니다.
베로 실을 만들고 옷감을 짭니다. 몸에 맞게 마름질을 하고, 호롱 불빛 아래서 바느질을 합니다.
한 올 한 올에 어머니의 사랑을, 한 땀 한 땀 어머니의 기도를 담습니다.
기도로 아들의 옷을 만들어 입히니, 그 아들 사무엘이 평생 기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3.
말씀을 맺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아버지 엘가나와 기도를 드리는 어머니 한나가 사무엘이란
하나님의 사람을 길러내기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하늘 백성들을 향하여,
여호와를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하늘 백성들을 향하여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를 사랑한다면
말씀이 수놓아지는 자리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라. 그리고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강론하라.”(신6:4-7)
여러분의 자녀들의 마음에 주님의 얼굴을 그려주고, 주님의 말씀을 수놓아 주는 좋은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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