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누기

2019.4.28(주일) - 믿지 아니하니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4-27 17:09
조회
1676
제목: 믿지 아니하니라.
성경: 마가복음 16 : 9 - 14

1
복음서에 나오는 단편들을 모아서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갈릴리 호수 서편에 있는 막달라 출신입니다. 뒤는 비옥한 농토가 펼쳐지고,
앞은 넓은 갈릴리 호수가 펼쳐지는 풍요로운 도시가 막달라입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지만 도덕적으로 타락한 도시, 그곳 막달라에서 마리아는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젊은 날 일곱 귀신에 들려 몸을 파느라 몸은 썩을 대로 썩어 뭉그러지고, 마음은 말라비틀어지고,
영혼은 폴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피워낼 수 없이 폐허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막달라 마리아는 쓰레기처럼 버려진 인생입니다.

2
그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니, 일곱 귀신이 나갔고 새로운 사람으로, 예수님의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노래했던 것처럼 광야에 샘이 터지고, 사막에 시내가 흐르고,
메마른 땅에 백합화가 피어난다는 이사야의 노래처럼, 그런 은혜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임하니,
그의 심령은 하늘 기쁨으로 넘쳤습니다. 그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주님의 복음 사역에도 앞장섭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십자가 아래서도 지극하더니, 예수님의 장례까지도 눈물로 지켜냅니다.
그리고 부활의 아침을 제일 먼저 열게 되는데, 막달라 마리아는 그 아침의 일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첫째 마리아가 부활을 증언합니다.

1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 예수님의 무덤을 향하여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발걸음은 무덤을 향하지만 마음은 걱정으로 가득하였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굴려 주리요? 군사들이 지키고 있는데 무덤에 들어가도록 허락은 해 줄까요?”
그러나 무덤에 도착했을 때, 무덤을 막고 있던 큰 돌은 이미 옮겨져 있었습니다.
무덤 안에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신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흰 옷을 입을 한 청년,
찬란한 옷을 입은 천사가 부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라.”(마가16:6)

2
막달라 마리아는 천사가 일러준 대로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음을 제자들에게 알립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단숨에 무덤으로 달려옵니다. 두 제자가 무덤 속을 들어가 보니
주님의 시신이 놓여있던 자리에는 세마포가 놓여 있고, 머리를 싸던 수건은 가지런히 개켜 있었습니다.
빈 무덤을 확인한 두 제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을 떠나지 못합니다. 다시 무덤 속을 살핍니다.
무덤 속을 살피는 마리아의 등 뒤에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동산지기인줄 알았습니다.
“당신이 우리 주님의 시신을 옮겨갔거든 어디 있는지 내게 알려주세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마리아야!” 부르십니다. 그때서야 마리아는 부활의 주님인 것을 알아차리고는 “랍오니여, 선생님!” 하시니,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하라.”

3
여기서부터 오늘 읽은 말씀은 시작이 됩니다. 부활의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당부하신대로
주님의 제자들이 모여 있던 마가 다락방으로 달려갑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슬퍼하고 있는 예수님의 사람들,
그들이 모여 있던 마가 다락방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리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저에게 나타나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믿나요? 안 믿나요?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람들이 믿나요? 안 믿나요? 믿지 않습니다.

거짓 증인들을 세워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죄를 뒤집어씌운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이 마리아가 전하는 부활 소식을 듣고
믿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바라바를 놓아주고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을 치던 무리들이 마리아가 전하는
부활 소식을 듣고 믿지 않았다면 이해를 하겠습니다.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하고,
대야에 담긴 물에다 손을 씻던 총독 빌라도가 마리아가 전하는 부활 소식을 듣고 믿지 않았다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부활 소식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12-13절)

1
부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마리아가 전하는 부활소식을 믿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함께 있던 사람들은 마리아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이 잘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서 일곱 귀신이 나갔고 예수님의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압니다.
메마른 땅에 백합화가 피어남같이 마리아의 마음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늘 기쁨으로 넘쳤다는 것도 압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복음 사역에도 앞장섰다는 것도 귀로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아서 압니다. 마리아가 십자가를 찢어지는 마음으로 지켜내고, 예수님의 장례를 눈물로 지켜냈다는 것을
다 아는 사람들입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갔다는 것까지
다 아는 사람들인데 마리아가 전하는 부활 소식을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2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데, 백보 양보해서 막달라 마리아는 사람이니까,
불완전한 사람이니까, 믿지 못한다고 합시다. 막달라 마리아가 사람이고,
사람의 경험이나 판단이 항상 맞는 것이 아니니까 믿지 못한다고 합시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람들인데,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인데,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은 믿어야지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실 것에 대하여 친히 말씀 하셨으니 믿어야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시는 십자가의 길, 첫 걸음을 떼어놓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한다.”(마가8:31)
주님께서 고난 받으실 것에 대하여, 영원한 속죄를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에 대하여,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 마리아가 전하는 부활 소식을 믿어야 했는데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면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식탁을 성만찬으로 제정하시어 교회 안에 보물로 담아놓으십니다.
그리고 습관을 따라 기도하시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을 오르는 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흘어지리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마가14:27)
예수님께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에 대하여,
그리고 다시 살아나실 것에 대하여, 다시 살아나실 뿐만 아니라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약속까지 하셨는데
제자들은 마리아가 전하는 부활 소식을 믿지 않았습니다.

3
막달라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는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어 밤새도록 기도하시고 택한 사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시던 현장에 함께 있던 사람들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던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 함께 있었고,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병자를 일어나 걷게 하시던
그 기적의 현장에도 함께 있었고, 오병이어의 기적이 펼쳐진 벳세다 들녘에도 함께 있었고,
사나운 풍랑을 꾸짖어 잔잔케 하시던 갈릴리 바다에도 함께 있었고,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가 살아나오는 무덤가에도 함께 있던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가 전하는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믿지 않았습니다.

4
막달라 마리아가 전하는 부활 소식만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걸어서 시골로 내려가던 두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남아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데,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이 분들의 이야기는 누가복음에 자세하게 펼쳐집니다.

첫 번째 부활절 오후였습니다. 두 제자의 얼굴은 저물어 가는 석양으로 가득하였고,
마음까지도 황혼처럼 씁쓸함과 아쉬움으로 그늘져 있었습니다.
발자국마다 일어나는 모래 먼지조차도 힘없이 주저앉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엠마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두 제자를 찾아오십니다.
두 제자와 동행하시면서 말씀을 풀어주시어 마음을 뜨겁게 하십니다.

두 제자는 그렇게 마을 가까이 왔는데, 예수님은 더 가시려고 하는 것 같이 하시니 두 제자 강권합니다.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우리와 함께 들어가십시다.”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실 때에 주님은 떡을 가지고 축사하셨고,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셨고, 그 떡을 받을 때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서 부활의 주님인 것을 깨달았는데,
부활의 주님은 이미 보이지 않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두 제자는 더 이상 엠마오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습니다.
두 제자는 곧바로 일어나 단숨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부활의 주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그렇게 증거 하는데 예수님의 사람들,
예수님과 함께 하던 사람들이 믿나요? 안 믿나요?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셋째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1
부활절 밤, 부활의 주님께서 직접 찾아오십니다. 듣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여주시기 위해서
마가 다락방으로 직접 찾아오십니다. 그 날 사람들에 마음은 의심의 구름으로 덮여있습니다.
의심의 구름으로 인하여 빈 무덤도 확인하고도 믿지 못하던,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을 듣고도 믿지 못하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고 자세하게 설명함에도
역시 믿지 않았던 제자들에게 부활의 주님께서 친히 나타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선포하십니다. 두려움의 먹구름을 걷어내시면서,
의심의 안개를 걷어내시면서, 어깨를 짓누르는 회한의 짐을 내려주시면서, 선포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뿐만 아니라 못자국난 손을 보여주시면서,
창자국난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기뻐하게 하십니다.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 쉬면서 “성령을 받으라.”
이렇게 제자들의 마음에서 의심의 구름을 걷어내시고, 부활의 믿음을 흔들리지 않도록 해주시던 그 밤,
부활의 주님은 먼저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두 가지를 꾸짖으십니다.
하나는 무엇이 없음을 꾸짖으십니까? 믿음이 없음을 꾸짖으십니다.
다른 하나는 마음이 어떠함을 꾸짖으십니까? 마음이 완악함을 꾸짖으십니다.

2
부활의 주님께서 믿음 없는 것을 꾸짖으시고,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는데 서로 다른 내용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음으로 마음이 완악하게 되었고, 마음이 완악함으로 믿음이 없게 된 것인데,
이것이 처음이 아닙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완악한 것에 대해서,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여진 것에 대하여 전에도 꾸짖으셨는데, 그 현장으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마가복음 6장에 보면, 해가 이미 기운 저녁인데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시고,
제자들은 노를 저어 바다 건너편으로 갑니다. 한밤중에 제자들이 바람이 거스르므로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힘겨워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두려워하며 “유령이다!”라고 소리를 질렀고,
예수님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면서 배 위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이 배 위에 오르자 거센 풍랑은 잠잠하여졌고,
제자들은 책망을 받습니다. 마음이 둔하여졌다고, 마음이 완악하여졌다고 꾸짖으십니다.(마가복음 6장 52절)

이 일이 있기 바로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벳세다 들녘에서 소년이 바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은 기적을 제자들은 체험하였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귀로 전해들은 이야기가 아니고 두 눈으로 보았고, 입으로 맛보아 알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여러 날 전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기적을 체험하고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주님이시면, 바다 위도 걸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할 텐데,
마음이 둔하므로, 마음이 완악하므로 예수님을 향하여 두려워하며 유령이라고 소리를 친 것입니다.

3
이번에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가르침, 바리새인들의 교훈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엉뚱하게 반응합니다.
“우리가 떡을 준비해서 배를 타야 하는데, 떡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예수님이 책망을 하시는 것이로구나.”
제자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아시고 책망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둔하졌도다. 마음이 완악하여졌도다.”
조금 전에 보리떡 일곱 개로 4,000명이 남고도 일곱 광주리가 남은 기적 있었고,
너희 두 눈으로 보았고, 입으로 맛보았음에도 먹을 것을 걱정하느냐? 제자들의 완악한 마음을 꾸짖으셨습니다.

4
마찬 가지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어린 딸의 손을 잡으시고 일으키시며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누가8:54) 제자들은 그 곁에 있었습니다.
나인 성문 밖, 주님은 장례 행렬을 멈추십니다. 관에 손을 얹으십니다. 그리고 선포하십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누가7:14) 죽음의 행렬은 생명의 행렬이 바뀌는 현장에 제자들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의 무덤을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요한11:43) 명령하셨고,
죽은 나사로가 무덤 밖으로 나오는 현장에 제자들이 있었으면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 소식을 전할 때 믿었어했습니다.
엠마오에 가던 두 제자가 돌아와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고 부활 소식을 전하면 믿었어야 하는데 믿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둔하므로, 마음이 완악하므로 믿지 못했고, 부활의 주님은 그런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5
여러분은 무엇이 제자들의 마음을 둔하게 하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마음을 둔하게 하였고,
잘못된 믿음으로 마음이 둔하여지니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전까지 제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만왕이 왕이셨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이스라엘의 어깨에 드리워져 있는 로마의 멍에를 꺾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리라.
그 날이 오면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왕위에 올라 세상 만국을 다스리시리라.
그날이 오면 예수를 따르던 나도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리라.”

그런 꿈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고 따랐는데, 로마의 멍에를 벗기기는커녕
로마 총독 빌라도가 십자형을 선고하였고,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이란 죄패가 붙었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뜻도 모를 말을 남긴 채 돌아가신 것입니다. 더 허황된 것은 예수님을 장사 지낸지 사흘째 되던 날 새벽,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려고 무덤을 찾았는데, “그 분이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천사의 말을 들었노라고 여인들이 증언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어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왜곡하는 잘못된 제도를 부수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나라의 씨앗을 뿌리셨지만,
빼어난 정치지도자는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아픈 몸과 마음을 싸매시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계시지만 손이 넓은 자선 사업가는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윤리적으로 흠이 없는 삶을 사셨고,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시기도 하셨지만
인류를 향한 도덕적인 표준으로만 계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는 구세주,
우리의 신분을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
땅에 속한 사람들을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바꾸어 주시는 메시야가 되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바로 믿음을 때,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영원한 속죄가 되어 우리 심령에 흐르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바로 믿을 때,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음에 감격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바로 믿을 때,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그릇된 제도에 항거하며 고쳐나감이 아름답습니다.
내 심령에 주님의 보혈이 흐르고 있기에 이웃의 눈물을 닦아줌이 복됩니다.
부활의 몸으로 영원히 사는 그날이 있기에 성결한 삶을 펼침이 복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 안디옥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전체 0